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찌꺼기

이문주 개인展   2005_0310 ▶︎ 2005_0320

이문주_Mission Main Redevelopment 1_판넬에 아크릴채색, 파스텔_80×156cm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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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310_목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www.kumhomuseum.com

지난 약 3년 반의 미국 체류기간 동안 나는 보스턴, 디트로이트, 브룩클린 등 이 도시 저 도시로 옮겨 다녔다. 도시의 경계를 넘을 때마다 나의 경험과 지식을 벗어나는 또 다른 풍경을 만나기 마련이고, 새로운 도시의 지리와 구조를 익히는 것은 낯선 곳에 적응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문제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어느 곳에서든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하나의 도시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놀랄 만큼 뚜렷하고 경직된 경계선들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경계선을 낳는 사회 경제적 요인들은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건축적 풍경들로 도시공간을 채우고 가른다. 소외된 지역에서는 다 무너져가는 건물들과 벽을 뒤덮는 낙서들, 하루종일 그 주변 전체에 컴컴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고가철로와 고가고속도로, 폐기된 차 등의 쓰레기 더미들과 잡초만 무성한 공터, 한 대의 차도 주차 되어있지 않으면서 한 블록을 다 차지하고 있는 주차장 등의 풍경을 언제나 만날 수 있었다. 점차 나는 도시에서 관찰되는 건축공간의 세부들이 그 지역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함축하고 있는지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문주_Mission Main Redevelopment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70×269cmcm_2002
이문주_매사추세츠州 락스베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7×183cm_2002
이문주_미시건州 디트로이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진콜라쥬_114×152cm_2004

2000년 가을, 유학을 위해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으로 간 나는 미션메인 하우징 프로젝트로 불리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단지 옆에 집을 얻게 되었다. 하우징 프로젝트 Public Housing Projects는 빈민구역을 없애고 저소득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미국 전역에 걸쳐 건설되었다. 그러나 본래의 이상주의적 의도와 달리 주정부는 소외계층의 주거환경을 지속적으로 돌보는데 역부족이었고, 하우징 프로젝트는 얼마 안가 심각한 폐해를 드러내며 마약 및 총기사고, 강도와 강간 등 각종 끔찍한 범죄가 들끓는 온상으로 취급되게 되었다. 결국 노숙자, 마약 중독자, 범죄자 등을 한곳에 몰아넣고 그저 방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용소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자 많은 하우징 프로젝트들이 1970대 이후 속속 철거되기에 이르렀다. 위험 구역으로 낙인 찍히기 마련인 하우징 프로젝트들 중에서도 악명이 높았던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미션메인 주택단지 또한 내가 그 부근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철거되어 재개발에 들어갔고, 나는 약 1년 동안 그 재개발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밀어버린 옛 주택단지 터 위에 합판으로 대량 생산된 새로운 구조물들이 분홍, 연노랑, 하늘색 등 파스텔 색조의 페인트로 칠해지면서 획일적인 "그림같은 집"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나는 사진과 그림으로 기록했다. 오랫동안 소외 지역이었던 그 하우징 프로젝트 부근은 이 재개발로 인해 시세가 뛰기 시작했고 그 곳에서 수십 년간 살아온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내몰았다. 내가 살았던 락스베리 Roxbury는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으로 불리는 과정을 겪고 있는 동네의 전형적인 한 예였다. 비교적 싼 곳을 찾아서 확장해 온 대학들이나 병원 등의 기관들이 점차 비대해져 그 동네의 땅을 대거 매입하고 개발을 추진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백인 전문직 종사자들과 학생들이 따라오게 되고, 본래 살던 저소득 거주민들은 점차 몰려나는 것이다.

이문주_지붕 위의 도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299cm_2004
이문주_디트로이트 해밀튼街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3×130cm_2004
이문주_디트로이트 해밀튼街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진콜라쥬_182.5×339.5cm, 2005

1년 동안 내가 경험한 보스턴은 아름다운 스카이라인과 항구, 오래된 건축물과 명문 대학들로 관광객들을 끄는 도시가 아니라 인종과 빈부차로 극심하게 분리된 도시였다. 도시의 잊혀진 다른 편은 폐허로 버려진 건물들, 쓰레기 하치장, 그리고 유색 인종들의 구역으로 남아있었다. 이러한 도시 이면의 극단적 상황을 나는 그 뒤 "죽은 도시"라고 불리는 디트로이트에서 다시 엿볼 수 있었다. 디트로이트는 순전히 자동차 산업의 필요에 맞추어 건설되고 개발되었으며, 개개 건축물에서부터 도시의 레이아웃에 이르기까지 포드주의 생산양식을 철저하게 구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년대 이전까지 자동차 산업의 호황에 따라 급격히 팽창했던 디트로이트는 그러나 1960년대 이후부터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몰락한다. 거의 백인으로 이루어진 중산층 이상의 계급은 흑인과의 분쟁 등 거대도시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보다는 아예 도시를 버리는 쪽을 택했다. 도시 밖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땅은 얼마든지 있었고, 거기에다 새롭게 도래한 포스트 포드주의 생산방식은 디트로이트를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은 도시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곽으로 떠나고 이제 도시는 버려져 온통 불탄 집들과 쓰레기로 뒤덮인 도로들로 채워져 간다. 근교 suburbia로 빠져나간 인구를 다시 도시 안으로 끌어들여 디트로이트를 회생시켜 보려는 노력으로 최근 거대한 새 야구장이며 카지노 등이 세워졌으며 새로운 콘도미니엄의 개발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나, 이들은 표피적인 홍보 효과에 그칠 뿐 이 도시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은 될 수 없다. ● 한 도시의 현재는 다른 도시의 미래를 비추어 보여준다. 내가 서로 다른 곳에서 목격한 풍경들은 도시가 파괴되고 재건되고 팽창하고 다시 타락하는 지속적인 과정 속의 한 단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리학자 이안 시몬즈 Ian G. Simmons의 말처럼, 도시는 그 주변환경으로부터 모래 자갈 돌 등의 물질을 빨아들여 건물로 바꾸어내고, 거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한다. 물질과 에너지를 순환시키고 땅의 자원들을 소진하며, 생산물과 쓰레기를 끊임없이 뱉어낸다. 그런데 사회, 경제, 정치적 요인에 따라 끊임없이 도시공간과 지형이 재조직되는 이러한 과정은 생산적 파괴 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내재적 원리 아래 걷잡을 수 없이 빨라져 가고 있다.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던 도시의 한 부분이 갑자기 개발계획 아래 그 경제적 가치가 치솟고, 건축물은 점점 단지 이윤을 창출해내는 기계로 전락한다. 장소가 지닌 고유한 시간의 층은 무시된 채, 공간은 더 많은 부가가치를 위하여 파괴와 재건축의 반복 속에 놓여지고 주거문화는 폐기처분과 대량생산의 대상이 된다.

이문주_서울 봉천동_판넬에 아크릴채색_2003
이문주_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진콜라쥬_105.5×183cm_2005

도시 곳곳에서 관찰된 재건축 예정지, 부서진 공가와 살림살이들, 빈 건축물과 공터, 건설 폐기물과 도시의 쓰레기 등은 내 그림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낡은 벽돌 건물은 비상계단이 떨어져 나간 자리, 사람들의 낙서, 그리고 그 낙서를 지우는 붉은 페인트 등 사람들이 가한 행위와 세월의 흔적들을 그대로 벽에 새기면서 농축된 풍화의 시간을 마치 추상회화와도 같은 표면 속에서 보여준다. 도로 건설과정에서 뿌리 뽑혀져 방치된 길 표지판들, 땅 속에서 파내어진 녹슨 수도관 및 철근 등의 고철더미는 마치 우리시대의 고고학적 발굴물처럼 보인다. 공사장에 쌓인 건축 폐기물, 모래, 그리고 자갈 더미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산의 모습을 닮았다.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나는 어떤 권위적 힘에 의하여 도시공간이 끊임없이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도시 건설과정이 분비하는 찌꺼기와도 같은 풍경을 포착한다. 더 나아가 사람의 지배를 벗어나서 그 자체의 힘을 가지고 스스로를 파괴해 가는 뒤틀린 도시의 모습, 엔트로피의 상태를 향해 가는 도시공간을 묘사한다. 실제 장소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콜라쥬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이들 도시 풍경화는 효율성, 새로운 심미성, 최대한의 부가가치 등등을 내세우며 파괴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현대 도시개발이 필연적으로 남기는 찌꺼기들을 전면에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 이문주

Vol.20050320b | 이문주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