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주최_경기문화재단   2004_0728 ▶︎ 2004_0811

홍선웅_문수산성_한지에 다색목판_39×33cm_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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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728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행복_김종억_김준권_류연복_오경영 이경희_이윤엽_정비파_홍선웅

교육프로그램(대상_초등학생) 전시기간 중 매주 금요일~토요일_02:00~05:00pm

경기문화재단 아트센터 전시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1116-1번지 Tel. 031_231_7200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하여 ● 온갖 첨단매체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목판화의 위치는 족히 퇴영적이다. '앞선'예술의 관점, 혹은 첨단을 따르는 산업화된 미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그렇다. 차라리 원시적 매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목판화에서 물질로부터 오는 온갖 제약들과 그것에 흔적을 남기는데 소요되는 성가신 노동, 그리고 그에 따르는 전자적 정교함의 결여와 시각적 투박함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목판화는 일테면 로우테크 중 로우테크다. ● 작가는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나무에 옮기고, 안료를 먹인 다음 찍어내는 어떤 한 과정도 건너뛸 수 없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어떤 기교로도 질료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정교한 도구도 '나무'를 극복할 수는 없다. 작가의 개성도 여기서 전적으로 자율적일 수는 없다. 깎고, 파내고, 흠집을 남길수록 작가의 흔적만큼이나 나무의 속성도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준권_터-새싹_다색목판_95×190cm_2004

목판화의 이 같은 요인들은 일정부분 작가의 표현과 상상력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나무 안에서 사고해야 하고 나무의 범주 안에서 상상해야만 하는 것, 그것은 창작자에게 때론 견디기 어려운 굴레일 수 있다. 일정 크기 이상은 결코 가능하지 않은 규모의 문제 역시 질료로서 나무의 속성에 기인하는 제약이다. 때문에 목판화는 작가에게 질료적 제약들을 기꺼이 넘어서는 또 다른 재능, 즉 보다 타협적인 정신과 관대한 언어를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질료와의 소통이야말로 목판화를 겸허하고 인간적인 가능성으로 남게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은' 목판화의 가능성에 관한 작가 이경희의 언급이 마음에 담아둘 만 하다. ● "다변화되고 확장되어 가는 현대의 흐름을 타고, 넘쳐나는 물량과 물질 속에 오히려 나는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과 미시적 세계에 매료되어 있다. (...)10cm*10cm, 커야 20cm 정도 되는 화면 속에 이루어지는 광대한 우주적 공간,, 아주 작으면서도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생명의 소리들이, 사고의 자유로움으로 넘나들 수 있는 힘을 나에게 주고 있다."

오경영_가죽을 남기고_목판_38×58cm_1998

목판화는 자연을 다루면서 자연과 동행하는 길을 일깨운다. 나무를 깎아내면서 오히려 나무를 느끼고, 배우며 협력하는 가능성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공작을 통해 정복 대신, 공생, 공존을 실천할 수 있음에 관한 것이랄까. 작가는 매체를 공작하지만 매체로부터 배우기도 하는 것이고, 작가의 언어는 단지 매체에 실리는 대신 매체와 어우러져야만 하는 것이다. 주체와 질료의 협력,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하는 바를 사유하게 하는 것이다. 작가 홍선웅은 자신의 작업노트에 "정성들여 다듬어놓은 목판에서는 어머니와 같은 대지의 커다란 품과 본(本)이 느껴진다"고 적고 있다. ● 목판화는 매체며 동시에 메시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무는 구조이면서 내용이고, 도구인 동시에 궁극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목판화는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 자연을 다루는 태도에 있어, 현대의 문명이 반드시 회복해야 할 하나의 가치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참여작가 류연복은 자신의 노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 "우리는 나무의 모든 것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듯 살아 있는 삶의 지혜를, 시간을 기다리는 여유로움을, 그 여유로움 속에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버리면서 새로이 얻는 버림의 자세를..."(류연복) ● 목판화의 이같은 문인(文人)적 특성은 그것이 선호하는 소재들과도 무관치 않다. 예컨대 그 특유의 투박함으로 인해 목판화는 엄밀한 묘사에는 그다지 적절치 않은 매체가 될 것이다. 오랜 시간의 산물인 나무의 결들만으로도 목판화는 이미 지나치게 현대적이거나 현재적인 것들의 묘사에 충분히 부적절하다. 냉소나 비판 같은 첨예한 태도를 대변하기에 나무는 너무 소박하고 따듯한 질료다. 참여작가 이윤엽이 주로 다루어 온 소재들에 관한 한 설명은 목판화의 이런 점에 대해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다 : "인공적인 무엇보다는 자연적인 것, 그것도 손에 닿을 수 없는 이상화된 사물이 아니라 작가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고, 과거부터 우리의 삶에 있어 왔으나 비극적이게도 잊혀져 가는 것들이다." (황호경)

김종억_안성 마둔지_목판_107×28.7cm_2003

강행복의 꽃과 구름은 물론 객관적인 관찰의 결과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 은유적으로 읽혀야 할 것들이 지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것들은 없어서는 안 될 '아름다운 것'들이고, 굴곡진 우리 생을 반듯하게 보게 하는 반려들이다. 홍선웅은 고려와 조선시대 목판이 보여주는 투박하고 힘찬 선묘를 재현함으로써 전통을 계승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이에는 이미 현대를 보는 그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시적으로 함축된 정비파의 소나무도 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오경영은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그린 동물과 식물의 이미지들을 차용해 부드럽고 여성적인 패턴으로 보여준다. 어린아이의 따듯하고 천진한 감성을 차갑고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 김준권의 풍경들은 한국 농촌에서 흔히 만나는 모습들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논, 언덕, 소나무와 같은 토속적인 소재들을 관념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형식적 특성이다. 이 같은 문법에는 농촌의 평범한 풍경을 차라리 사의적 차원으로 읽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일테면 전통적인 진경에서 어떤 기념비적인 조형미를 규명해내려는 의도. 김종억도 재해석된 자연풍광에서도 두 가지 시점이 혼합, 병존하고 있다. 그의 화면에는 자신이 체험한 것들의 실사와 관념적인 시점인 부감이 교합되어 있다. 이에 의해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것들, 작가가 걸으면서 접했던 길과 계곡과 강변, 마을과 집과 사람들에 어떤 서사적 차원, 통시적 성격이 부여되는 것이다.

강행복_꽃과 구름_종이에 다색목판_22×31cm_2004

목판화는 구체적인 풍경들과 문명을 반추하게 하는 자연, 그리고 여전히 살아있거나 잊혀져 가지만 살아있어야 할 것들을 다루는 데 훨씬 더 어울리는 매체다. 꽃과 별과 구름, 소나무, 허름한 정자, 논밭의 한 가운데로 난 구불구불한 길, 그리고 사람들, 아이들, 삶의 고단함이 밭이랑 같은 주름을 남겨놓은 노인들..... 경기문화재단이 기획한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展』은 목판화의 이같은 측면에 새삼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고단한 제작방식, 질료적 제약, 근대적 세련미가 결여된 투박함 같은 퇴영적 매체성에도 불구하고, "보다 인간적인 면이 풍부하게 담긴" 목판화를 통해 정작 이미지의 소통이 범람하는 현대를 재조명해보자는 것이다. ■ 심상용

Vol.20040726a |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