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향한 전 세계 미술가들의 외침

평화선언 2004 세계 100인 미술가展   2004_0731 ▶︎ 2004_1010 / 월요일 휴관

강익중_놀라운 세상_혼합재료 드로잉_3×3", 264×250×310cm_2004_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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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한국_강광_강명희_강요배_강익중_강홍구_곽덕준_곽수영_권순철_김경인_김정헌_김종구_김종학_김지원 김차섭_김창렬_김혜련_노은님_민정기_박경훈_박영준_방혜자_박충흠_백남준_서용선_서정국_성능경 손장섭_신학철_신현중_심정수_육근병_윤석남_이두식_이만익_이명복_이반_이승택_이우환_이인철 이종구_임옥상_전성우_정현_정원철_정인숙_정재철_조덕현_주재환_차우희_채미현_최의순_황용엽 해외_압바스 키아로스타미_안젤름 키퍼_안토니 미랄다_안토니 타피에스_안토니 탈레 안토니오 세구이_아르놀프 라이너_베르나르 란실락_베르나르 바넷_버나드 뤼디거_베른트 쉬바르처 하마다 치메이_클라우데 가라체_코넬리아 쉴러메_콘스탄틴 체르보_달우일_다니엘 뽐므레르 다니엘 리히터_어네스트 피니온 어네스트_애로_게오르그 바젤리츠_제라드 프로멩져 게르하르트 리히터_질 아이요_귄터 위커_미주타니 이주르_쟈끄 모노리_얀 보스_쟝-피에르 베르트랑 쟝 다 하이_짐 다인_요르그 임멘도르프_쥬디 레이글_레오나르도 크레모니니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_마크 브뤼세_마샬 레이스_노버트 비스키_올라프 멧젤_올리비에 O. 올리비에 오스카 사치오 오이와_폴 레베이롤_A.R. 펭크_피에르 알레친스키_피에르 슐라쥬_피오트르 코발스키_양 치 지그마 폴케_스테판 칼루자_블라드미르 벨리코비치_얀 페이밍_하소룡_왕린슈 text_자크 데리다_자크 랑_귄터 그라스_알랭 쥬프로아_최민_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제1,2 전시실 및 중앙홀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산 58-1번지 Tel. 02_2188_6000

미술가 100인의 평화선언 ● 전쟁에서 승리를 획득하기보다는 평화를 얻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다. 그러나 평화란 언제나 잠정적이고 전쟁은 끊임없이 다시 시작되게 마련이다. ● 인간은 그만큼 전투를 즐기고 격렬하게 대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평화시에 즐기는 스포츠도 사실상 국제적 국내적 전쟁의 가장된 형태에 불과할 뿐이다. 미술은 전쟁과 아무 관련성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상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정반대로 그 둘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초기 고대문명 시대부터 미술가들은 군인들과 동맹관계에 있었다. 미술가들은 군인들의 영웅적 행위와 승리를 찬양하고 기념했다. ● 유럽에서 기독교 문명의 이름으로 그들은 세계정복의 선전에 협조했다. 알트도르퍼의 유명한 작품 「다리우스왕 대 알렉산더 대왕의 전투」가 그 한 예다. ● 신 '야훼'의 이름으로 군대의 대장들은 전쟁을 성스러운 일로 만들려고 했다. 구약성서는 이런 식으로 전쟁을 부르짖는 외침으로 가득하다. ● 오늘날 성조기 또는 기타, 다른 깃발 아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끊임없이.

서용선_폭격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181cm_2004_한국
권순철_무제_캔버스에 유채_200×300cm_2004_한국

고야는 「전쟁의 참상」이라는 연작을 통해 전쟁을 고발한 최초의 화가다. 반면에 다비드는 여전히 전쟁을 찬미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쟈파의 페스트 환자들」의 작가 들라크르와 함께 미술가들은 전쟁의 희생자에게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 반 고흐와 고갱 등은 아예 전쟁에 등을 돌리고 유럽인이 아닌 다른 인종의 사람들, 극동과 태평양의 사람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피카소는 「게르니카」에서 전쟁과 정면으로 싸움을 벌였다. 한편 「평화의 비둘기」를 통해 평화를 찬미했다. 1960년대 이후 미술가들은 대부분 전쟁을 부르짖는 프로파간다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오래 전 헬리콥터, 탱크 및 성채를 맨 처음 고안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전쟁의 기술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방향으로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모든 근대 미술가들은 기술적 발명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다. 다양한 전쟁의 기술에서부터 다양한 예술의 기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19세기를 거치면서 기술이 삶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에 도달했다. 하이데거는 그 끔찍한 위험을 고발한 최초의 철학자다. 미술은 표면상 종교적 주제와 역사적 주제에서 해방되어 스스로 기술을 찬양하는 새로운 종교로 변했다. ● 그리하여 미술가들은 새로운 전쟁의 공범자가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스스로 껴안게 되었다. 대량살상용이건 아니건 온갖 무기제조업자들과 기술적 경쟁관계에 들어가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 "전쟁, 너는 숨어!" 로트레아몽은 그의 『시(Poesies)』에서 말했다. 지금 우리가 최소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인들은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드러내놓고 범죄를 저지른다.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영화로 기록한다. 영화를 찍어 포로들에게 가한 고문행위를 자랑하고

윤석남_피흘리는 집_설치드로잉_380×244×488cm_2004_한국
정현_무제_아스콘_58×95×356cm_2004_한국

이제 숨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다, 도대체 평화는 어디 갔지? 어디 사막에라도 숨었나? 오아시스에? 또는 빙산 속에 ? 열대 정글에? 또는 먼 바다에? 2000년 동안 서로 죽이고 학살해왔던 유럽은 이제 겨우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랴. ●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알바니아를 새로운 전쟁에서 보호하기 위해 유럽 통합의 헌법을 새로 제정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 헌법의 내용을 명확하게 규정하는데 주저하고 있다. 자유주의적인 이 헌법에는 예를 들어 이미 서구인들이 코트디브아르나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그랬듯이 난폭한 폭동을 진압하고 유럽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구실아래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에 숙련되고 잘 무장된 군대를 파견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 뻔하다. ● 아이술란드 출신의 화가 에로는 1960년대 내내 베트남전쟁에 관한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했는데 거기서 그는 그 전쟁의 허망함과 어리석음을 유모어로 고발했다. 같은 시기에 파리에서 『청년회화』展은 베트남전쟁을 테마로 삼고 그 전쟁의 참혹함을 강조했다. 사실상 근대의 화가들은 공공연하게 에로틱한 이미지들로 전쟁의 잔혹성을 잊게 만들려고 끊임없이 애썼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 이후 항상 그래 왔다. ● 미술에서 그랬던 것처럼 문학에서도 전쟁에 대한 매혹에서 작가들을 벗어나게 한 것은 에로티시즘이었다. 유대 기독교 전통의 도덕적 검열에 맞서 대항하면서 예술가들은 이 측면에서 하나의 혁명을 완수했다. 처음은 사적으로 그 다음 공적으로. 앙드레 브르통, 죠르쥬 바타이유 덕분에, 그리고 사드 후작의 저작의 재발견으로 말미암아 에로스는 타나토스를 대체하게 되었던 것이다.

강요배_스텔스-부메랑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1997_한국
이승택_동족상쟁_디지털 프린트_220×180cm_1973_한국

이 점에서 프랑스 화가 앙드레 마쏭의 진전과 변화는 흥미롭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인 1914-1918년 전쟁의 학살을 상기시키는 작품에서 벗어나 분명하게 에로틱한 데상, 판화 및 유화로 나아갔다. 그리고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 독일에서 살던 한스 벨메르는 산업적 기술적 데상 덕분에 프랑스로 피난오기 직전 에로틱한 "인형"을 창안했다. 그리고 여기서 영감을 얻어 아주 독창적인 이미지의 (에로틱한) "해부학"이론을 개발해냈다. 칠레 출신잌 마타는 1943-1944년부터 뉴욕 그리고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에서 살며 일종의 에로틱한 혁명적 우주론이라고 할만한 것을 평생에 걸쳐 발전시켜 왔다. 빅토르 브로네르 역시 사적인 신화의 차원에서 그와 같은 작업을 했다. 기계들(남성들)을 하늘(여성)과 대립시킨 마르셀 뒤샹의 걸작 「독신남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는 지배적인 사회적 도덕의 법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화가들의 정신적 모델이었다. 마르셀 뒤샹의 공모자인 만레이는 에로틱한 사진작업을 완성하여 국제적 유행을 촉발시켰다. 발튀스는 그의 형 콜로소브스키와 함께 그들 작품을 통해 이성애적 그리고 동성애적 에로티시즘에 주의를 집중시켰으며 임세택은 아름다운 여성 누드 데상을 통해 모든 종교적 도덕에 맞서고 있다. 이 미술가들 누구도 전쟁을 기념하거나 찬미하고 있지 않다. 이는 완전하게 새로운 증후다. ●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엔리코 바이는 전쟁에 대한 이런 전면적 적대감을 온갖 훈장과 장식끈으로 뒤덮인 마치 알프렛 쟈리가 창안한 괴물 "위뷔대왕"과도 같은 군인들의 모습을 연작 유화 「장군들」을 통해 힘있게 표현했다. 한폄 클라펙같은 화가나 텡글리 같은 조각가는 테크놀로지와 기술문명의 급진적 비판자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 조각가 칼 프리드릭 로이터스베르드가 제작한 기념비적인 「육혈포」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도시 깡의 평화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그것과 동일하게 떠낸 조각상이 뉴욕의 유엔본부 맞은편에 세워져 있다. 미국화가 제임스 로즌퀴스트는 거대한 작품 「F111」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고 조각가이자 데상가인 다니엘 폼므뢸은 연작 「긴급상황」을 통해 고문을 처음으로 고발했다. 그리고 에로는 모든 형태의 전쟁들을 거대한 「만화」로 바꾸어 크게 비웃었다. ● 그러나 파리의 미술가들이 모든 역사적 사회적 주제를 그리는 것을 체계적으로 거부한 것은 2차대전이 끝난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였다. 각기 다른 "기하학적" 또는 "서정적" 양식에 따라 그들은 몇 년 동안 화화는 이데올로기나 프로파간다에서 벗어나려면 어떠한 것도 정대 재현하지 않고 "순수"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퍼뜨렸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종류의 주제와 상관없이 "물질(matiere)"을 탐구하고 그것을 최대로 고양하는데 몰두했다. 이론적인 에세이 『미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에서 미술의 새로운 개념을 주창하려한 칸딘스키 이후 이 "추상적" 반작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역설적인 혁명인가! "정신"이 "물질"을 노래하고 찬미하기 시작했다니. 오늘날의 미술 대부분은 형식적임 탐구에만 몰두해 있고 사회적, 정치적, "현실" 및 모든 형태의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다. "추상"화가들은 회화가 그것만으로도 "그 자체의 현실"임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학적 이상주의는 회화 전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데 기여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회화는 회화에 대해서만 그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사르트르는 문학과 미술은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세운 이 도덕적인 이론을 모든 경우에 따라야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각 개인이 보다 명석하게 사고하려면 사건들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거리"는 "무관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모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 노젓는 노예로서 같은 배에 타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불행이 닥칠 경우, 예를 들어 지구가 위험에 처할 경우, 또 다른 노아의 방주를 발명해내야 할 것이다. ● 반군국주의자들이며 반식민주의자들이며, 반종교적인 초현실주의자들은 2차대전 전에 "당신들의 전쟁도 반대" "당신들의 평화도 반대"라는 요란한 제목의 선언서를 발표했다. 그들의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여전히 옳다. 군사적 승리에 힘입어 상대편에 굴욕적인 자세를 강요하는 강제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이라크 전쟁은 이 점을 확인시켜 주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점을 계속 확인시켜 줄 것이다. 강제로 평화조약에 서명하도록 강요받은 쪽은 두고두고 복수할 기회를 노릴 것이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여전히 그들이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군사적 수단을 총동원하여 이와 유사한 "평화"를 얻기를 원한다. 이는 정말 한심한 착각이다. 이 두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은 이런 착각에 빠져 자만해서는 안된다. 미술가들은 이 엄청난 문제에 대면하여 두 손을 들고 만 것 같다. 그들은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 최소한 정신적으로라도 이 문제를 제압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전쟁을 반대하고 이 전쟁이 야기한 비인간적인 가혹행위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들 작품에는 이런 주제가 전혀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눈에 두드러진다. ● 이상의 이유들 때문에 나는 『평화선언』展의 취지에 적극 찬동한다. 특히 나는 시의적절하게 용기를 갖고 이 전시회를 조직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께 뜨거운 치하를 보낸다. 그의 독립적 정신, 활달무애함은 이 전시에 참여하는 것을 수락한 국제적으로 이름난 미술가들의 탁월함과 더불어 세게 각국의 유수한 미술관들이 본 받아야할 하나의 모범이다. ■ 알랭 쥬르로와_Alain Juffray

안젤름 키퍼_영리한 소녀들_캔버스에 혼합재료_421×371cm_1996_독일
오스카 사치오 오이와_버섯2_캔버스에 유채_91×70cm_2001_일본

선언문 ● 프랑스어로 문화라는 말은 두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땅을 경작한다는 뜻으로서 곧 토지에서 인간과 가축에게 유용한 식물을 가꾸어 내는 행위 전체를 의미한다. 두 번째는 적절한 지성의 연습과 훈련에 의하여 정신상의 여러 가지 기능과 능력의 개발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정의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만큼 문화의 의미를 지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문화란 인간의 기억과 상상력과 학문에서 인간에게 유익한 사상과 지식의 세계를 끌어내는 정신 활동이다. ● 그러므로 문화는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을 보존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이 거기에 한정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같은 이유로 문화의 사명을 그 역할의 유용성에 국한시킬 수도 없는 것 또한 자명하다. 지레나 도약대로서 문화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신을 고무하는 활력소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언어의 다양성을 통해 확연히 들어나는 제 문화 간의 차이는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데에 있어서의 상상력의 권능과 그것의 직.간접적 적용의 능력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바이다. ● 문화상의 다양성이 없다면 인간은 결국 영원히 같은 열매만을 맺는 한가지의 지식의 나무만을 가지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사실, 인류로 하여금 상호보충적인, 내생적 및 외생적 두 가지 행동 수단을 스스로 창조하도록 도운 것이 바로 이 경이적인 문화적 다양성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인류가 향유하게 된 이 문화적 다양성 자체가 한편에는 타자의 역사와 그들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인식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는 각 나라가 자신의 역사와 언어 및 자신의 고유한 전통에 대한 인식에 그 원천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만일 사정이 이렇지 않았다면 각 나라는 자기 자신에 유폐되어 문화적으로 불모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문명도 오래 동안 정체된 고인 물처럼 썩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올리비에 O. 올리비에_콘서트_캔버스에 유채_114×146cm_1996~8_프랑스
블라드미르 벨리코비치_까마귀_캔버스에 유채_330×230cm_2001_세르비아

그러므로 이 문화적 다양성의 최종 결과물이 다름 아닌 인간들이 지니게 된 놀라운 도덕적 정신적 능력으로서의 보편성의 이념이다. 실제로 헤라클레이토스에서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시대에 인류 최초의 보편성 이념을 정립한 그리스 자체도 이집트, 근동 및 동양의 문명들에 대해 방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결코 이 위대한 인류문화사적 업적을 이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 중국 역시 몽골, 인도, 티베트 등의 문화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지구상에서 니니비(아시리아) 문명 다음에 오는 인류 최초의 문명 중 하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유럽 또한 르네상스 시절 포르투갈의 탐험가들과 항해사들이 없었다면 자기 자신에 안주하여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에 뒤이어서 보여준 그러한 문화의 개발과 전개를 결코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조차도 그리스 문명에 대한 역사적 기억과 로마 공화정에 대한 끊임없는 참고가 없었더라면 '인권선언'을 작성하는 것은커녕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이 혁명이 없었다면 미합중국은 유럽에 대한 그 정치적 독립에 결코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역사는 쇠사슬 펌프(상양기)처럼 회전한다. 다시 말하면 역사는 끊임없이 새로워져 사람이 같은 물에 두 번 미역을 감을 수 없는 강에서 쇠사슬에 연이어 있는 두레박처럼 계속해서 물을 길어 내는 것이다. 동양은 안달루지에 정착한 유태족속과 아랍인들 덕분에 서양에 연결되었고, 다른 한편 서양은 실크로드의 상업과 마르코 폴로 덕분에 동양 전체에 연결되었을 뿐 아니라 비록 서양인들이 흔히 간과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과 한국의 문명에서 가져온 기술 특히 인쇄술을 통하여 동양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본 또한 한편으론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구축하였지만, 이러한 문화적 성취 역시 일찍이 한국 및 중국으로부터, 후에는 서양 전체로부터의 철학과 예술과 기술의 유입과 수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요르그 임멘도르프_독일을 바로잡는 일_캔버스에 유채_282×660cm_1983_독일
자크 모노리_독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230cm_1982_프랑스
피에르 알레친스키_타인과의 관계_캔버스에 종이, 먹_187×286cm_2003_벨기에

이상에서 우리가 제시한 것은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는 일련의 예증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구상의 유일한 초강대국이 세계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안과 갈등을 해결하는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시대에는 이 자명한 역사적 예증조차 자칫하면 망각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해있다. 문화적 일방주의나 정치? 군사적 일방주의는 모두 마찬가지로 인류에게 타락과 부패의 영향을 가져온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따라서 이번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서 개최하는 『평화를 위한 100인』展 같은 미술전은 진정한 의미의 자발적인 국제적 문화 이니시어티브를 위한 탁월한 기회와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권리는 새로운 인권선언에 포함되어야 마땅한 것이고 따라서 신 인권선언엔 모든 인종적 소수의 권리도 포함되게 될 것이다. ● 그리하여 인류 공통의 지평에는 인류의 문화 총회를 위한 드넓은 전망이 탄생되어 거기서는 세계의 모든 문화가 동등하게 취급되게 되리라. 이렇게 되면 또한 자유는 더 이상 정의와 분리되지 않고 자유의 부재증명이 더 이상 정의의 폐지를 위한 보증인 노릇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가 유토피아를 말하고 있다고?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폭넓고 건강한 유토피아에 대한 지성의 언약과 행동이 없다면 사람들은 미래로 향하여 과감히 자신을 투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미 퇴색한 편견과 믿음으로 퇴행할 수밖에 없을 뿐이다. ■ 자크 데리다_알랭 쥬프르와_2004년 7월 파리

Vol.20040729b | 평화선언 2004 세계 100인 미술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