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그림

이기일展 / LEEKIIL / 李起日 / mixed media   2005_0309 ▶ 2005_0322

이기일_성냥그림_캔버스에 발화제_232×160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40527b | 이기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05_0309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1(관훈동 195번지) 3층 Tel. +82.(0)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불은 인간사회를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이다. ● 굳이 프로메테우스의 도화신화盜火神話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정해진 모양이 없는 불은 아직도 인간에게 신비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아주 먼 옛날서부터 오늘날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불이 발하는 빛과 열은 각종 하이테크놀로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불로부터 동물과 다른 인간생활이 가능하게 되었고, 불로 인해 인간의 문명 또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 하지만 공기 속에서 산화반응을 하는 불은 생산과 파괴의 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기에 하염없이 좋은 쪽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난감함이 존재한다. 불로 인한 크고 작은 재앙은 자연적인 것에서부터 인위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허황된 집단적 욕망들이 결과한 전쟁 또한 항상 불과 함께 하여 왔다. 그렇다면 불은 인간사회를 결합시키기도 하고 갈라놓기도 하는 무서운 힘을 지닌 단순한 화학적 물질 이상의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한 아궁이에서 따스한 불을 쬐고 있는 가족이라는 단위 또한 불로 인해 엮여진 인간집단인 까닭이다. ● 어찌되었건 불과 인간의 관계는 신과 인간의 관계만큼이나 복잡하고 난해한 것 같다.

이기일_성냥그림_캔버스에 발화제_232×160cm_2005
이기일_성냥그림_캔버스에 발화제_232×160cm_2005

이기일이 이번 전시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불이다. ● 이동이 간편하게 응고된 물질이 아닌 빛과 열을 발하고 있는 현재 진행중인 산화상태의 불을 전시공간으로 들여오기에는 여러가지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성냥그림』이다. 그냥 불이라고 할 때 떠올려지는 추상적인 불의 이미지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물질인 성냥으로 불을 대신하고 있다. ● 예로부터 불은 두가지 방법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중 하나가 볼록렌즈에 의한 방법이고 다른 하나가 마찰 또는 충격에 의한 것이다. 볼록렌즈에 의한 방법은 태양계라는 환경을 이용한 것이고 마찰 또는 충격에 의한 방법은 인간의 수고로움에 의한 결과이다. 다시말해 볼록렌즈에 의한 불은 태양의 불을 옮겨온 것이고 마찰 또는 충격에 의한 불은 인간이 만들어낸 불인 것이다. 그래서 볼록렌즈에 의해 만들어진 불보다 마찰 또는 충격에 의한 불이 좀더 인간적인 불로 이해될 수 있다. 어느 때건 인간이 필요로 할 때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서 쓰여질 수 있는 관리되는 불인 까닭이다. 이기일은 『성냥그림』展에서 마찰에 의한 불의 현대적 변형인 성냥이라는 발화용구를 선택하였다.

이기일_성냥그림_캔버스에 발화제_72.7×60.6cm×3_2005
이기일_성냥그림_캔버스에 발화제_각 232×160cm_2005

이기일은 판촉물로 쓰여지는 성냥갑으로부터 『성냥그림』展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 커다랗게는 인간문명사 또는 제국주의 침략사에서부터 작게는 조잡한 홍보용 판촉물 또는 이쑤시개 대용에 이르기까지 불 또는 성냥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들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이기일이 관심을 보인 것은 판촉용 성냥갑의 좁은면에 칠해진 붉은인의 물성이었다. 다소 까끌까끌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주는 암갈색의 신비로운 작은 마찰면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 조각을 전공한 이기일은 당연히 성냥의 기능만큼이나 마찰면의 물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암갈색 마찰면으로부터 불과 예술의 마찰이라는 만만치 않은 프로젝트를 구상하였다. 그래서 조각가 이기일의 『성냥그림』展에 출품된 작품 대부분이 캔버스에 그려졌다. 암갈색 마찰면의 신선한 충격을 전시공간에 효과적으로 옮겨놓기 위해서는 캔버스라는 고전적이면서도 중성적인 바탕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다시 말해 이기일에게 있어 『성냥그림』展의 캔버스 작품들은 무엇이 그려진 그림이라기보다는 암갈색 마찰면의 물성을 드러내기 위해 고안된 독특한 장치였던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냥그림』에는 왕관, 별, 손가락 신호, 등 그 의미가 또렷하게 읽혀지는 이미지들이 그려져 있다. 이기일의 캔버스에 그려진 이미지들은 낯익은 유니코드(Unicode) 문양이다. 유니코드란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어로 작성된 텍스트의 상호호환을 돕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다. 이기일은 이 유니코드 중에서 언어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널리 알려진 문양들을 골라 캔버스에 집어넣었다. 물론 그것을 그리는데 사용한 재료는 성냥갑 마찰면에 칠해지는 붉은인이다.

이기일_성냥그림_1,2,3,5,8,10호의 캔버스에 발화제_2005
이기일_성냥그림_캔버스에 발화제_27.3×22cm_2005
이기일_성냥_4.5×2×10cm_2005

암갈색 마찰면에 펼쳐진 생산과 파괴 ● 하얀 캔버스에 컴퓨터 워드프로세서에서 추출한 유니코드 문양이 암갈색으로 그려졌다. 지극히 대중적인 유니코드 이미지들이라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감이 느껴질 정도로 권위적인 『성냥그림』이 만들어졌다. 너무나 완곡히 2차원 평면을 지키고 있는 암갈색의 마찰면은 불이 지닌 양면성만큼이나 상충되는 의미들을 동시에 노출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캔버스에 깔끔하게 그려진 유니코드 문양은 도료인 붉은인의 물성에 의해 이율배반적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 이기일은 일단 비정형의 불을 상정하고 전시를 꾸려 나갔다. 그러나 실제로 전시되고 있는 작품은 지극히 물성이 강한 완곡한 물질인 캔버스와 붉은인이다. 그리고『성냥그림』은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모노크롬 회화처럼 읽혀질 수도 있어 모더니즘 회화의 한 형식을 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유니코드 문양이 더해지면서 『성냥그림』展은 팝아트적 성향까지 포괄한다. ● 어찌되었건 여러 생각들 속에서 『성냥그림』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생각들의 마찰면으로서 암갈색 『성냥그림』이 존재한다. 그 마찰면에서 유동적인 것과 고착된 것, 새로운 것과 낡은 것, 조각과 회화, 물성과 내레이션, 예술과 일상 등이 갈등하고 있다. ■ 최금수

Vol.20050309a | 이기일展 / LEEKIIL / 李起日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