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박주연 개인展   2004_0902 ▶ 2004_0919

박주연_Kites_DVD 프로젝션_200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조선 홈페이지로 갑니다.

갤러리 조선 서울 종로구 소격동 55번지 Tel. 02_723_7133

박주연은 지난 작업들에서 버려진 과자봉지나 유효기간이 지난 크리스마스 트리, 지하철역의 간이 사물함과도 같이 사물과 개인 사이의 사회적 유대관계가 지워진 채 중성적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에 관심을 보여왔다. 도시의 간판에 써있는 모든 문자들을 포토샵으로 지우는 작업에서도 간판이 달린 장소와 그것이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정체성간의 상관관계를 지워버리고 중성화시키는 태도가 드러난다. 지난 작업들이 이처럼 제도적 컨텍스트 안에서 존재하는 사물들과 개인간의 관계를 무화 시키는 지점들을 포착했다면, 근작들에서 박주연은 중성적 지대 속에서 개인이 존재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던진다. 이와 같은 태도는 포드 자동차 안에서 30년 간 살아온 앤 할머니에 관한 비디오 작업 Forget me not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작업에서 박주연은 앤 할머니가 사회 속에서 인증 받지 못하는 영역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자기 나름의 고유한 '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포착하였다.

박주연_Shoe Repair House_알루미늄, MDF 보드_120×140×100cm_2004
박주연_Dragon Fly_DVD 프로젝션, 평상, 형광등, 알루미늄 가루, 플라스틱 컵_설치_2004_부분
박주연_Everything in its right place_일포크롬 프린트_16×25cm×44_2004_부분

이번 전시에서 박주연이 보여주는 가건물, 공원의 벤치, 돗자리, 평상과도 같은 공간들은 완전히 개인의 영역으로 확정되지 않고 잠시동안 머물도록 성격 지워진 간이역 같은 장소들이다. 이동의 중간에 잠깐의 휴식을 위해 머무는 이러한 공간들은 그 특성상 도시라는 확고한 제도적 틀 안에서 일종의 '빈 칸'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은 공간들이다. 고수부지의 벤치 위나 돗자리 위에 사람들은 자신의 물건을 제멋대로 배치해놓고 잠시의 망중한을 즐기다가 또다시 도시생활의 패턴 속으로 들어간다. 박주연은 임의적인 공간의 여백 위에 펼쳐진 각기 다른 흔적들, 개인의 존재양상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소지품들의 레이아웃들을 통해서 이동과 정착의 중간 지대에 머무는 존재들의 연약하고 불안정한 흔적들을 포착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 중심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구두수선방이나 주차관리소와 같은 가건물은 제도적으로 안정된 아이덴티티를 부여받지 못하는 임의적인 장소이지만, 누군가가 물리적으로 거주하면서 일을 지속하는 공간이다. 언제라도 제도적인 권력에 의해 철거될 수 있지만 분명 사람이 머물면서 살아가고 있는 삶의 공간인 것이다. 박주연의 가건물들은 실제의 모델들 보다 더 작은 스케일로 제작됨으로써, 모뉴멘탈한 특성을 최소화하고 거대한 구조 속에서 고립되어 있는 약하고 작은 존재성을 부각시킨다. 가건물과 더불어 보여지는 주차 방지용 쇠기둥 역시도 임의적이면서도 무언가 공간 속에서 자기 영역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읽혀진다.

박주연_Everything in its right place_일포크롬 프린트_16×25cm_2004
박주연_Everything in its right place_일포크롬 프린트_16×25cm_2004
박주연_Everything in its right place_일포크롬 프린트_16×25cm_2004

박주연이 언제나 포착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공간을 강하게 점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간에 스쳐 가는 아주 미미한 흔적들이다. 연약한 존재들에 대한 박주연의 애정은 버려진 과자봉지를 소재로 한 Rhyme이나 비닐봉투를 다룬 Parachute walk와도 같은 지난 작업에서부터 지속되어왔다. White on White와 같이 공사중인 전시장을 테마로 한 작업에서도 그는 무언가 건설되어가고 구조화되어 가는 역동적 현장이 아닌 공사장의 임의성에서 드러나는 연약하고 시적인 측면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박주연의 작업은 자신의 존재성을 너무 강하게 주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시적인 흔적들과의 만남, '소유'가 아닌 '배치'와도 같은 방식을 견지한다. 그의 작업들은 표류와 정착의 중간 지점에서 홀로 자신의 영역을 지켜 가는 존재들을 표상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가건물, 쇠기둥, 벤치, 돗자리, 하늘을 보일 듯 말 듯 지나가며 날아가는 연들의 영상과 같은 이미지들도 모두 도시 공간의 코드에서 벗어난 여백 속에서 연약한 자기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존재들이다, 제도적 틀에서 비껴있으나 여전히 살아있으며 여전히 무언가를 주장하고 있는 존재, 스펙터클하지도 큰 목소리를 내지도 않지만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존재, 곧 작가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있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 이은주

Vol.20040911b | 박주연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