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강

박홍순 사진展   2005_0323 ▶ 2005_0403

박홍순_서울시 광장동_흑백 인화_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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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323_수요일_06:00pm

노암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02_720_2235

풍경과 상처 ● 사진은 현실의 거울이자, 진실의 증거로서 존재한다. 우리는 사진을 보고 그 자체의 이미지에 매달리기 보다는 그것이 품고 있던 시간과 공간의 찰나적 실존을 떠올리며 그 실존의 조건 속으로 뛰어들려 한다. 이미지를 매개로 하여 나와 실존이 하나가 되는 접촉과 이해의 순간, 비로소 세계는 열리고 사진은 하나의 창이 된다. ● 소위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사진의 한 갈래는 이런 세계와의 만남을 가장 중요한 사진의 조건으로 삼는, 사진의 가장 기초적이고 동기유발적인 시도들이다. 때문에 다큐멘터리의 생명은 사진 속의 이미지들이 진실에 이르는 통로를 얼마나 선명하고 강하게 유지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유혹과 강압 아래서도 그저 카메라의 눈을 갖고 진실을 찾기 위해 끝까지 싸워보겠다는 의지의 불굴, 그것이 다큐의 힘이기도 한 것이다. ● 이때 사진찍기에서 생겨나는 유혹이란 세상으로 향한, 혹은 자기 내부로 향한, 인간이면 지닐 수 있는 욕망의 꿈틀거림을 말한다. 그 욕망의 강도에 비례해서, 그리고 그 욕망을 억누르는 자제력에 비례해서 이미지의 힘은 강하고 견고해진다. 어찌 보면 한 대의 카메라와 한 롤의 네가필름이라는 가장 초라한 구식의 방법론으로 사진의 진실성에 다가서겠다는, 그래서 일그러지고 왜곡된 렌즈 저 너머에 있는 진실을 발굴하겠다는 행위는 하나의 무모한 욕망이자 동시에 사진의 구원이기도 한 것이다.

박홍순_강원도 양구군 평화의 댐_흑백 인화_2004
박홍순_경기도 가평군 강촌_흑백인화_2002

박홍순의 사진은 이런 누추한 상황을 그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의 사진 속 이미지들이 노출시키는 욕망의 표상들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여타의 사진들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사진의 욕망 관계들은 주로 인물 초상이나 정물 사진의 시선과 응시의 문제 속에서 확연하다. 그것은 은밀하면서도 내밀하며, 뜨거우면서도 말초적이다. 그것은 시선의 촛점의 조여짐과 풀어짐이 교차하는 뜨거운 호흡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박홍순의 사진은 서사적이면서도 묵시적이다. 말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은 현학적 수사를 거부하는 냉정하고 싸늘한 정지 상태의 이미지이다. ● 아무런 덧붙임도 없는 듯한, 어떤 조미료도 치지 않은 듯한 '스스로 그러함(自然)??의 실존을 포착하고 있다. 장엄한 풍경의 파노라마와 여러 곡선과 면들이 자아내는 수평적인 흑백 구도는 형상들의 유미적인 쾌락이 난무하기 이전의 ??사실??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역사적 객관주의의 시선을 드러낸다. ● 그렇다면 박홍순의 주관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엄밀하게 말해 우리가 눈치 챌 수 있는 것은 그의 시선이 세계(대상)에 대해 약간은 소심하거나 내성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상 속을 헤집고 들어가 그 존재의 온기(溫氣)와 육성(肉聲)을 직설적이고 웅변적으로 전해준다기 보다는 멀리서 훔쳐보듯, 혹은 관조하듯 대상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이 아쉬움과 건조함, 시간의 박제를 체감케 해주는 비현실적인 공간의 이야기들-실제로 그의 사진의 대부분엔 사람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인공의 업적만이 존재한다.-을 읽으면서 그 텅 빈 네거티브 공간 속에 우리 자신의 욕망적 시선을 채워넣게 됨을 느끼게 된다. 카메라 트라이포드와 노출계 만을 보조 수단으로 쓰면서 존 시스템의 마지막 수행자처럼 원리원칙만 고수하는 그의 화면 속으로 우리의 체험들이 채워지는 것이다.

박홍순_강원도 정선군 동강_흑백 인화_1999
박홍순 _강원도 화천군 파로호_흑백 인화_2003

동양화에 있어서 산수화의 개념은 시각적 인상의 기록(현상의 재현)이라기 보다는 작가 자신의 현장 체험의 기록(현장의 경험)이라는 점이 중요하듯, 박홍순의 사진은 그 자신의 체험과 발걸음의 노고를 떠올리게 하는 추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진경산수(眞景山水)??란 말이 실재하는 한국의 풍경이라는 말과, 관념적이 아닌 감각적 체험으로 주어지는 풍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그의 풍경은 서양의 규칙적 컴포지션의 풍경이라기 보다는 그 자신 고유의 실체험을 기록한 일종의 ??진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바로 여기서 우리는 지리와 풍수, 풍경 등의 개념을 중첩시키는 박홍순 사진의 산수화적인 기록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의 사진이 토지측량사진이나 현장고발성 르포르타쥬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그가 비록 앤셀 애덤스(Ansel Adams)의 장엄한 풍경사진으로부터 창작의 꿈을 시작했지만 박홍순의 사진은 1970년대 중반 미국의 '뉴 토포그래픽스(New Topographics)??의 냉정하고 중성적인 시각, 특히 그 운동의 기수였던 로버트 애덤스(Robert Adams)의 사진들과 비슷한 시각을 지니고 있다. 로버트 애덤스가 인간에 의해 파괴당한, 개발 논리에 의해 희생당한 풍경의 신음을 묘사했듯이, 박홍순의 사진 역시 우리 국토에 대한 문명적 폭력을 감정이입을 배제한 채 무기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철저한 객관주의의 수행도(修行道). 그래서 그의 사진-인간에 의해 변모된 풍경들-을 볼 때 우리는 분노나 충격 보다는 오히려 내적 고요를 마주하며 차분해짐을 느끼게 된다. ● 여기서 표현이란 말을 썼을 때 우리는 그것이 하나의 '해석??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해석은 ??인화??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나에겐 박홍순의 인화가 그의 셔터 보다 월등하다고 여겨진다. 거기엔 스탠더드가 주는 안정감이 있으며, 어느정도 섬세하고 편안한 색채로 마무리되어 있다. 만일 그의 사진 속에서 주관적인 요소가 짙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거의가 인화의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박홍순_강원도 영월군 동강입구_흑백 인화_1999
박홍순_강원도 정선군 진탄나루_흑백 인화_2003

박홍순의 이번 「한강」연작은 지난 「백두대간」연작과 그 궤를 같이 하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한강 유역의 큰 줄기인 남한강과 북한강의 현재를 그 원류에서부터 기록한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의 인식 체계에 산수가 얼마나 근본적인 얼개를 새겨 놓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분명 러브호텔의 공사판인 듯 굵게 패인 타이어자국과 강물 위를 비행하듯 지나가는 수상스키 보트와의 컨트라스트, 개발과 전쟁의 휴지기를 보여주는 해질녘의 평화의 댐, 식도락 시도락(視道樂)의 동물적 욕망 만이 현저한 도담삼봉의 풍경, 댐 공사로 끊어진 검은 강의 하혈(下血), 머리끝까지 불어난 홍수가 자연스레 만들어 놓은 잡풀들의 코린트식 열주들, 이집트 룩소르의 신전 열주들을 연상케하는 대형 콘크리트 기둥들의 위용, 남한강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포장된 정선 아우라지의 키치적 풍경, 겨울 빙어를 잡기 위해 강 위에 세워놓은 '공상도시'의 허망함, 파로호 철교 밑으로 흐르는 역사의 흔적과 상실 등, 강과 닿아 있는 인간사의 모습이 하나씩 들춰지고 있다. ● 결국 박홍순이 그리려는 '이 시대의 대동여지도'는 지질학의 문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바탕이 되는 의미있는 지도그리기가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지형에 대한 인식론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토폴로지(Topology)와 그래픽스(Graphics)의 결합을 꿈꾸게 한다. 박홍순의 지형학(地形學))이 단순한 미적 체험의 기록을 넘어 상징적이고 시적인 뉴앙스의 오브제로 어떻게 풀려갈 것인가를 조용히 지켜볼 일이다. ■ 이건수

Vol.20050323a | 박홍순 사진展

@ 우민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