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아래 약졸없다

전지인_함혜경展   2005_0128 ▶︎ 2005_0211

전지인-함혜경_용장아래 약졸없다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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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128_금요일_06:00pm

희망갤러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8-80번지 Tel. 02_337_8837

번역의 반역 ● 모든 번역은 오역이다. 한 커뮤니티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맥락의 간극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원안텍스트를 선택한 후 작업을 시작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함혜경과 전지인은 언어가 아니라 이미지텍스트를 번역한다. 이들의 번역작업에서 오역은 의도적인 것이어서 차라리 '번안'에 가깝다. 이들은 극대화된 오역을 즐긴다. ● 세계 유수의 미술대학이 참여한 사립미술대학 연맹(AIAS)에서 대상을 받음으로서 참신함을 인정받은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에서 함혜경은 직접 수집한 60년대 미국풍경엽서들을 놓고 전형적 헐리웃 버디무비로 텍스트를 짜냈다. 60년대 미국풍경이 서구화된 동양의 22살 처녀에 의해 헐리웃식 버디무비 이야기로 버무려 지면서 이작품은 이데올로기를 군데 군데 건드리는 동시에 소녀적 감수성이 베어있는 탄탄하고 매력적인 '영화'로 재탄생 한다. 미국에 가보지도 않은 동양 처녀의 내러티브는 능청스럽다. 능청스럼은 여유에서 나온다. 여유는 서구화과정에서 무차별 헐리웃 영화의 세례를 받음으로서 구축된 무시할 수 없는 옥시덴탈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희한한 것은 미국에 가보거나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들 에게 이 작업은 묘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 드라마틱한 버디무비에 대한 메타적 표현이라면 '사데빵'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해석이다. 오랜만에 보는 파리의 친구와 그곳의 프랑스 친구들이 함께 여행을 하는 시퀀스를 거두절미 하고 떼어 와서는 (역시 능청스럽게) 전혀 엉뚱한 한국어 캡션을 첨가한 것이다. 기승전결까지 갖추고 있어 마치 잘 짜여진 헐리웃 영화 같은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에 비한다면 '사데빵'은 프랑스 영화처럼 헐렁헐렁하다. 화면속의 엉뚱한 캡션이 기실 사실이라고 한들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그렇고 그래 보이는 헐렁한 여행 비디오 클립은 그러나 프랑스어와 전혀 다른 한글 캡션의 간극사이 어딘가로 해석되지 않는 미스테리한 구멍 속으로 관객을 유인하는데 성공한다.

함혜경_마음은 외로운 사냥꾼_단채널비디오_00:07:00_2004

함혜경이 지적인 영민함으로 무장(실제 작가는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한 채 어느 정도 분명한 원본텍스트를 놓고 국제적 번역작업을 생산한다면 전지인은 상대적으로 불분명한 국내용 텍스트를 몸으로 체득한 감각으로 번역한다. 그런데 그가 번역하는 국내 이미지 텍스트는 우리 자신들조차도 잘 해독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발견한 노숙자(정신질환이 있어 보이는)를 촬영한 이미지를 변조(반복)하여 우리 앞에 던져 놓은 '나가는 곳'이라는 작품은 노숙자의 코믹한 동작과 알 수 없는 슬픔이 한 겹에 붙어 있어 분리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상한 작품이다. 그 이상함은 그러나 우연히 발견한 노숙자를 낮선 이미지의 소재로 단순히 이용한 대상화된 거리감을 넘어선다. 정신질환자는 정상인과 달리 기억을 시간 순서대로 조합하지 못한다고 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수많은 인파 속의 황량한 지하철역에서 출구를 반복적으로 지시하는 노숙자의 반복적인 동작은 시간과 공간이 순서대로 조합되지 못한 서울의 기억 그리고 그것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 이런 전지인의 코드는 '이영자씨는 4단지 안에 살았다'라는 작품에서 다코드화 되어 발전 되었다. 뽕나무골에서 급속도로 변화되어 20년 만에 대규모 중산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 버린 잠실, 그곳의 가장 오래된 아파트에 작가는 관심을 갖고 다큐멘터리적 영상을 제작했다. 이영자라는 이름의 실제 거주자와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는 롯데월드 테마마크와 아파트 단지 풍경 등을 훑는다. 전지인의 작업이 매력적인 이유는 롯데월드의 시물라크라와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 서울의 시간과 공간의 기억 같은데 정박되지 않는 '모호함'에 있다. 아주 천천히 줌아웃 되는 아파트 창문과 사인판 그리고 느린 편집은 오히려 영자씨의 언어적 내러티브에 이미지가 종속되어 힘을 잃게 되는 것을 막는데 성공하고 그녀의 기억과 표준화된 아파트 풍경이 지속적으로 충돌하여 제3의 모호함을 창출해 내도록 고안되어 있는 것이다.

전지인_나가는 곳_단채널비디오_00:02:40_2004
전지인_이영자씨는 잠실 4단지에 살았다_단채널비디오_00:05:00_2002

이 두 젊은 작가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20대 초반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실로 믿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이젤 앞에서 유화로 누드를 열심히 그리던 20대 초반의 나의 경험과 사고를 이들의 그것과 수평으로 비교를 한다면 격세지감을 느낄 따름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진지함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표현 감각까지 갖춘 이 두 명의 작가들의 반역이 어떤 식으로 발전될지 지켜볼 일이다. ■ 홍성민

Vol.20050128b | 용장아래 약졸없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