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하여

김진 회화展   2005_0322 ▶︎ 2005_0411

김진_기억에 대하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50cm_2001

초대일시_2005_0322_화요일_05:00pm

갤러리 숲 서울 마포구 창전동 6-4번지 전원미술학원 B1 Tel. 02_338_1240

김진 개인전에 부쳐. ● 기념 조각이 기억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짧게 정리된 김진의 작가 노트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제 하나의 정치사적 상식이다. 설령 기념 조각이 구체적인 정치 선동을 위한 어떤 명령체계 위에 위치해 있지도, 몸소 반정부 세력을 조직할 능력을 갖추지도 못하건만 그럼에도 '멈춰 선' 조각상들은 그것을 구성하는 대리석, 혹은 청동 그 이상의 무게를 언제나 함의하기에 말없이 명령하는 하나의 물신(物神)이었다. 혁명과 정권교체를 코앞에 두고 '구체적인' 정적(政敵) 대신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조각상을 공격하는 행위는 역사상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희극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선전포고이거나 승전고를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일개 무기체(동상)에게서 느끼는 일반인의 영문 모를 경외감은 의외로 유기체 적이다. 작가가 내게 보내온 작품 이미지 파일을 검토하면서, 내가 가장 인상을 받은 것도 앙각(仰角)으로 올려다 본 레닌의 전신 동상 페인팅인 점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될 것이다. 짙은 회청색 몸체, 앙각에 광각 효과까지 얹힌 사선구도, 거기에 혁명가의 대명사 레닌이라니! 이미 80년 전 고인이 된 어느 혁명가와 대략 15년 전 붕괴해 버린 이념 공동체로서의 소련. 우리의 기억 속에서조차 큰 의미를 형성하지 못하는 지나간 저명인사와 익명의 인물에 대한 확대된 초상들이 부분적으로 편집되어 벽 하나씩을 차고 들어서는 것이 전시의 큰 줄거리다. 전시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줄기는 오브제들을 대략 4호 크기에 담은 소품들을 벽면 가득 채우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기본적으로 관객참여와 물물교환을 전제하고 있는데, 요지는 이렇다. 작품이 재현하고 있는 것이 사과, 자동차, 화분이면 각각 그것에 해당하는 실물과 교환해주는 컨셉트란다. 물론 실제 자동차와 4호 캔버스 속 자동차 그림이 교환될 가망은 거의 희박하지만 이 불가능한 시도를 통해 실물경제의 그늘 아래 살아가야하는 우리들의 처지를 냉소해보자는 것이 취지라면 취지이다. 사실 앞에 기념상의 '부분' 재현이 이미 2002년에 제작된 작품들이고, 이들이 벽면 하나에 정해진 순서 없이 듬성듬성 내걸렸던 전력이 있던 점을 감안하면, 이 두 이야기는 몇 가지 접점을 형성한다. 대상들 간의 일반적인 위계를 흔들었다는 점이 상징적인 접점이다.

김진_기억에 대하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50cm_2001
김진_기억에 대하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50cm_2001
김진_기억에 대하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50cm_2001

「기억에 대하여」시리즈의 2002년 디스플레이 장면은 상이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을 같은 벽면에 배열의 규칙 없이 걸어놓음으로써,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에 혼선을 가져왔고 같은 이치로 이번 전시에서도 역사적으로 다른 평가를 받아온 인물들을 같은 사이즈 캔버스에 그려 사면을 둘러침과 동시에 인물들을 기념비적 특성을 살려 묘사함으로써, 갤러리의 한 가운데 선 관객들로 하여금 재현된 4명의 인물들을 '동등한' 선상에서 이해하게끔 유도한다. 하물며 재현된 인물이 모두 얼굴의 일부분 혹은 앙각으로 잡힌 전신상이어서 그들의 면모를 총체적으로 감상하는 것을 훼방하게 된다. 동일한 이치로 오브제를 담은 4호짜리 연작 역시 설령 물물교환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동일한 사이즈의 캔버스에 위상이 전혀 다른 오브제들은 크기의 평준화를 거쳐 미학적으로도 엇비슷한 가치의 굴레에 갇힌다. 글 모두에서 설명한 기념 조각과 한가지로, 장르로서의 회화 역시 캔버스와 안료로 이뤄진 물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믿겨져왔다. 물론 자칭 순수주의 모더니스트에 의해 완벽한 물성에의 합일을 통해 회화의 독립이 선포된 적도 있지만 결국에 가서 미술계라는 전체 시장에서 그들의 주장은 또 하나의 거역할 수 없는 물신(物神)으로 돌변해 그들이 처음에 주장했던 순수를 결국에는 외면한 채 또 하나의 위상을 지닌 기념비가 되었다. 김진의 기념비 재현물과 물물교환용 소품들은 우리의 기억과 의식 속에 딱딱하게 각인된 사물들의 위상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다. ■ 반이정

Vol.20050322c | 김진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