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로 소통하기

이영선_이원영_이지선_정미경展   2005_0107 ▶︎ 2005_0118

이영선_108 forms of thought I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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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107_금요일_05:00pm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본 전시의 주제인 "카오스로 소통하기"는 "부분들의 카오스적인 집적과 전체적 소통"의 압축적인 표현이다. 이 주제는 이원영, 이지선, 정미경, 이영선에 의해 각각 4가지 측면에서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첫째, 개인과 사회라는 사회학적 맥락에서, 둘째,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심리적 측면에서, 셋째, 인체나 사물이 시각적 대상이 되는 물리적 조건이라는 면에서, 넷째, 텍스트와 이미지를 형성하는 기호학의 관점에서 전체와 부분의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영선_박스핀랭귀지전반을위한아이디어스케치모음_종이에 펜_42×90cm_2004
이영선_코러스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cm_2004
이원영_시간을 감추다_영상_00:00:16_2004_부분
이원영_00000324_영상_00:00:17_2004_부분
이원영_가족이라는 이름으로_캔버스에 유채, 설치_210×520×50cm_2004

이번 전시는 부분과 전체의 소통이라는 문제를 포스트모던 미술의 주제로서 기획하였다. 작가 4인의 작업은 중심 없는 부분들로서 전체가 이뤄지는 상황이 현실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전체의 형성은 어떤 소통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포스트모던적 전체의 특징은 부분들이 카오스적 집적을 이룬다는데 있다. 카오스적인 부분들이 전체적 소통을 이룩한다는 이 신비로우면서도 미묘한 변증법이 바로 새로운 미술을 가능케 한다. 말기자본주의의 시대, 급속한 정보조작의 시대, 컴퓨터에 의해 가능해진 무한복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수많은 상품의 소비자로서, 일관성 없는 다양한 역할의 담지자로서, 분산되고 공허하게 파편화된 개체로서, 진리를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제임슨이 말기자본주의의 포스트모던 사회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인본주의적 가치의 파국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카오스적인 분열의 세계가 결코 비관적이지만은 않으며, 전체적인 소통의 가능성이 있음을 미술을 통해 제시하는 것이 본 기획의 야심적인 목적이다.

이지선_3305개의 yellow-손흔들다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LCD, DVD_229×223cm_2004
이지선_pink, blue, green_캔버스에 유채_114×310cm_2004
이지선_yellow3_영상_00:07:43_2004_부분
정미경_중력 I,Ⅱ_캔버스에 유채_144×175cm_2004
정미경_중력과 사물의 관계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03

카오스를 통한 소통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시간을 매개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본 전시에서 4인의 작가들은 시간을 미술로 도입하는 시도들로서 부분의 집적이라는 방식, 그리고 영상작업의 방식을 택하였다. 집적과 영상작업은 순간의 포착과, 포착된 순간들의 카오스적 연계 이룸을 표현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그러면서도 이들 4인은 르동이 말한 것처럼 '볼 수 없는 것의 도움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회화의 논리'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들이 보고자 한 것은 시간적으로 미래에 해당하는 새로운 현실로서의 이미지이며, 시뮬라크르이고 기호이다. 영상과 집적의 기법을 통해 드러난 스크린과 캔버스의 표면은 작가가 그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작가의 심정이 대상과 다시 어지럽게 섞여있는 카오스적 소통의 세계이다. 카오스적 집적을 이루는 부분들을 결코 기계적인 부품들로 파악하지 않으며, 오히려 각 단위를 개성과 정체성을 갖고 있는 요소들로 제시하고 있다. 작업 전반에 걸친 정서 역시 근대의 실존주의적인 우울한 낭만이나 소외의식, 혹은 순진한 인본주의적 감흥이나 관념론적 방관의 자세, 혹은 낭만적 자기심취를 넘어서서 건조하고 냉정하다고 할 만한 현실의 파악―회화와 과학은 동일시대에서 만난다는 마흐적인 확신에 입각하여―을 거친 후의 전체적 소통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 조흥갤러리

Vol.20050107a | 카오스로 소통하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