走光性 走狂人_주광성 주광인

최수앙 조각展   2004_0923 ▶ 2004_1004

최수앙_On-line mania_유리섬유, 우레탄, 전기장치_각 56×30×12cm×21_2004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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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923_목요일_06:00pm

스페이스 셀 서울 종로구 삼청동 25-9번지 Tel. 02_732_8145

참을 수 있는 조각의 가벼움거대하게 부풀어 올라, 차라리 기둥이라 불러야 마땅할, 생식기를 흡족하게 두 팔로 싸안고 있는 왜소한 사내. 반면 번데기만도 못한 꼬추를 가랑이 사이에 달고 있는 근골 탄탄한 사내. ● 떡 벌어진 어깨, 또 그 만치 벌린 두 다리, 앞뒤로 줄줄이 상대의 엉덩이에 생식기를 갖다 꽂은 동일한 사이즈의 '백열등 근육맨(들)' ● 만일, 불과 5년 전 내가 최수앙 작업에 관한 리뷰를 부탁 받았다면, 필시 나는 당시 한동안 내 스스로 천착하고 있었던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론과 최의 조각적 상징성을 결부시켜 글의 실마리를 찾으려 들었을 것이다. 그 만큼 외양적으로 최의 작업은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남근적이다. 범성론(pan-sex theory)이라는 극언까지 들을 만치, 프로이트 이론은 태생적으로 해소 못한 리비도의 집요한 출현 경위와 그 과정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아울러 「on-line mania」를 필두로, 「과대망상」 연작을 통해 다부지고 마초적인 신체와 크게 부풀린 생식기를 아예 '대놓고' 부각하는 최의 출품작들은 프로이트를 일으켜 세우기에 하자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최의 작업이 표방하는 일견 마초적 성징(性徵)들은 시각적 효과 이상의 의도(즉, 리비도의 시각적 발현)를 노린 것 같진 않다. 그런 면에서 프로이트는 그를 이해하는데 양념은 될지언정, 메인 디쉬(main dish)는 아니다.

최수앙_On-line mania_유리섬유, 우레탄, 전기장치_각 56×30×12cm×21_2004_부분

장르로서의 조각에 조예가 없는 내게조차, 인체 조각상을 대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품게 되는 어떤 고정적인 불편함이 하나 있는데, 여기서 실토하면 이렇다. 가령 여전히 '등신(等身) 사이즈+발달된 근육'으로 특징되는 고전적 인체 조각, 거기에 육중한 돌과 철근이기 마련인 재료, 이런 작업을 전시장에서 마주할 때의 식상함이란... 등신 사이즈의 리얼리즘 신체 조각상은, 굳이 회화로 치면 '여인 좌상' 정도 될까? 하기야 인간의 신체만큼 평면과 입체, 양 분야에서 쉼 없이 소재와 주제를 제공해 온 효자(孝子)가 없긴 하다. 하지만 남성 고객을 염두에 둔 일련의 여인 좌상 그림들이 결국에는 소재 빈곤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에 갇히듯, 근육질의 매력에 과잉되게 호소하는 일련의 조각 작업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매너리즘에 빠져있다. 하여 인체미를 전면에 내세우는 조각 작품 앞에서 나는 늘 할 말이 없다. 그런 이유 탓에 내가 최의 작업 「on-line mania」을 처음 이미지 파일로 받아봤을 때, "여전히 근골 탄탄한 신체로군."하며 내심 시큰둥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후 「과대망상」 연작과, 작업들 각각의 사이즈가 장난감 수준(?)이라는 걸 확인한 후, 그의 작업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최수앙_과대망상_합성수지, 렌즈, 조명장치_각 높이 10∼20cm_2004_연작
최수앙_과대망상_합성수지, 렌즈, 조명장치_각 높이 10∼20cm_2004_연작
최수앙_과대망상_합성수지, 렌즈, 조명장치_각 높이 10∼20cm_2004_연작

그 다른 관점이라 함은, 완벽한 구현은 아닐지언정 기존 인체 조각적 언어가 고수했던 어떤 무게감으로부터 탈피하는 방식을 최수앙이 취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우선 전술했듯이 최의 인체상들은 죄다 아담하다. 「과대망상」이라는 거창한 연작명이 무색할 만큼 조각품이기보다 차라리 인형이라 불러줘야 마땅한 수준의 사이즈에 만족하고 있다. 그래도 쪼그만 녀석들(높이 10cm 내외)이 제법 온몸에 잔뜩 힘주고 있다. 큰 부피에 의존해 공간을 '차지함으로써' 조각임을 천명해왔던 기존의 육중한 신체들이 아니다. '소박한' 사이즈로 자기 할 몫만 다 하면 그만인 그런 조각이다. 최의 작업이 전통 인체조각 개념에 거역하는 것은, 이처럼 물성(物性)의 경제적 활용 이외에도 또 있다. 바로 전시 제목이 웅변해주듯 조명의 활용이다. 조명의 섬세한 뉘앙스는 통상 회화의 장구한 역사가 자랑해온 미덕이다. 미술사의 거장들에 의해 구현되어 왔고, 그들이 장악해 온 명암의 마술에 관객들이 감탄하곤 했다. 화가들은 그 2차원 평면에서 실행되는 미세한 색 조절을 통해 3차원 같은 효과를 얻어내곤 했다. 하지만 조각은 매체 속성상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굳이 많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최의 작업은 회화적 조명 인상(印象)을 입체 작품 속에서 구현시킨 소박한 사례이다. 그는 「과대망상」에 한해서 개별 작품마다 조명을 하나씩 때려줬다. 그렇지 않아도 인체의 특정 부위가 과장스럽게 부풀어 오른 최의 왜곡된 조각상 위로, 다시금 빛의 인위적 연출 효과가 떨어져 내린다. 바로크 회화 같은 진한 콘트라스트를 뒤집어 쓴 자그마한 조각 인형들은 관람객에게 조각을 바라보는 관행을 반성하게 해준다.

최수앙_과대망상_합성수지, 렌즈, 조명장치_각 높이 10∼20cm_2004_연작
최수앙_과대망상_합성수지, 렌즈, 조명장치_각 높이 10∼20cm_2004_연작

한편 거기에 아울러 그는 2차원적 작업으로부터 또 다른 아이디어를 훔쳐온다. 바로 만화적 상상력이다. 근사한 표현이 될 진 모르겠으나, 그가 실현한 작업들은 만화적 상상력의 흔적이 많이 묻어있다. 원근법이 무시된 채 '주먹대장' 같은 손으로 구걸하는 거지, '손가락 권총' 자폭으로 인해, 머리가 불똥처럼 터져나간-머리 터진 놈치곤 참 귀엽게도 자살했다 - 어느 비만 사내, 허리처럼 굵은 남근을 껴안은 중년의 과잉된 만족감.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이 같은 회화와 만화적 속성을 살려낸 작법(作法)은 「공사중」에도 비슷하게 묻어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사중 표지판속 내용-실루엣으로 대충 대충 그려진 삽질하는 일꾼의 기호- 을 입체로 늘려 잡아 빼내지 않았는가! 이 역시 2차원 작업의 기법에 만화적 상상력을 탑재시켜 3차원으로 변형한 사례이다. 하물며 실물(life-size) 크기로 확대된 「공사중」은 차라리 입체 만화에 가깝다.

최수앙_Under construction_합성수지에 페인트_110×190×95cm_2004

미시적 관점에서 최수앙의 작업들은 많은 부분, 남근적 근육맨들의 출현으로, 작가의 무의식적 리비도가 의식적으로 조형화된 양상으로 이해될 소지가 없지 않다. 그 사실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프로이트라는 거물을 이 작업을 설명하기위해 개입시킬 필요 역시 더더욱 없다. 왜? 최수앙은 그저 남자 아닌가? -_-;; 그럼에도 거시적으로 바라본 그의 작업은, 조각이라는 장르가 오늘날 당면하고 있는 난처한 상황이 투영된 결과물로 이해될 법도 한 것이다. 답습적인 조각의 작법에 대한 회의와 매스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순수미술 창작자들이 직면한 어색함을 돌파하려는 의도 말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결코 심각하지 않은 주제(「과대망상」 연작과, 「공사중」, 「On-line mania」를 통해 대관절 어떤 무거운 주제의식을 느낄텐가?)와, 또한 결코 질량적으로 부담되지 않는 소재(그의 작품은 일단 부피와 무게 면에서 기존 조각보다 가볍다), 그리고 회화와 만화가 갖는 매체적 강점을 자신의 입체 조형물 속에 무난한 정도로 흡수시킨다. 조명 연출로 인한 콘트라스트 효과, 흥겹게 변형된 인체상, 평면작업을 통해 보다 익숙한 이미지들의 입체화 등이 그러하다.

최수앙_빛을 잃은 사람들_겔코트, 조명장치, 시트_20×20×25cm/120×120cm_2004_부분

하여 최수앙 스스로는 자신의 작업을 (협의적으로)주광성(走光性)이라 규정하고 싶은 모양인데, (광의적으로)그의 작업은 빛을 쫓기보다는, 한정된 미술언어에 대한 조바심에 가까운 변화 욕구를 쫓고 있다. 오죽 현 상황이 갑갑하면 '손가락 권총'으로 맨 머리를 터뜨릴까... ■ 반이정

Vol.20040924a | 최수앙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