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시간과 공간의 채집

한상진展 / HANSANGJIN / 韓相振 / painting   2005_0125 ▶︎ 2005_0202

한상진_문명의 침실연작_캔버스에 종이, 안료, 유화물감, 혼합재료_181.8×227.3cm_200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 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7(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숨 쉬는 시간과 공간의 채집 ● 한상진의 근작들에서 작은 정사각형들에 그려진 검정색과 흰색의 온갖 형체들은 기억이라는 깊은 우물에서 힘겹게 길러내진 파편들이다. 이 파편들이 자아내는 갖가지 소리들이 조용하고 엄숙한(아니 조용하고 엄숙해야 할) 정방형 그리드 공간에 퍼져 나간다. 그런데 그것들을 기억의 파편들이라고 할 때, 그것은 정확히 어떤 기억들인가? 이 동그란 형상은 무엇인가? 약간 기울어진 각진 형상은 또 무엇인가? 이것은 계단인가? 이 십자가와 卍은 또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그것이 감각의 기호들이란 점이다. 감각의 기호들. 그것들은 과거의 것들을 현재 안에서 질서 정연하게 자리매김하는 의미를 규정하는 기호들과는 다른 기호다. 곧 이 감각의 기호들은 언제든 의식으로 소환하여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세우는데 쓸 수 있는 의미화된 기억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불현듯 다가와 잊었다고 생각한,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각인된 기억들과 관계한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의자 하나가, 희미하게 떠도는 담배 냄새가, 우연히 마주친 봄철 개나리의 그림자가 내 앞에 그의 죽음을 아프게 가져다 놓는 것처럼 말이다. 한상진의 근작에서 지시하는 바가 모호한 검정색과 흰색의 온갖 형체들을 빌려 자신을 드러내는 기억의 파편들은 감각의, 아니 감각들의 파편들이다. 그것은 따스하고 은은한 햇살, 장독대, 돌 틈새에서 자라나오던 풀잎사귀들 같은 유년기의 감각들이며, 도시의 네온과 쇼 윈도우, 분주함, 초저녁 마천루의 스카이라인과 같은 현재의 감각들이다. 그리고 이 감각들과 연루된 각인된 기억들이 현재의 삶에 개입하여 시간을 조각내고, 그 모든 것들을 낯설게 하며, 나의 정체성을 교란시킨다. 이 낯설음이 한상진을, 그 자신의 표현을 빌면, 일렁이게 한다. 이 일렁임을 일렁임 그대로 놔두는 대신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한상진 근작들의 매력이다.

한상진_문명의 침실_캔버스에 안료, 흑연, 철가루, 유화물감, 혼합재료_각 160×131cm

"일렁임을 느낄 때 무작정 걷는 버릇이 있다. 지쳐서 제풀에 그만둘 때까지. 그러고는 말없이 따스하게 안아주시던 할머님의 품에 안기곤 했다. … 무수히 많은 존재들의 희노애락이 스치고 지나간, 이 도심의 한 모퉁이,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간과 그림자들의 잔상들은 존재의 희노애락과, 그리움과, 애뜻함이 숨 쉬는 시간과 공간의 채집이 되었다." (작업노트에서)

한상진_안식으로서의 형태_캔버스에 종이 유화물감_244.2×244.2cm_2004
한상진_안식으로서의 형태_캔버스에 종이 유화물감_244.2×244.2cm_2004_부분

그러니까 한상진의 근작들에서 과거라는 시간은 감각들만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순간적인 것들의 연속체다. 그 기저에는 모든 시간을 현재의 시간으로 환원하여 전체화하지 않으면서 각각의 시간을 삶 속에서 긍정하려는 의지가 자리한다. 과거와 이질적인 현재를, 현재와 이질적인 과거를, 그리고 현재와 이질적인 미래를 있는 그대로 보듬기.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한상진의 근작에서 시간은 영원한 현재의 시간이다. 그 속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며 과거와 미래는 현재의 시간 속에서 한 데 묶여 일원화되지 않는 파편들로 존재하며 화면 위에 부유한다. 그럼으로써 그것들 모두는 생생하게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이다. 존재란 온전한 거울상이 아니라 깨진 거울 파편들을 주섬주섬 모아놓은 조각 모음에 지나지 않음. 그것이 조각 모음에 지나지 않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아니 그 조각들을 채집하여 공표함으로써 화폭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한상진 근작들이다. 일견 떠들썩한 기억의 파편들, 감각의 파편들과 불협화음을 빚는 것처럼 보였던 그리드는 실상 위계를 허락하지 않으면서 그 모든 단위들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순간적인 시간으로 전이시키는 수단이 아니었던가. ■ 홍지석

한상진_검은 태양_종이에 흑연, 안료, 연필 드로잉_210×29.7cm_2004

본인의 작업은 도시의 건축적인 구조물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내, 외부의 풍경을 응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숨쉬는 시간들 속에서 조우하게 되는 사물과 현상들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는 도시공간의 무심한 풍경(spectacle)을 통해 이면의 실재를 드러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접근하게 된다. 그리하여 다면적인 시공간으로부터 연유한 체감과 울림을 담아 시대의 삶과 감각을 반영하려는 기표들, 가변적 설치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근간의 작업이 되었다. ● 법률, 종교 등과 같은 국가조직과 연계되어있고 사회 생활 속에서 조정자로서 중재역할을 하는 것들을 이데올로기적 권력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상위권력들은 삶과 문화를 구성해내는 방식에 있어서 위계적인 질서로 작용한다. 소외나 분리는 권력의 지배, 통치이념으로부터 벗어난 것들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 오늘날 절대적인 숭고를 의미하려 했던 기표들(종교 혹은 이념적인)은 이제 수행적인 리듬 안에 녹아들어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되었고, 도시의 건축적인 구조들이 보여주는 경계들, 고층빌딩과 아파트 등의 획일화된 공간이 보여주는 수평과 수직의 구조적인 공간점유 방식,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자본력에 의한 시장독점, 소비와 연계되는 인위적인 동선, 소비자의 기호를 상품화시키고 콘텐츠 (contents)화 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구조적인 시스템system들은 다양성과 차이라는 스펙트럼 안에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영화 『Modern Times,1936~』에서 채플린은 컨베이어밸트, 산업사회의 생산공정을 통해 파편화되고 부속물처럼 전락해가는 산업사회의 인간군상과 강박을 그려내고 있다. 반복은 이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며 우리의 삶은 차이 안에서 반복된다. 구조는 우리의 정체성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부분이다 - 건축은 인간을 위한 공간이며 구조이다, 일종의 조직이다. 구조가 인간을 압도할 때 인간은 그 구조에 휘둘리고 매몰된다(안도 다다오, Ando Tadao,1941~).

한상진_나 그리고 너_거울시트지에 혼합재료_각 5×5cm, 가변설치_2004

그리드(grid)는 공간을 구획해가는 서구의 문화체계를 반영하는, 자본주의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체계화된 건축적인, 문화적인 구조의 체계라고 보며 그림 에 전유된 도시의 공간과 사물을 암시하는 기하도형(그림자)과 상징들은 일종의 메타포로서 파편화되고 고립되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하고자한다. ● 본인의 작업은 삶의 울림과 실존을 반영하려는 조형의지로부터 수직과 수평의 사회적인 공간으로 그리고 하나하나의 파편화된 실재들이 모여, 사적인 그리고 공적인 기억의 실마리와 연계되는 심연의 장소가 되고자 하며 한편으로는 각각의 단위들의 배열을 통해 사회적인 구조의 결핍을 보여주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주체들(기표들)의 차이와 공존, 다중공간(MULTIIPLE)속에 동등한 위상과 조화를 꿈꾸는 소망이고자 한다. ● 일렁임을 느낄 때 무작정 걷는 버릇이 있다. 지쳐서 제풀에 그만둘 때까지…무수히 많은 존재들의 삶과 죽음이 스치고 지나간, 이 도심의 한 모퉁이,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간과 그림자들의 잔상은 존재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그리움과 애틋함이 숨 쉬는 시간과 공간의 채집이 되었다. ■ 한상진

Vol.20050126b | 한상진展 / HANSANGJIN / 韓相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