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운

임진성展 / YIMJINSEONG / 任眞聖 / painting   2005_0302 ▶ 2005_0308

임진성_생명의 노래_화선지에 수묵지두(指頭)_135×140㎝_2004

초대일시_2005_0302_수요일_06:00pm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Tel. 02_733_9512

손끝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기운 ● 빠르고 격정적인 움직임을 담고 있는 강렬한 수묵의 화면은 작가 임진성(任眞聖)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가시적인 특징이다. 이는 마치 분출하는 듯한 에너지와 거칠고 투박한 기운이 혼재하는 무겁고 검은 세계이다. 종이와 먹이 어우러지며 이루어내는 발묵과 파묵의 소용돌이는 원초적이라 할 만큼 다듬어지기 이전의 강한 기세를 지니고 있다. 일견 지나치게 분방하고 산만해 보일 수도 있는 작가의 수묵세계는 정교하거나 유려한 전통적인 수묵관과는 분명 일정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둔탁하고 거칠며 빠르고 격정적인 작가의 작업은 오히려 전통적인 수묵관의 대척점에 자리하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이는 그가 구사하고 추구하는 방법과 작업 의지가 분명 남종문인화적인 전통 심미에 일방적으로 함몰되어있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 원필중봉(圓筆中鋒)에 의한 부드럽고 원만하며 유려한 필선의 구사와 조화로운 수묵의 운용은 전통 수묵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절대 덕목일 것이다. 이는 지필묵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조형 방법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 조건이자 절대 가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수묵은 반드시 이러한 덕목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부조화한 내용들과 파격적인 요소들을 적극 차용하여 작가만의 독특한 화면을 구축해 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원필중봉을 전통 수묵의 기본 조건이라 한다면 작가는 오히려 이를 과감하게 포기함으로써 개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모필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하며 감각적인 기능성을 배제하고 손으로 이를 대신함으로써 모필로서는 이룰 수 없는 독특한 화면을 구축해 내는 것이다. 이른바 지두화(指頭畵)가 바로 그것이다. 화면 전반에 나타나는 거칠고 둔탁하며 독특한 조형 양태들은 모두 이러한 지두의 차용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임진성_대지의 변주_화선지에 수묵지두(指頭)_175×396㎝_2005
임진성_만나다-動_화선지에 수묵지두(指頭)_230×244㎝_2004

지두화는 붓 대신 손가락이나 손톱 끝에 먹물을 찍어 그리는 그림을 말한다. 일반 모필과 비교하여 부드럽고 유려한 선의 맛은 덜하고 상대적으로 둔탁한 것이지만 날카롭고 둔중한 필선은 모필의 그것보다 훨씬 강한 표현력을 보여주는 묘미가 잇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당(唐)나라 때 이루어졌으며, 청(淸)에 이르러 크게 유행하였고 고기패(高其佩)가 대표적인 지두화가로 손꼽힌다. 우리나라의 경우 심사정(沈師正)이나 최북(崔北), 허유(許維) 등이 그렸다고 하지만 큰 대세를 이루지는 못하였던 이색화풍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의 지두화는 필선 위주의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기세와 기운을 중시하는 전면적인 것이다. 먹을 뿌리듯 퉁겨내고 흩날려 일정한 동세를 설정하고 이에 따라 형상을 구축하고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작업 방식인 셈이다. 그럼으로 작가의 작업에는 지두화 특유의 필선에 의한 형상의 재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기운과 기세의 흐름이 자리할 따름이다. 작가는 이를 삶의 리듬, 혹은 생명의 움직임이라 말한다.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자연의 움직임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적인 것과 뚜렷하게 드러나는 동적인 움직임이 있다. 이것을 내적, 외적 움직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적인 움직임은 고요한 울림이며, 조용히 뛰고 있는 심장의 맥박과도 같은 것이다. 또한 외적인 움직임은 커다란 떨림, 외부의 환경과 더불어 움직여주는 자연스러운 리듬이라 생각한다."라고 적고 있다.

임진성_만나다-흩어지다_화선지에 수묵지두(指頭)_175×685㎝_2004
임진성_날아가다-흔적_화선지에 수묵지두(指頭)_175×135㎝_2004

화면에 나타나는 과감하고 격정적인 동세는 바로 다름 아닌 자연계의 생명 형상에 대한 조형적 사색의 결과인 셈이다. 숲의 움직임 같은 커다란 흐름이나 갈대의 흔들림 같은 작은 떨림에서도 그 양태는 다를지 모르지만 모두 살아있음의 호흡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지두화라는 작업 특성상 작가는 이러한 떨림, 혹은 울림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접촉하고 다스리며 종이위에 빚어내고 있다 할 것이다. 종이와 먹과 같은 물질의 성질과 그 특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맥박과 호흡을 함께 느끼고 대자연의 생기를 포착하여 이를 일정한 기운이나 기세로 드러냄이 바로 작가의 작업이 담고 있는 내용이라 할 것이다. ● 필자는 작가의 초기 지두화 작업을 본 바 있다. 강하고 억센 선들로 이루어진 화면은 산수화의 견고한 틀을 확고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바위와 나무와 산들이 어우러지는 산수경을 지두로 표현해 냄으로써 새로운 묘취는 발현되었지만, 모필의 표현성을 지두로 변환시켰다는 기능적인 인상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이 당시 작업에 대한 인상이었다. 이제 형상의 번잡스러움과 구체적이고 설명적인 요소들에서 벗어나 보다 본질적인 내용들을 표현의 대상으로 삼는 근작들은 그만큼 여지가 많은 것이다. 뿌리고 흩날리며 이루어지는 수묵의 변화는 분명 이전 작업들에 비하여 풍부한 것이지만 지두화 특유의 운치는 상대적으로 감소되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굳이 전통적인 표현 방식 중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모필의 표현성을 외면하고 지두라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선택한 당위성과 필연성의 확보를 위해서라도 지두화 고유의 독특한 표현 요소들은 강조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더욱이 작가의 지두화가 보여주었던 탄탄한 조형 능력과 독특한 필획의 구사는 충분히 주목받을만한 개성적인 것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한 것이다.

임진성_소리를 보다_화선지에 수묵지두(指頭)_173×134.5㎝_2005
임진성_바람 부는 날 숲을 걷다_화선지에 수묵지두(指頭)_172×945㎝_2004

일찍이 한국화에 있어서 많은 실험적 양식들이 등장하였지만 지두화의 응용과 변용은 그 예를 달리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양식과 내용은 수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온건한 실험의 양태를 띠고 있으나, 그 표현과 조형에 있어서는 일탈의 파격성을 보이는 것이 바로 지두화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필이 전통 시대의 심미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것이라 한다면 지두화는 이의 탈피와 새로운 조형 가능성을 모색코자하는 시도인 셈이다. 이는 현대 한국화의 실험과 모색에 있어서 새로운 조형적 경험을 축적해 줄 수 있는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실험을 위한 실험이나 단순히 새로운 매제를 통한 파괴적인 조형 양태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지두화의 실험에 대한 기대는 더욱 큰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의 분발과 새로운 성취를 기대해본다. ■ 김상철

Vol.20050302a | 임진성展 / YIMJINSEONG / 任眞聖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