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닮아가는 사람

김상구 목판화展   2005_0302 ▶︎ 2005_0315

김상구_목판화 포스터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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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302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나무를 닮아가는 사람-김상구와 그의 목판화 ● Ⅰ우리에게 있어 판화라면 먼저 목판이 떠오른다. 다양한 현대적 판법이 도입되기 이전의 판화는 목판으로 대신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판의 전통은 장구하다. 찍어낸다는 판화고유의 방법에 있어 유물로서 전하는 것은 삼국시대에까지 소급된다. 고려시대에 와선 그 기술의 완벽함과 스케일이 팔만대장경이란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현시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판의 전통은 현대에 이르면서 위축현상을 들어내고 다른 전통적 과목의 예술이 처했던 것처럼 심한 단절을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몇몇 화가들에 의해 전통적 목판의 기술은 가까스로 그 명맥을 지탱시킬 수 있었다. 정규, 최영림, 이항성, 이상욱, 김상유는 목판의 전통을 현대적 조형의 방법으로 이끌어 내는데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 김상구는 이들에 이은 현대 목판화의 제2 세대 쯤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의 판화의 연조는 누구에 비해서도 결코 짧지 않다. 60년대 초반부터 판화에 입문하였고 70년대 중반 경부터는 본격적인 목판이 시도되었으니까 시간으로 따지면 40년을 상회한다. 김상구가 판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고교시절 홍익대주최 미술실기대회에 고무판화가 입상됨으로서이다. 당시 미술교사였던 이상욱의 적극적인 이끌림이 있었다. 그가 70년대 중반 경부터 목판작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이상욱의 감화에 힘입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이러한 계기가 판화가로서의 그의 길을 열어준 구체적 촉매였지만 동시에 자신 속에 내재한 판화가로서의 소여성이 그만큼 풍부하게 잠재되어있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태어나기 위해선 그가 지니고있는 잠재성을 어떻게 개발해내느냐의 계기가 더없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예술가의 잠재성의 발견은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교사에 의하고 있음은 어쩌면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른다. 김상구와 이상욱의 만남은 단순한 학생과 교사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풍부한 잠재성을 지닌 미래의 작가를 발견한 예지자로서의 입장과 그 예지자의 적극적인 이끌음에 훌륭히 대응한 입문자로서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자신도 뛰어난 목판화가였던 이상욱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김상구의 목판화가로서의 길은 전혀 예상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상욱은 유화와 판화를 겸용했다. 이상욱 외에도 대부분의 판화가들이 일반회화와 판화를 겸용하고 있음이 일반적이다. 김상구는 홍대 서양화과를 나왔지만 그가 지금까지 발표해온 것은 판화에 국한되고 있다. 그것도 70년대 중반 이후는 목판만을 시도하고 있다. 이 외곬의 작업은 예술가로서의 단호함과 자기예술에 대한 철저함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본 작업은 유화이고 판화는 부업 쯤으로 생각하는 풍조에서 본다면 확실히 그의 존재는 예외적이라 할만 하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점은 하나의 전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김상구_NO.878 NO.879_목판화_70×100cm_2004

II 김상구의 시대적 편력은 대체로 세 개의 시기로 분절해서 살필 수 있다. 60년대와 70년대 중반까지가 일종의 수업기 또는 습작기로 간주한다면 70년대 중반 본격적인 목판작업에 이르면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가 자기세계를 확고히 틀잡아가는 시대로 볼 수 있다. 9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는 시기는 바야흐로 자기세계의 어느 완숙의 경지를 열어 보이고 있는 느낌이다. 그의 작업의 연조가 긴만큼 시대별 변화양상은 그렇게 현저하지가 않다. 어쩌면, 목판화란 단일 판법을 고집하고 있는 그의 작가적 태도가 자연 내면으로 파고드는 자기세계의 천착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보인다. 따라서 앞서 본 세 개의 시대적 구획도 외연적 변화 보다는 내면으로 향하는 깊이와 완숙의 면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초기의 리노륨판과 70년대 중반 이후의 목판이 기술적인 면에서 현저한 차이를 들어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리노륨판과 목판은 재질에서 오는 기술적 반응이 현저함에도 실상 그의 리노륨판에서 목판으로의 전이과정에서는 이 점이 뚜렷하지 않다. 따라서 전환자체가 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리노륨판화는 매재적 수용성이 까다롭지가 않아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판화입문의 매재로서 널리 통용되고 있음도 여기에 기인한다. 중, 고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고무판화제작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김상구의 리노륨판화의 제작시기는 의외로 긴 편이다. 단순히 입문기 또는 습작기로 보기에는 무리이다. 60년대 후반부터의 작품들에서 만나는 탄탄한 구성력은 리노륨판을 통한 자기세계가 틀잡히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60년대 초반의 일련의 작품들과 대비해보면 이 점이 극명하게 들어난다. 60년대 후반의 작품에서 보이는 모티브의 다양한 설정도 그렇거니와 구체적인 이미지의 설정보다 공간의 구성에로 이어지는 관심의 전이현상이 현저하게 발견되는 점도 그것이다. 공간구성에의 관심의 추이는 대상성을 벗어나 자유로운 조형의 천착을 반영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상을 모티브로한 경우에 있어서도 평면적 설정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구성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60년대 후반에도 가끔 목판작업이 눈에 띄지만 목판이 집중적으로 시도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 경부터라 할 수 있다. 리노륨판에서 목판으로의 이전이 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듯이 모티브상에서나 화면구성상에서의 뚜렷한 변모의 양상은 걷잡히지 않는다. 매재가 지니는 특성에 구애받고 있지않다는 것은 이미 그의 조형적 내구성이 확고한 틀을 형성했음을 시사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 점은 그의 외곬이 조형적 의지를 반영하는 단면이기도 하다. 리노륨판에서부터 구사되던 다색판은 목판에 와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판에 둘 이상의 색을 가하는 경우나, 여러 판에 다색을 동원하는 예가 대부분이다. 이는 목판이란 흑백대비의 단순한 구성에 지지된다는 일반적 관념에 충실하기보다 풍부한 조형성을 구현할려는 그 나름의 관심의 추이로 해석된다. 색이 많아진다는 것은 판의 조성이 보이는 직접성이 그만큼 파묻히게 되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움과 장식성이 동반되게 마련이다. 이 점은 90년대 이후의 작품들에서 만나는 간결함과 단순성에 비교되는 것이기도 하다. ● 판화는 판화이기 전에 회화이다. 판화가 비록 공정상 일품회화와 구분되지만 결과로서의 작품에 있어선 회화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판화이기 때문에 지나친 기술성만을 부각시킬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아무리 기술에 의해 조형성이 담보된다고해도 회화란 궁극의 목표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회화로서의 완성과 이 완성에로 이르는 수단의 기술적 공정이 조화롭게 상호침투되는 데서 참다운 판화의 세계가 찾아지지 않으면 안된다. 70년대와 80년대를 통틀어 유독 다색판이 많다는 것은 그가 회화로서의 판화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투철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상구_NO.876 NO.878_목판화_70×100cm_2004
김상구_NO.884 NO.885_목판화_70×100cm_2004

III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후반에 이르는 2기의 작품내역에서 이상과 같이 풍부한 회화성과 판화의 기술적 공정이 두드러지게 들어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풍부한 색채와 더불어 목판특유의 칼맛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유출된 이미지의 변형과 그것의 발전으로서의 추상적 도형이 이 시기 그의 전체 작품을 관류하고 있다. 형태의 반복패턴과 기하학적 구성인자도 현저해지고 있다. 더욱 요약되고 억제된 방법의 신장이 화면을 지배해가고 있음을 보인다. 이같은 방법에 곁드려 모티브의 제한도 뚜렷하게 들어난다. 새, 물고기, 나무, 말, 구름, 사람, 배, 들꽃 등이 빈번히 등장한다. 곁드려 실내의 풍경이 간헐적으로 구현된다. 의자, 바이어린, 화병 같은 것이 실내풍경의 주요 모티브이다. 범속한 주변의 자연이 무작위로 선택된다. 친숙한 주변과 일상의 선택은 소박한 소재의식을 반영한다. 어쩌면, 이 소박한 소재의식이야말로 작가의 조형의식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는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기둥이 서고, 가지가 엇갈려 나듯이 자로 잰듯한 것보다는 약간 휘어진 대들보의 선과 같은 것, 화려한 것보다는 투박한 것, 치장으로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가운데 스며드는 토담과 같은 것, 입체적인 표현보다는 평면적인 것, 흑백의 대비, 큰 것보다는 조그마한 것, 가득차 있는 것보다는 여백이 있는 것등이다."란 작가의 말에서도 소재의식에서 조형의식으로 이어지는 내역을 읽을 수 있다. ● 90년대 이후로 오면서 그의 화면은 더욱 단순하고도 명쾌한 이미지의 구현으로 눈길을 끈다. 흑백대비의 간결함과 탄력있는 구성이 만드는 압축된 형상은 무르익어가는 조형의 내면을 엿보게 한다. 목판의 재질이 주는 담백함과 풋풋한 향기가 이미지를 가로질러 다가온다. ● 90년대 후반에서 최근에 이르는 근작은 더욱 대비적인 요소와 균형감각이 지배된다. 2000년에 발간된 목판화집 「풍경, 나무, 사람」은 이같은 특징들을 극명히 들어내고 있다. 화면은 끝없이 침잠되지만 약동하는 생명의 리듬이 안으로부터 부단히 솟아오르고 있다. 연속적인 선의 반복과 점획의 균질화가 화면의 요체화와 전면성을 대변해준다. 이같은 특징을 작가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한 개의 평면에서의 여러가지 연속적인 운동,......정지된 상태에서 다시 불쑥 일어나기도 하고, 어느 한 방향으로 자꾸 쏠려나가듯 움직이는 선들, 떠내려가듯 기울어지며 수없이 그려지는 사선의 움직임......생동감있게 표현하려는 시도는 나의 작업중의 일부이다." 김인환도 일찍이 이 점을 기술한바 있다. "정지적이며 정일한 공간에서의 연속적인 운동, 그것은 적막을 깨는 소음과도 같이 파상적인 물결을 몰고 온다. 선의 물결이다. 어느 일정한 한 방향으로 쏠리는 듯 유동하는 선의 물결이다. 수평, 수직적이거나 나선적인 리듬을타고 화면을 가로질러 유동하는 선의 물결, 고요함과 생명감이 동시적으로 화면의 표면장력을 이룬다." ● 유동하는 선은 때로 수묵화의 일필휘지를 연상케하는 점이 있다. 날카로우면서도 결정적인 힘의 내재성이 특히 그런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긴 칼자국이 그대로 수평선이 되고 지그자그로 굴절되는 칼자국은 그대로 수목이 된다. 이미지를 표상하기 위해 칼이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칼의 운용이 동시적으로 태어나는 형국이다. 때로 흐르다가 정지되고 꺽이다가 다시 줄기차게 뻗어오르는 칼자국을 따라가다보면 어느듯 바람에 휩쓸려 모로 기우러지는 수목의 가지들과 그 사이로 영롱하게 빛나는 저녁바다의 고즈늑함을 만나게 된다. 바람이 있고 빛이 머문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의 자락과 안으로 파고드는 햇살의 살가움이 교차된다. 적막하면서도 아늑한 시간의 흔적들이 쌓인다. 이제 그의 화면은 그림이자 동시에 시의 경지에 다가간다. 김복영이 「시적판어법 詩的版語法」이라고 한 것이나 2000년 판화집을 「김상구목판화 木版話」라고 한 것은 단순한 그림의 세계에 머물지않는 그림이자 동시에 시이고 이야기인 것을 나타낸다.

김상구_NO.880 NO.880_목판화_70×100cm_2004
김상구_NO.882 NO.883_목판화_70×100cm_2004

IV 2000년 목판화집 「풍경, 나무, 사람」은 그가 최근 구현하는 대상을 압축한 것이라 해도 좋다. 모티브는 제한되고 표현은 극도로 절제된다. 단순하면서도 결곡한 조형의 장이 열린다. 칼은 예리하면서도 때로 투박한 정감을 감추지 않는다. 칼은 이미지를 앞질러가고 부단하게 각인되는 풍경의 뒷면에 가까스로 그 흔적을 남긴다. 어느듯 각인된 이미지는 나무자체의 속성으로 환원된다. 나무판을 깍다가 그림이 나무판을 닮아간다는 것은 나무판이 본래의 나무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부동의 자세로 서있는 나무처럼 작가의 의지는 외곬을 닮음으로서 종내는 나무를 닮아가고 있다. 그의 외형도 나무를 닮아가고 있다. 나무를 깍는 사람이 동시에 나무를 닮아간다는 것은 작가와 나무가 분화되지 않는 일체가 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유독 나무가 많이 등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풍경 속에서도 등장하고 인간과 마주선 대립된 구도로서도 등장하고 독립된 존재로서도 등장한다. 나무와 인간이 마주하고 있다. 나무 아래 인간이 서있다. 때로 나무가 인간보다 훨씬 큰 존재로 대비되기도 하고 인간과 대등한 크기로 등장하기도 한다. 사람은 수직의 의지로 나무를 닮아가고, 창공을 향해 뻗어올린 두팔은 나무가지의 자재로운 뻗음과 닮아 균형을 유지한다. 나무판과 판 위에 새겨진 나무와 사람이 분화되지 않는 상태로 진행된다. 판 위에 나무와 사람을 새기는 작가도 이들을 닮아가고 있다. 김상구의 목판화가 주는 매력은 목판이 종내 작가자신이 되어간다는데 있다. 나무이자 표현의 대상이고 동시에 나무와 표현의 대상을 통제하고 새기는 작가자신이 나무이고 표현대상으로 되돌아간다는데 있다. ■ 오광수

Vol.20050304a | 김상구 목판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