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관계의 미학을 찾아서

정헌조 개인展   2005_0105 ▶︎ 2005_022

정헌조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각 49×49cm / 300×300cm_200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정헌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10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평일_10:00am~06:30pm / 일요일_10:00am~05:30pm

금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35_6317

국내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에서 판화공부를 마친 최근 몇 년 사이에 정헌조의 작업은 적잖은 변화를 보인다. 재학당시에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입상한 경력은 작가가 동판화에 투자한 노력과 그 성과가 적지 않았음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의 최근 작업에 나타나는 변화는 마치 극에서 극을 달리는 것 같다. 이른바 피아노나 첼로 등의 악기를 구체적 형상으로 조형화 시킨 이전의 작업에서 벗어나 최근의 화면은 일체의 형상을 벗어버린 기하학적 도형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이러한 변화에 대해 주목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정헌조의 예술관의 단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그의 과정이 비단 작가 자신의 조형적 성찰의 결과를 넘어 현실을 반영하는 보편적 당위의 결과라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헌조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각 49×49cm_2004_부분

이번 두 번째 개인전에 선보인 작업들은 정사각형의 화면 안에 원의 이미지를 조형화 시킨 두개의 경향이 주를 이룬다. 그 하나의 경향은 텅빈 여백에 하나 또는 둘 또는 세 개의 원이 배치되어 있는 시리즈가 그것이다. 화면 안에 자리 잡은 갈색의 원은 농구공이나 혹성 아니면 세포핵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데 구체적인 이름은 없어 보인다. 한편 정헌조가 의욕을 보이는 또 하나의 경향은 열여섯개의 정사각형 화면을 다시 사각형으로 배치해 놓은 작업인데 벽면에 설치된 각각의 정사각형들 사이에는 원형 이미지가 나타나도록 되어 있고 그것은 상단에서 좌우의 하단으로 내려오면서 크기가 작아지고 결국에는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러한 두 유형의 작업들을 통해 정헌조의 근작들은 개별적 화면 자체로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을 야기하는 조합의 형식을 통해 새로운 의미구조를 발생시키는 것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헌조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각 45×45cm_2004
정헌조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각 45×45cm_2004
정헌조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각 45×45cm_2004

정헌조는 이러한 관계성의 형식을 '시간성'이라는 화두에 접목시키려 한다. 그의 작업노트를 보면 "나의 작업의 밑바탕에는 시간성이 항상 내재되어 있다. 나는 형태와 내용에 있어서 그 시간성을 바탕으로 한 본질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자신이 내세우는 시간성을 통해 대면코자 하는 것은 "영원, 순간,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안의 변화들"이라는 대목도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정헌조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성과 소멸하는 사물들에 대한 단상이자 이러한 자연적 현상에 내재된 법칙성을 주목하려는 시도라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가 선택한 것은 결국 본질의 세계이자 비구상적이고 기하학적 형상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정헌조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각 58×58cm / 200×200cm_2004

사실 본질적 세계에 대한 관심과 표상의 방식은 1970년대 이래 한국화단의 주요 흐름의 하나로 정착되어 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정헌조의 작업은 일견 두 가지로 상반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변화하는 세대의 현실을 괄호 안에 집어넣어 버리고 본질론에 근거한 철학적 성찰의 영역으로 진입함으로서 소위 엘리트적 예술에 함몰하여 버리는 오류를 다시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작가가 내세우는 구도와 여백 그리고 이미지의 변화에 따른 정중동의 미학이란 지나간 시대의 형식주의라는 우산 속에 고립됨으로써 일상적 삶에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고고한 예술이 되어버린다는 지적도 아울러 받을 수 있다. 한편 긍정적인 측면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감각과 세속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최근 한국화단의 경향에 비추어 예술의 영원한 본성과 가치를 존중하려는 태도와 시간의 유한성에 근거한 대자연의 법칙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태도는 오늘의 청년세대의 작가들에게 하나의 신선한 제안으로 다가온다는 측면이다. 이른바 현실과 세속에 관심이 쏠려있던 과거의 화단 경향에 대응하여 예술이 지닌 본성과 손의 기술 그리고 엄격한 화면형식을 패러다임으로 변주하려는 태도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헌조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각 80×60cm / 80×200cm_2004

사실 판화를 전공하고 있는 정헌조의 작업에는 조형적 엄격성과 기법의 장인적 완성도가 남달리 강하게 드러난다. 비단 최근의 작업이 정방형의 화면에 원이라는 최소한의 조형요소로 꾸며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작가의 장인적 태도와 역량이 과다할 만큼 담겨있음을 보게된다. 이는 작가의 세밀한 천성과 자신이 펼쳐내려고 하는 새로운 조형세계에 대한 신중함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가 일구어낸 원형 이미지는 콜라그라프와 모노트린트 기법으로 찍혀있으며 물질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재료들로서 금강사 분말이나 금속성이 느껴지는 금분 혹은 은분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콜라그라프는 아크릴 판에 샤를 얹힌 후 아크릴 물감으로 바탕칠을 하여 건조시키며 제판 작업을 마무리 하고 판위에 작가가 정한 원의 크기를 설정하여 모노프린트로 찍어낸 것이다. 이 기법의 특성은 붓의 텍스추어나 질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 판화에 회화적 부드러움과 결의 표현을 더해준다.

정헌조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각 45×45cm / 300×300cm_2004
정헌조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각 48×48cm / 300×300cm_2004

정헌조의 이번 두 번째 개인전이 1999년에 가진 첫 번째의 그것과 형식과 내용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음은 앞으로 그의 예술세계가 어떻게 변화되어나갈지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하나의 세계에 천착해 거기에서 세계를 발견해 나가는 방식과는 달리 정헌조의 작업은 차별화된 타자의 세계를 넘나들며 시각과 형식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작업에 대한 기대를 그만큼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라캉의 주장처럼 해체되고 분열되어버린 현대인의 주체가 우리시대의 초상이라면 이러한 관점을 통해 시대를 바라보는 태도는 또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인정한다면 앞서 두개의 상반된 표현 형식에 따른 평가의 차별성도 그 자체로서 모두 수용할 성질의 것들이다. 단지 정헌조가 고려해야할 하나의 문제는 예술이 의미생산의 형식이라면 그것의 근간은 소통에 있다는 점이며, 예술이 철학이 될 때 종말을 고해버린 모더니즘의 교훈이다. ■ 김영호

Vol.20050111a | 정헌조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