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꿈_Dreamscape

정동석 사진展   2005_0117 ▶ 2005_0131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00719a | 정동석 사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117_월요일_05:00pm

갤러리 조선 서울 종로구 소격동 55번지 Tel. 02_723_7133 www.gallerychosun.com

네온으로 그려진 밤 풍경 ● 정동석은 짙은 수면에 잠기듯 어둠 속에 서있는 건물의 외관을 찍었다. 사실 그것이 건물인지 무엇인지 알 도리는 없다. 온통 검은 색으로 적셔진 화면에 그저 가는 선이 칼라로 머물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문득 밤에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고 드러내는 수단으로 설치된 네온에 주목했다. 그 네온의 구성과 조명, 색상은 밤의 풍경을 균질하고 보편적으로 마감시킨다. 대한민국의 모든 밤은 바로 이런 풍경으로 한정되어있다. 서울이나 수도권뿐만 아니라 모든 곳이 그렇다. 낮과 밤은 다르지 않지만 조명에 의해 밤은 낮과는 별도의 세계인양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명시적이며 구분과 차별이 존재하는 낮과는 다른 차원에서 밤은 존재한다. 어둠은 가시적이며 이름으로 인해 분리와 배제가 이루어지는 밝음의 세계를 덮는다. 그런 면에서 밤은 상당히 평등하고 민주적인가 하면 상처를 진정시키고 모두를 침묵으로 돌아보게 하는 내면의 시간을 유장하게 드리운다. 그래서 밤은 성찰적인가 하면 연민과 슬픔, 우울이 평화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밤은 빛이 지워지고 사라진 상태다. 그래서 온통 검은 색으로 물들어있다. 검정은 단순한 색 혹은 무색이다. 그러니까 검정이란 밝고 어두운 구별을 결정하는 우리 눈의 망막 간상체가 사물에 대한 인지과정에 관하여 나타나는 색상일 뿐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색이며 우주의 섭리인 빛과 어두움의 이치를 드러내는 색이기도 하다. 인간은 가장 단순하고 익숙한 섭리, 즉 낮과 밤, 빛과 그림자를 당연하게 여긴다. 따라서 흰색, 검은 색은 색이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세계의 얼굴, 낯빛이다. 그런가하면 검은 색은 삶을 기피하는 것, 즉 모든 긍정적인 발전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을 암시하는 색상이기도 하다. 검은 색은 생명이 다하는 최후의 상황이며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검은 색은 이해할 수 없는 것, 소멸하고자 하는 모든 감정을 비유하는 색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정동석이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 한지는 온통 짙은 검정 색으로 물들어있다. 마치 검은 먹물에 잠겼다 건져진 듯하다. 한지의 내부로 검은 색상이 스며들어 일체가 된 듯하다. 그러나 이 사진은 흑백사진이 아니다. 음영이 차이가 나거나 흐리고 진한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어두운 배경에 다만 네온의 선만이 지나간다. 네온을 빼면 절대적인 암흑, 구분할 수 없는 어둠이 납작하게 드리워져있을 뿐이다. 모종의 관념과 감상적인 분위기로 적셔진 흑백사진과는 달리 이 사진은 감정을 배제하고 관념성을 지운 자리에 다만 도시의 밤 풍경의 한 단면을 면도날처럼 보여준다. 캄캄한 밤, 그 어딘가에 특정 색채가 그려진 듯 직선으로 사선이나 유선형으로 자리한다. 가만 들여다보면 그것은 건물의 외관과 표면에 걸쳐놓은 네온이 발광하는 인공의 불빛이다. 인공의 불빛이 많을수록, 강렬할수록 저 먼 별빛은 자리를 감춘다. 네온의 색상은 차갑게 빛나고 그 위로 무심하게 달이 떠있기도 하다. 결국 밤이란 세계, 공간 역시 빛을 동반한 가시적 존재가 지속해서 낮을 연장하고 시간을 확장해서 우리들의 망막을 장악하는데 그것은 거대자본이나 소비와 욕망을 자극하는 건물의 외관에서 밤새 '발광'(發光)한다. 낮과 밤이라는 두 개의 세계가 나름대로 낭만적으로 존재했던 시간은 근대에 와서 달라졌다. 전기와 조명, 상업과 자본증식에 따라 밤은 낮시간의 지속으로 확장되고 생산과 소비의 동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밤도 욕망과 유흥과 소비의 현기증 나는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오늘날 밤은 이전과는 달리 낮과 하등의 구분이 없다. 빛과 낮을 연장시켜 하루를 온통 환한 불빛과 욕망 아래 전시하는 것이 도시다. 그래서 도시는 밤에 더욱 들뜬 욕망과 환상을 조명을 통해 부여받는다. 밤에 드러나는 건물들은 조명과 네온 간판으로 더욱 세고 강한 자극을 보여준다. 연출한다. 어쩌면 밤의 풍경이 도시, 자본주의의 진정한 풍경인지도 모르겠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작가는 모든 것을 지웠다. 사진은, 눈은 빛으로 가득한 세상의 이미지를 자기 눈으로 보고 드러낸다면 그는 밤을 의도적으로 택해 모든 것을 은폐시켰다. 따라서 찍힌 것은 대상이고 개별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차별과 구분, 분리와 배제 이전에 동일한 존재들로 평등하게 엉켜있다. 이것은 밤이 주는 힘이다. 낮이 잘나고 힘있고 권력적인 존재들의 과시적 장이라면 밤은 그런 차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인위적 편재인지를 말없이 덮어버린다. 어떠한 문구나 이미지, 사람의 흔적, 그리고 밤의 풍경과 그 주변을 연상할 어떠한 정보도 없다. 모든 것은 부재하다. 있다면 조그마한 단서처럼 조심스레 놓인 선, 불빛 같은 네온의 선들만이 달랑 위치해있다. 간혹 조명이 끊어져 불빛이 감추어진 것도 있고 생략되어 있는 것도 있다. 가늘고 얇은 단속적인 선들이 짙은 암흑을, 검정의 밤을 가로지르거나 흥미로운 선의 자취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것은 흡사 그림을 닮았다. 얼핏보면 추상적인 그림을 연상시킨다. 단서처럼 주어진 선은 상상력을 동원해 밤의 그 무진장한 만화경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말이 무성하고 과잉의 볼거리들이 넘쳐나는 낮의 세상에서 그가 택한 말하기는, 보여주는 방식은 역설적으로 침묵과 어눌함 속에서 함축과 본질만을 간파하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아주 미미하고 정보량도 적고 최소한의 것만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이런 보여주기는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주어진 단서를 곰곰이 읽어보도록 권유하는 편이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사실 밤을 찍은 대부분이 사진들은 상상과 환상을 의도적으로 들추어내거나 야릇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관심이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존의 풍경사진들이 한결같이 의미부여와 관념을 드리우면서 감상을 상투적으로 증폭시켜내는데 반해 정동석의 풍경은 늘상 그런 기대치를 저버리고 일종의 '반풍경'적 자세를 고수해왔다. 이번 밤 풍경 역시 그만의 시선과 자세로 동시대의 밤 풍경을 독특하게 보여준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모든 도시의 밤은 거의 동일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밤은 그런 면에서 평등하면서도 획일적인 풍경을 또 한 번 반복하고 연장한다. 오로지 관능과 유혹, 현혹의 불빛만이 어둠을 지배한다. 어둠 속에서 휘황하게 반짝이는 불빛과 네온간판의 문자들은 도시인을 더욱 고독한 방황, 걷잡을 수 없는 비릿한 욕망의 소요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곳의 밤은 낮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으로 돌변하는 기이한 체험을 준다. 그래서 그 불빛, 조명과 네온이 만든 선을 보노라면 슬프다. 그것만큼 비정한 도시의 추상성을 보여주는 상징도 없을 것이다. ● 교회, 모텔, 유흥가, 커다란 빌딩, 건물의 외관들은 간략하고 단순하게 그 윤곽, 형태감을 네온 선으로 부감시킨다. 선이 죽죽 내려가면서 꺾이고 다시 내려가면서 어떤 형상을 연상시키는 이 화면은 선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사진이다. 도시에서의 이미지는 전파, 조명, 디지털로 이루어졌고 그것이 만든 풍경으로 자존한다. 이전의 밤 풍경이 달빛과 먼 별빛에 의지해 가까스로 드러났다면 오늘날 밤은 조명, 인공의 불빛으로 장식되어 넘친다. 그래서 밤에 그 불빛은 모든 시선의 종착점과 휴식점이자 다시 밤에만 살아나는 좀비나 드라큘라의 욕망을 도시인들에게 강제한다. 도시의 밤은 조명을 찾아다니는 드라큘라, 좀비들의 공간이다.

정동석_밤의 꿈_한지에 프린트_29×29cm_2005

네온의 조명, 밝기는 번지면서 흐려진다. 건물의 가장 바깥자리, 외곽에 붙어 서식하는 이 네온의 끈들은 건물의 높이와 규모를 알리고 증거하며 그 모든 시간 위에서 영생하고자 한다. 작가는 밤에 그 네온의 윤곽선들만을 화면에 가득 담았다. 오로지 그 불빛 띠, 조명 선만이 어둠 위에 떠있고 가로질러있다. 흰색, 파란 색, 붉은 색, 녹색의 네온 형광등은 그 둥그렇고 구부러진 몸통을 빛으로 채워 걸린다. 마치 댄 플레빈(Dan Flabin)의 작업처럼 그 조명은 주변을 따뜻하게 감싸고 번져나가면서 뜨끈한 온기로 채운다. 동시에 그것은 비정하고 서늘하다. 모서리에서 보면 그 네온은 화살표를 연상시킨다.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를 염원하는 욕망의 단편들이기도 하다. 간혹 어떤 네온은 마치 모스크바의 성당이나 크렘린 건물을 닮았고 더러 이국적이고 환타지를 자극한다. 밤의 네온은 모든 이들을 낮과는 다른 미지의 세계, 환상과 낭만, 동경과 유혹으로 채워진 어떤 세계를 허영처럼 연출한다. 낮의 그 어수선하고 부산하며 정신 산란한 이미지를 감추고 선명하게 분할된 공간을 하나로 통합해버리고 낯선 존재로 탈바꿈한다. 그 변신이 가능한 것은 전적으로 조명에 의해서이다. 어떤 작품은 수직의 네온을 경계로 해서 건물의 외관에 비친 달이 두 개로 번져있다. 거기 달이 구원처럼 떠있다. 그러나 그 달은 도시인들에게 진정, 어떠한 구원을 말해줄까? ■ 박영택

Vol.20050117b | 정동석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