都市而自然

박능생 수묵展   2004_0719 ▶︎ 2004_0815

박능생_夢之都市_화선지에 수묵_254×154cm_2004

초대일시_2004_0802_월요일_06:00pm_오원화랑

炎黃藝術中心 / 2004_0719 ▶︎ 2004_0724 中國 北京市 亞運村 惠忠路 9號 Tel. 018_384_0418

오원화랑 / 2004_0802 ▶︎ 2004_0815 대전시 중구 대흥2동 471-1번지 Tel. 042_254_2111

도시를 바라보다 ● 산 너머로 겹겹이 들어서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회색 콘크리트 벽들이 하늘에 솟아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 그 안의 수많은 창들, 그 창으로 들어오는 빛, 새어나오는 빛, 어두운 밤, 차들이 늘어선 도로 등... / 눈을 어슴푸레 떠보면 수직 수평의 수많은 선들만이 교차한다. / 대기는 희뿌옇게 가려져 있고, 시커먼 땅에서 솟아나는 에너지와 함께 위로 더 높이 뻗어 오른다. / 그것은 이미 자연과 더불어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있다. ■ 박능생

박능생_夢之都市_화선지에 수묵_179×90cm×2_2004
박능생_夢之都市_화선지에 수묵_179×90cm×3_2004

젊은 수묵화가에게 쓰는 글 ● 자연은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가 가진 무한한 함축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특정한 것을 선별해야 할 것이다. 동양회화의 대표적 소재인 대자연. 즉 산, 나무, 돌, 물 등을 자연으로 인식하는 것이 그 예가 된다. 동양에서는 산수자연을 일종의 거룩하고 숭고한 대상으로 삼았다. 심지어 인간자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서 자연을 대했다. 水墨의 발전도 이러한 자연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유구한 시간의 변천 속에서 확고한 예술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수묵화의 대상은 자연이며 그 이론적 기반도 자연이다. ●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과거의 자연의 한계를 초월하고 있다. 동양회화의 핵심을 이루는 대상인 대자연의 영역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현대예술은 작가의 능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광범위하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다. 이것은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것으로 옳고 그름의 성질은 아니다. 수묵예술에서도 이론이나 畵法上 금기시 되었던 것-변화 없이 한 가지 먹색으로만 그려내거나 여백을 전혀 남기지 않고 그리는 그림-도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수용된다. 반면에 표현상 정체의 늪에 빠져 대부분 비슷한 화풍의 수묵이 지배적인 현상을 낳았다. 산수화 분야가 특히 그렇다. 표현의 자유는 수묵을 현대라는 세상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지만 과거의 연구 없는 미약한 기본기는 다양성의 부재라는 자기 올가미에 걸리게 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현대인은 과거의 이론가나 화가가 주장하던 화론을 몰라도 예술을 펼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빠른 지름길을 제시하는 선배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직감에만 의지하여 발걸음을 옮기는 위험한 사람들이다. 대자연을 주요소재로 삼았던 시대는 지나갔을지라도 그들이 남긴 성과는 면면히 살아 있다. 훌륭한 제자는 더 훌륭한 스승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박능생_登食藏山_화선지에 수묵_179×90cm×5_2004
박능생_登南山(東, 南, 北)_화선지에 수묵_179×90cm×5_2004
박능생_我之故鄕_화선지에 수묵_179×90cm×4_2004

젊은 화가 朴能生은 도심지(主題)의 풍경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 숨쉬는 현대를 표현해왔다. 그러면서도 산을 모티브로 하는 순수묵(純水墨)의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과거의 주거 환경과 다른 현대를 상징하는 무수한 직각의 건축과 평평한 도로, 자동차는 자연중의 나무나 산에 비해 경직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수묵으로의 표현이 훨씬 난해하다. 그런데 박능생은 산수자연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여 나름대로 자신의 틀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또한 다른 선배화가들의 예술 언어를 연구하며 결점을 보완하는 노력은 젊은 화가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그림은 마구 그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고루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대의 작품과 그들이 다루었던 소재를 깊이 있게 관찰하는 것이 우리의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박능생이 이점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그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 현대의 수묵예술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상을 이용하여 예술을 펼치든 수묵으로서만 가능한 표현을 잃어버려서도 안 되며 새로운 필묵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포기해서도 안 될 것이다. 수묵이 아니어도 가능한 것을 수묵으로 고집할 필요는 하나도 없다. 지필묵이 가진 특성을 살리지 못하면 이미 수묵의 생명을 잃은 것이다. 안일하게 쓰는 필묵은 안일함만큼의 생명력 이상일 수 없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쉽게 잊혀질 뿐이다. ● 두드린다고 음악이 아니고 긋는다고 선이 아니다. 수묵화는 장시간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 먹(墨)과 물, 붓(毛筆), 화선지(宣紙)의 각기 다른 성질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만 그림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붓이 바뀌거나 화선지가 평소 쓰던 것이 아닐 경우에 그림을 쉽게 망치게 된다. 부단한 반복훈련은 탄탄한 기초를 갖춘 화가가 되는 밑거름이다. 한번 그린 것을 두 번 다시 그리지 않는 습관은 젊은 화가에게 최악의 사태이다. 씨름의 다양한 기술을 한두 번 해본다고 해서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기술을 연구하고 끊임없이 훈련하는 것은 어떤 선수와의 어떤 상황 하에서도 최상의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이다. 그림도 다르지 않다. 다양한 종류의 화선지와 붓, 그리고 풍부한 대상의 선택에서도 두려움 없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박능생_毛筆寫生_화선지에 수묵_48×62cm_2004
박능생_毛筆寫生_화선지에 수묵_48×59cm_2004

박능생은 도시풍경과 자연풍광에서 각기 다른 필묵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의 기본기를 습득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며 수묵만의 장점을 살릴 줄 아는 재능을 지녔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재능은 갈고 닦아야 빛을 보게 된다. 재능은 처음부터 재능이 아니라는 말이다. 새로운 것을 습득해 가는 것이 반복훈련의 기본이다. 현재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다소간의 결점은 발전해 나가는 과정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라도 더 배워 자기 것으로 소화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모습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외부에 대해 폐쇄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예술가의 길을 걷는데 많은 장애를 안고 가는 경우이다. ● 현시대에서 수묵이 좋아 수묵의 길을 걷는 화가는 가시밭을 일구듯 힘든 일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박능생도 스스로 이 길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해왔듯이 거듭되는 자기개발과 전시를 통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내는 예술적 성과를 얻기를 기대한다. ■ 寫于翼龍

Vol.20040718a | 박능생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