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장애

김소연 개인展   2005_0323 ▶︎ 2005_0403

김소연_입학식 _시멘트 패널 위에 유채_146×112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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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323_수요일_05:00pm

후원_문화일보 갤러리

문화일보 갤러리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02_3701_5755 gallery.munhwa.co.kr

나는 이번전시에서 1979~80년대 신당동 어느 작은 골목길을 재현해 보여 줄 것이다. 시선 그 안과 밖에서 격은 한 개인의 유년기로 그 회벽을 채울 것이다. ● 나는 시멘트위에 그림을 그리는데 그것은 물성에 대한 보여주기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이미지로 공간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 시멘트라는 물성에 대한 관심도 그 안에서 성장하고 자라오면서 생겨진 것이 아닐까한다. ● 고향을 그리듯 나는 어릴 적 이 회색 공간을 그리워한다. ● 페인트도 칠해져 있지 않은 회색 골목에서 그 골목은 시선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아버지 없는 환경 속에서 골목 안 여관집 아주머니 아저씨, 설렁탕집 주인, 절집 아주머니 모두가 내 부모였고, 가족이었다. 시선 없는 곳에서 나는 행복을 인식했다. ● 골목 밖을 나와 초등학교 입학식이후 나는 내 존재를 잊은 채 타인이 읽는 시선대로 존재하였다. 그림들은, 인간이 지니는 비인간적 행동들로 서로를 상처 주는 슬픈 현실을 나로 대변하여 보여준다. ■ 김소연

김소연_골목그림_시멘트 패널 위에 유채_182×744cm_2005
김소연_골목그림(부분)1_시멘트 패널 위에 유채_182×124cm_2005
김소연_골목그림(부분)2_시멘트 패널 위에 유채_182×124cm_2005

골목, 그 안에 묻힌 존재의 흔적 ● 우리는 평생을 타인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 역시 한 사람의 타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던지며 살아가고 있다. ● 이 세계의 존재를 인간과 사물로 구분하고, 인간을 나와 타자로 구분했던 사르트르는 타자의 시선(regard)을 통해 타자의 존재와 그 시선으로 인한 나의 존재 문제를 연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 나를 바라봄으로써 부여하고 있는 모습은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가능성으로 인해 크게 좌우된다. 타인이 만들어놓은 나의 존재, 이 존재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에 대해 작가는 말하고 있다. ● 작품을 볼 때 우리는 작품 속 소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 시선은 어린 날에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타인의 시선과 똑같은 시선이다. ● 지금의 작가와 작품 속 소녀는 정말 동일한 인물인 것일까. 소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가는 붓질을 통해 아무것도 모르는 한 소녀에게 장애라는 이름으로 손과 발을 없애고 있다. 그리고 그림 속 소녀는 보는 사람에게 차가운 시선을 던진다. 그러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장애의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 이 소녀가 보는 이에게 주는 시선은 너무도 날카로워 스스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이는 자신이 소녀에게 장애인이라는 시선을 받아서 일까. 아니면 자신이 보낸 그 시선을 느껴버린 소녀에게 미안해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 역시 타인의 시선을 받고 이 소녀처럼 장애를 입고 사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일까.

김소연_인식의 장애_시멘트 패널 위에 유채_182×92cm_2004
김소연_1982년 My family_시멘트 패널 위에 유채_92×102cm2005
김소연_1988년 My family_시멘트 패널 위에 유채_92×102cm_2005

자신의 이야기에서 시작한 그녀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모티브는 그 시절 자신이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공간으로 이어지고, 자신에서 자기 주변의 가족, 어머니에 대한 애착으로, 그리고 이 사회의 장애문제,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결정짓게 되어버린 사람들에게로 확대된다. ● 캔버스가 되는 시멘트, 골목길은 자신과 사회가 만나게 되는 곳이었고, 자신이 보호받을 수 있는 순수한 공간이었다. 이제 그곳은 작가가 어린 날의 순수했던 자아를 만나게 되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작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으며, 유년 시절의 자신과 소통해보려 하고 있다. ● 오늘날 어쩌면 진부해져버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작가가 이처럼 오래토록 제기해오는 것은 타인이 만들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아닌, 그 이전의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찾기 위한 간절함과 진정성이 있기에 가능하다. ■ 차예지

Vol.20050323c | 김소연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