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Portrait-Floating

이성실 개인展   2005_0301 ▶︎ 2005_0306

이성실_Self Portrait - Floating_컬러 프린트_φ 53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부산시립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부산광역시립관술관, M갤러리(B1)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413번지 Tel. 051_744_2602 art.metro.busan.kr

Journey Toward Wholeness: 만남의 여정 ● 한 순간에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면, 오랫동안 이성실의 작품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변화하고 만들어져가는 그의 작품을 대하는 것은 매우 기대되는 일이다. 이번 작품 속에는 이성실 자신 (self)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는데 그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 중의 하나는 만남이다. 이 세상에 만남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만남, 만남의 관계는 누구에게나 매우 소중할 것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인해 전혀 뜻밖의 길을 가게 될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을 닮아있을 수도 있게 된다. 생명체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또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까지도 만남 또는 다른 사람과의 연결(connection)은 꼭 필요하기만하다. 태어나고 몇 시간 안에 걷기 시작하는 동물들과 달리 사람은 출생 후 다른 이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생명체를 유지할 수 있는데, 이는 사람이 내가아닌 타인과의 관계성안에서 존재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

이성실_Untitled_나무상자에 플라스틱 장난감_21×21×19cm_2004

몇 해 전에 나왔던 영화 케스트 어웨이 (CastAway)는 사람의 이런 단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주인공 척 노랜드 (탐 행크)는 FedEx의 문제해결사로 세계를 누비던 중 타고 있던 항공기가 사고를 당하고 남태평양 무인도에서 혼자 4년을 보내게 된다. 척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만남과 삶의 부분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데, 척에게 무인도의 삶은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홀로 존재하는 그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함께 자신의 삶을 공유할 윌슨이란 이름의 상대방을 찾아낸 것이다. 비록 겉모습은 배구공에 지나지 않았지만 척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존재였다. 마지막 무인도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면서 그가 잠든 사이 윌슨이 물결에 밀려 떠내려간 것을 발견했을 때 절규하며 외치던 "아임 쏘리, 윌슨. 윌슨, 아임 쏘리"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척에게 윌슨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보는 이들도 척의 상실(loss)앞에 함께 울지 않았을까. 이미 "윌슨"이 단순하게 배구공에 찍혀있는 상표가 아니고 척에게는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인생의 동반자였다. 척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윌슨의 역할이 매우 중대했다고 생각된다.

이성실_Untitled-Floating_장지에 먹과 진흙_2005

이성실은 그가 경험했던 윌슨을 풀어놓고 있다. 처음 경험했던 가족, 선대가 이루었던 만남, 결혼으로 지속된 만남과 가장으로서 경험하는 가족,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안에서의 만남과, 미국이라는 나라, 그 안에서의 경험, 또 자연적인 것인 것과 인공적인 것과의 만남을 포함한다. 다양한 만남의 경험을 통해 그가 만들어졌고 영향을 받았고 현재에도 그 영향력은 계속되고 있는 부분이다. 분명한 것은 그는 자신의 주체성 (self-identity)을 자신이 경험했던 만남 안에서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그에게 의미 있게 다가왔던 만남과 경험이 그의 자화상으로 표현되어있다. 그의 작품 안에는 조화와 갈등이 서로 공존하고 있는데, 서로 다른 개체들이 융합되어있는 "melting pot" (모든 것을 한곳에 넣고 녹이는 용광로) 이기보다는 개체 고유의 특색이 들어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salad bowl" (신선한 야채샐러드 사발) 적인 표현에 더 가깝다. 각 개체가 적절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조화를 이루어내기까지는 깨어짐과 융합의 반복이란 쉽지 않은 내면적인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 반복이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조화를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기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성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윌슨은 무엇인지 바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이탈해서 생각하도록 초대한다.

이성실_Untitled-Self Portrait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91×72.5cm_2004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이 편만해 있을 때, 코헛 (Heinz Kohut, 1913-1981)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였다. 프로이드가 개인의 성적 드라이브 (sexual drive)를 중요시 했을 때 코헛은 사람이 건강하게 발달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 있음을 명시하여 자기 심리학 (self psychology)의 자리를 구축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코헛은 사람의 유아기시절에 충족되어야하는 3가지 욕구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첫 번째로는 강하고 이상적인 그래서 우상시하고 동일시되고 싶은 아버지 (idealizing)를 경험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자신의 영원한 팬으로 자신을 인정해주고 지지하는 어머니 (mirroring)를 경험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타인 (twinship)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욕구가 충족되어야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고, 충족되어야할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는 병리적인 증상이 생겨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강하고 이상적인 아버지를 경험하지 못해서 내가 위험에 처해있을 때나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높은 불안감과 상관이 있다는 것이다. 척과 윌슨의 관계에서처럼 유의미한 타인 (significant others)의 존재는 나이에 상관없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유아기 때 이상적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여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현재에도 그 영향을 미치게 되기가 쉽다. 즉 현재 만남 가운데서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충족하려는 노력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성실_Untitled-Hooked_캔버스에 유채, 진흙과 혼합재료_130×162×5cm_2005
이성실_Untitled-Friend_토끼털에 플라스틱, 사진_98×46×15cm_2005

조금만 생각해보면 현실은 우리에게 완벽한 만남을 제공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은 세상이고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모든 욕구가 충족되는 완벽한 만남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욕구가 충족되는 완벽한 만남의 경험을 갖지 못했다고 크게 상심하고 원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낱 배구공에 지나지 않았던 평범한 공을 윌슨이란 이름으로 불러주고 고독한 무인도에서 삶의 동반자로 인정하며 자신의 필요를 충족해나간 영화속의 척이란 사람에서 본 것처럼, 사람에게는 잠재되어있는 가능성과 창의력이 존재한다. 이성실의 작품은 그가 경험했던 자신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 완벽하지 않은 그리고 아직 미해결상태가 남아있는-을 끌어안고 자연스러운 삶의 부분으로 여기며 만남의 여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강하고 부드러운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만남의 경험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만들어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자신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만남의 여정에 초청한다. 그의 초청은 딱딱하고 가혹한 톤이 아닌 이해와 공감의 톤이어서 부드럽다.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이 없다면 진정한 타인과의 만남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의 초청에 기꺼이 응하고 싶다. ■ 이유니

Vol.20050301a | 이성실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