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시민아파트

정재호 회화展   2004_0728 ▶︎ 2004_0806

정재호_청운시민아파트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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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728_수요일_05:00pm

갤러리 피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1층 Tel. 02_730_3280

「청운시민아파트」와 정재호의 '동양화' - 특정한 장소를 그린다는 것에 대하여 ● 18세기 조선의 화가 겸재 정선이 한국회화사에 "신기원"을 마련한 이유는 그가 진경산수를 "창출"(국립중앙박물관)했다는데 있다. 여기서 '신기원'이나 '창출'이란 단어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볼 경우 겸재 이전에는 누구도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진짜풍경'을 그리지 않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왜 그랬을까? 「어린이 사생대회」를 넘어 「디(지털) 카(메라) 여행사진 콘테스트」까지 벌어지는 이 시대의 우리로서야 의아한 것도 사실이지만, 딴은 이해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역사의 전후맥락을 놓고 볼 때, 중국으로부터 영향 받은 관념 산수의 전통이 조선의 문인화가뿐만 아니라 직업화가의 회화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을 테니, 자신이 거처하는 현실세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을 것이다. 또 카메라나 캠코더, 모니터 등 지금과 같은 다종다기한 시각장치들이 없었으니, 재현의 장치에 걸러지지 않고 물질적으로 직접 자신의 눈과 가슴으로 뛰어드는 세계를 포착하고 표현하는 일에 낯설어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겸재를 포함한 18세기 화가들에게 그러한 시각장치들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겸재의 「인왕제색도」나 「금강전도」가 펼쳐 보이는 회화세계를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세계는 실제 풍경을 포착한 가시적 세계이자 포착할 수 없는 삶의 실재를 비가시속에서 감촉케 하는 세계이다. 조금 에둘러 온 감이 있지만, 이 글이 정재호의 최근 「청운시민아파트」연작과 그 '동양화'의 지향점을 논하기 위해서는 진경(眞景)의 의의와 전통의 시대가 갖는 상관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여기서 우리 시대 동양화가 실재하는 특정한 장소를 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문화사적 제약과 가능성을 갖는지 논해 보고 싶다. 「청운시민아파트」를 둘러싸고 정재호가 그린 최근의 그림들이 엄청난 더께의 동양화 전통 아래서 비죽이 그런 논점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정재호_청운시민아파트_2004
정재호_청운시민아파트_2004

1. 「청운시민아파트」 - 왜 그렸을까? ● 정재호의 그림들을 보면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무엇'을 그렸나 이기보다는 '왜' 그렸나 여야 할 것 같다. 그의 그림들에서 당장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이 스러져 가는 아파트 같은 흔한 일상풍경이거나, 어느 이름 모를 사람들, 그리고 TV 수상기 ? 목마 ? 새장 같은 낡고 어딘가 멜랑콜리한 감정을 자극하는 사물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의 정신이나 감성보다 먼저 우리의 눈이 발견하는 그 그려진 사물(가상)의 구체성 때문에 일단 우리는 정재호의 그림 표면에 머무르고 만다. 그 풍경과 그 사물들을 포괄하고 있던 '현실 세계'나 그 그림이 시도된 '의도의 자리'로 접어들어 가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결국 가상 일뿐인 그림은 그 원천이 되었던 현실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결과로 제시된 한 작품에 애초 그것이 출발했던 의도가 드러날 수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재호의 일련의 동양화들에 한해서 우리는 '바로 그것'을 '왜' 그렸냐고 질문해야한다. 작가가 구체적으로 그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눈이 그림의 표면에 완강하게 머무르려 하더라도 말이다. 예컨대 그는 지난 2003년 개인전 「인천여행」에서 "인천"을 그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공원 내 "청운시민아파트"를 그린 그림들을 선보인다.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가보면, 그가 처음 개인전에 내건 그림들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줄곧 우리와 동시대에 살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으로만 보아도 '무엇을', '어디를' 그린 것인지 알 수 있는 그림들에 작가는 "남산", "인천"이라든가 "청운시민아파트"같은 구체적인 지명을 타이틀로 붙이고 있다. 동의 반복적인 작품 제목을 짓는 가운데, 한편으로 그의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즉 그는 자신의 그림을 하나의 다큐멘터리로서, 그의 작업을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를 기록하는 행위로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 전통의 무게 속에서 동양화의 새로운 실천이 희박해진 지금, 그는 동양화가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온갖 시각적 재현장치들과 그 이미지들이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실현되는 이 시대, 동양화가 기록이 된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바로 이 질문의 지점이 그와 그의 작품이 대답을 시작하는 곳이고, 우리가 정재호의 작품에 대해 '무엇'이 아니라 '왜'로 접근해야하는 이유이다. 겸재의 「인왕제색도」가 250 여 년이 훌쩍 넘도록 경이로운 것은 그것이 "진경산수"로서 인왕산을 빼어나게 모방 재현해 내서가 아니라 그 골기(骨氣)에 있다. 그런 의미선상에서 정재호의 그림이 지향하는 '기록'은 사진이 잘 할 수 있는 표면의 재현이 아니라 대상을 포괄하고 있는 환경을 드러내는 데 있다. 이 때 환경은 들뢰즈가 날카롭게 포착했듯이 "특성, 실질, 힘, 사건 등으로 이뤄진 것"이다. 나는 여기에 '내력'을 추가하겠다. 예를 들어 정재호가 작품화한 청운시민아파트만 하더라도 시멘트, 철근과 같은 물질적 재료가 있고, 베란다에 선 엄마들이 놀이터의 아이를 부르는 소리, 거실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이 사랑하거나 싸우거나 아파한 드라마가 있어 그것이 30년 이상의 내력(그 아파트는 1970년대 지어졌다)으로 켜켜이 쌓여 있다. 정재호는 이 모두를 통 털은 의미에서 「청운시민아파트」를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록은 한 장의 사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어떤 첨단의 기계 재현장치로도 현상할 수 없는 사적 감각과 인식의 종합적 기록을 목표로 한다. 또한 그러므로 복도식 아파트가 정면으로 그려진 그의 대작들에서, 서울시의 "강북 뉴 타운"재개발로 인해 철거를 목전에 둔 그 아파트 거실에 버려진 온갖 잡다한 일상용품이 그려진 소품들에서, 우리가 시멘트 냄새를 맡고, 소란스런 소리를 듣고, 30년 인생드라마를 설핏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의 작품은 성공한 것이다. 하나의 '동시대 기록'으로서.

정재호_청운시민아파트_2004
정재호_청운시민아파트_2004

2. 정재호는 무엇을 그렸는가? ● 낡은 아파트, 황량한 아파트의 옥상, 구멍 뚫린 동공처럼 검게 파내진 현관들, 잡다한 고철들만 있을 뿐 인기척 없는 복도- 이 모두를 담고 아래로 쏟아지듯 위태하게 그려진 정재호의 두 쪽짜리 동양화는 나를 감동시킨다. 그 감동은 그 그림이 '잘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잘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밑으로 빨려들 듯이 그려진 그 아파트 전면은 이제 그 아파트가 처한 철거와 분쟁의 상황을 문자 그대로 '전면적으로' 드러내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는 재개발로 인한 보상 분쟁의 아파트를 찍은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단한 삶과 그 투쟁 기호조차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정재호의 이 동양화에는 재개발로 인해 어느 순간 뿌리뽑힌 삶의 절박함과 피폐함, 그리고 그 세파에 맞선 (한때) 보금자리였던 아파트의 결기가 느껴진다. 한 장의 아파트 그림이, 그것도 투시도법의 논리로 봤을 때 왜곡되게 그려진 동양화 한 폭이, 과거와 현재 삶의 질곡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그 대상을 시각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체험과 인식의 장(場)으로 접근하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마치 겸재가 수시로 인왕산을 탔듯이, 정재호는 청운시민아파트를 들락거렸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한' 아파트 이미지를 그린 것이 아니라 30여 년 세월 속에 쇠락한 '바로 그 청운시민' 아파트를 그린 것이다. 일반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로서. 경제적 이득을 위해 언제 없어져도 좋은 부정관사 '아파트'가 아니라 삶의 보금자리(이었던) 정관사 '집'으로서. 집이 집일 수 있는 것은 그 곳에 사람이 살 때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곧 폐가가 된다. 한 때 577가구가 살았던 청운시민아파트는 현재 대부분의 가구가 보상 협상을 끝내고 이주한 상태라 한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던 두 폭 짜리 쇠락한 아파트 그림이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기괴하다고 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처참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재호가 그 거의 텅 비어 가는 아파트들을 탐사했을 때, 마치 어느 날 몸만 쏙 빠져나간 듯한 세대들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벽에는 2003년 11월에 정지된 달력이 걸려 있고, 미처 잠그지 못한 수도에서는 물이 똑 똑 떨어지고, 아직 시들지 않은 버려진 화분의 식물들이 빗물로 자라는 그 집들. 그러나 남아 있는 것은 이러한 사물들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사람이, 아니 그 유령(imago)이,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완벽한 이마고인 인물사진들이 버려진 채 앨범 속에서 정지된 삶을 살고 있었다. 정재호의 「청운시민아파트」 연작 중 소품들은 이러한 사물들, 이마고들의 기록이다. 아파트가 그 속에 다(多) 세대를 내포하고 있고, 그 각각의 세대가 가족과 사물과 그에 파생된 삶의 이미지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정재호는 아파트라는 삶의 파사드(facade)를 그리고, 그 속에 삶의 내면들을 빼곡이 기록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중 나를 놀라게 한 작품은 한 여성의 갓난아기시절부터 처녀로 성장한 모습을 담은 10장의 그림이다. 작가에 따르면, 몸만 빠져나간 듯한 아파트 빈집들 가운데 한 곳에서 발견한 가족 앨범에 그녀의 짧은 반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한다. 정재호는 그 앨범의 기록 속에서 그녀의 이름과 나이까지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사진들을 작업실에 들고 와 지금 서울 어딘가에 살고 있을 그녀의 연대기를 재구성해 그렸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이름 속에 본질이 숨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인간의 얼굴 속에서 그(녀)가 살았던 삶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선한 이름을 가진 정재호의 그림 속 그녀는 그가 재구성해 낸 얼굴들 가운데 자신의 선한 삶을 은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10장의 한 인물 그림들이 놀라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며,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 그것을 성취해 냈기 때문에 감동적인 것이다. 정재호는 「청운시민아파트」의 파사드와 내부 (물리적인 의미와 심리적 ? 심미적인 의미 모두를 포함한) 공간을 상당히 놀랍고 감동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정재호_청운시민아파트_2004
정재호_청운시민아파트_2004

3.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장소를 그린다는 것: 그 제약과 가능성 ● 「청운시민아파트」를 둘러싼 환경을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잘 기록한 정재호의 성취는 동양화의 어떤 가능성을 선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정재호의 이전 작품들까지 포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나는 지난 2003년 정재호의 「인천여행」전에 대하여 "카메라의 눈으로 포착하고, 과도한 '그리기'노동을 통해 재현해 낸 것처럼 보이는 '인천풍경'은 성공과 실패로 갈린다."고 썼다(월간 art in culture 12월호 리뷰 참조) 그 전시에 보인 작품 중 인천시가지를 광각으로 포착한 대작들은 섬세하게 묘사되었고, 안정된 구도 속에서 비교적 멋지게 보였지만 내게 그 그림들은 실패로 보였다. 잘못하면 80년대 유행했던 미술대전의 양식화된 동양화로도 보이는 그 그림들의 난점은 여태 우리가 정재호의 최근작을 둘러싸고 논의했던 '기록'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기록'이었다는 데 있다. 「아! 인천」의 기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도사진에 기대하는 기록을 수행한 것처럼 보였고, 빼곡하게 그려진 도심 풍경의 표면은 의미와 시간과 삶과 단절된 듯 보였다. 여기에 특정 시대의 특정 장소를 그린 그림이 갖는 한계가 있다. 풍경은 단순히 세계의 가시적 표면이 아니다. 풍경은 프로이드가 어머니의 몸에 대해 한 말을 "풍경의 본질"로 해석한 바르트의 의미에서 "우리가 이미 거기에 있었음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중요한 것은 '거기 있었음'이다. 공간적으로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고, 시간적으로 그 속에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정재호의 「인천여행」이 '어딘가 있었을 것 같은' 감(感)만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내게 그것은 실패이며 한계처럼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 동일한 의미선상에서 이번 「청운시민아파트」는 구경꾼인 우리가 한 번도 거기 있지 않았을지라도 '거기 있었음'을 추체험하게 하기 때문에 감동적이다. 그는 특정한 시대 속 특정한 공간을 전면과 내면을 포괄해서 기록함으로써 과거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능성의 세계로 도약하고 있다. 선문처럼 들리겠지만, 겸재가 자신의 집 쪽마루에 앉아서 인왕산 바위 기슭을 더듬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거기, 그 어딘가에 도달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 강수미

Vol.20040725a | 정재호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