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풍경

노충현 회화展   2005_0309 ▶︎ 2005_0322

노충현_남은 자리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05

초대일시_2005_0309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5 Tel. 02_733_6469

부재(不在)의 매혹, 살-풍경 ● 작가에게 있어 열등감은 예컨대, 끝 모를 도도한 자부심의 대척점(對蹠點)에서 작가를 지탱해주는 또 다른 힘이다. 미술사에는 신체적 열등감과 작품에 대한 불만으로 고뇌하던 수많은 작가들이 있었고, 그 중에 몇몇은 소위 천재라 일컬어진다. 작가란 존재는 극단적인 열등감과 도도한 자부심, 이 모순된 두 가지 요소가 똘똘 뭉쳐진 콤플렉스 덩어리들이다. 열등감과 자부심의 경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는 살아서 성공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미덕 중 하나이다.

노충현_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53×53cm_2005
노충현_정든 터널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05
노충현_무리들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05

학창 시절부터, 노충현은 남과 다른 체질과 작업 특성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풍경과 인물을 주로 그리던 그에게 사실적 묘사력의 부족과 탁하고, 단순한 색채의 표현은 항상 남들과 비교되는 열등감이었으며, 고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 그동안 꾸준히 지속해온 자신만의 성향 즉, 모호하고, 단조로운 색채와 치밀하지 못한 소박한 표현력 등이 자신만의 특질과 자부심으로 자리 잡은 듯한 인상이다. ● 본인이 고백했듯이 '체질적으로 활기 없던 작품의 특성'은 한강 시민 공원 주변을 건조하게 그려낸, 무표정 한 듯하지만 무엇인가 불길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풍경 속에 녹아 들어있다. 인간의 흔적이 사라지고 사물이 주인공이 된 풍경들은 일단 낯설고 생소한 느낌을 갖게 한다. 작가들은 본래 익숙한 시선을 거부하고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물이나 공간을 포착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며, 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작가의 언급처럼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이미지 과잉으로부터 벗어난 공간"으로 선택된 겨울의 한강 시민공원은 일시적으로 텅 비어 버린 활기 없고 가라앉은 공간이다.

노충현_사라진 창문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05
노충현_마련된 장소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05
노충현_무제_캔버스에 유채_50×40.9cm_2005

전시 제목인 살-풍경의 살(殺)이'죽이거나, 죽다'의 의미이듯이 겨울철 한강변의 풍경은 생명이 부재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생생한 푸른색이 과잉이던 여름의 생명은 냉기의 비수에 찔린 채, 창백한 회색 빛 죽음을 맞는다. 한여름의 눈부신 색채가 소멸된 공간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콘크리트 구조물과 통로들, 이동식 컨테이너의 유령 같은 그림자로 덮여있다. 말라버린 잔디의 주검과 이를 쪼아대는 도시 비둘기는 칙칙한 회색빛 색채 속에 섞여버리고, 온갖 욕망의 남녀들로 북적이던 수영장은 앙상한 손잡이를 장식으로 달고 있는 쓸모없는 커다란 푸른색 구덩이가 되어버렸다. 눈부신 태양에 저항하던 오색 파라솔들은 한껏 몸을 접은 채 자신의 폭(幅)을 지워버렸고,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와 감시탑이 앙상한 몰골로 삐죽이 서있다. ● 이 부재의 공간 속 그림자 속에서 언뜻 드러나는 낯선 인물들의 모습은 '외부의 자아를 감시하는 그림 속의 또 다른 자아'로 보인다. 이 인물은 낮선 공간의 정적을 깨뜨리는 타인의 시선을 감시하며, 이 곳이 누군가에 의해 점유 되고 조정되어진 공간이며, 어떤 사건이 벌어지게 될 긴장의 공간임을 암시한다. 결국 작가의 시선은 내부와 외부에서 서로 교차되며, 주관적으로 점유한 이 공간을 철저히 지배하고 있다. ● 노충현의 모호한 풍경은 '부재의 매혹'을, '활기 없음의 포근함'을, '뜻 모를 불안의 묘한 긴장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눈에 포착된 메마른 살-풍경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간단치 않은 모호함과 복선을 품고 있는 심리적 도상이 된다. ■ 이추영

Vol.20050309b | 노충현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