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ry Flower Garden

심승욱 개인展   2005_0323 ▶︎ 2005_0329

심승욱_The Dry Flower Garden 1-1_혼합매체_130×250×8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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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323_수요일_06:00pm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www.artside.net

나르시스 후예들에 바치는 헌사 ●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물 속에 뛰어든 나르시스의 일화는 아름다움에 혹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한다. 양귀비의 아름다움은 단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유한함으로 더욱 그 빛을 발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동시에 사람을 취하게 하는 열매의 치명적 중독성은 그 아름다움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꽃이란 美와 자기애(自己愛), 순결, 평화, 그리고 죽음을 동시에 상징하는 매체이다. 생명을 내던져 한 송이 꽃이 되어 버린 나르시스의 선택은 美를 숭배하고 그것을 영원토록 소유하고자 발버둥치는 현대인의 어리석음에 비하면 낭만적인 것이었다. 아름다움(?)을 위한 실리콘 시술, 보톡스 주사, 호르몬 주입, 각종 화장술은 이제 일종의 산업이 되어 전단지, 잡지, TV 광고에 넘쳐나고 있다. 자신을 던져 '꽃'이 되고자 하는 신화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르시스의 21세기 후예들이 몸 던져 찾고 있는 꽃은 향기 없는 플라스틱 조화이다. 거기엔 이미지만 있고 정신은 증발했다. 플라스틱 꽃을 복제하는 심승욱의 작업은 이 부조리한 현실에서 시작한다.

심승욱_The Dry Flower Garden 1-1_혼합매체_130×250×80cm_2005

'복제'와 '변형'은 심승욱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애초부터 그의 작업에 원본이란 없었기에 그의 반복된 꽃은 원본에서 자유롭다. 그래서 그의 복제는 일종의 바이러스인 양 기형적인 자기증식을 해버린다. 이 기형적 자기복제가 '변형'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최초의 플라스틱 조화는 더 이상 하나의 이미지로서 꽃을 상징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의 기형적 증식을 막고자 했던 기존 사회의 상징성과 시스템에 대항하며 고정 관념을 공격한다. 복제에서 또 다른 복제로 그리고 이어지는 변형의 가능성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상상력뿐이다. 이 상상력이 만들어낸 간극 사이에 무엇을 집어 넣을 것인가의 선택이 바로 심승욱의 "The Dry Flower Garden"에서 무엇을 읽어 낼 수 있을까?의 문제로 이어진다. ● 분명한 것은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단순이 꽃은 아니란 점이다. 심승욱은 꽃의 반복과 변형이 불러 온 이미지의 해체와 의미의 재생산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원색을 그대로 사용한 조악한 플라스틱 꽃의 형상이 키치(kitsch)란 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위험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그가 행하고 있는 복제의 규모가 이미 너무나 크다. 3 미터가 훨씬 넘는 대작 "The Dry Flower Garden"은 현대사회의 획일적이고 건조한 상업주의와 반복된 트랜드의 허구성을 풍자한다. 수 천 개가 넘는 플라스틱 조화가 만들어낸 덩어리는 코쿤(cocoon)을 닮아 있다. 곤충의 유충이 완전변태를 하기 전 자신의 분비물로 만든 껍데기처럼 현대인이 꿈꾸는 아름다움의 정체 역시 그들이 분비한 욕망의 덩어리로 빚은 빈 껍데기란 말이다.

심승욱_꽃미남 꽃돼지와 산책하다(부분)_혼합매체_80×120×60cm_2005
심승욱_The Dry Flower Garden 1-2_혼합매체_각 116.8×91cm_2005

그러나 심승욱은 이 빈 껍데기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는 복제, 변형, 재구성 과정에서 꽃으로 유발되는 아름다움의 의미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측면을 조명한다. 감성을 환기시키는 꽃의 미학과는 상반되는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요소로서의 미의 기준과 정교하게 포장된 상업주의의 논리를 발견했고, 그것이 현대사회의 미적 기준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새로운 장치임을 주목하였다. 전시 제목 중 Dry가 말해주듯 그 꽃들은 향기를 잃어버린 건조한 플라스틱 덩어리이지만, 현대인들의 욕망과 결합되었을 때 그것은 언제든 자극적이고 인상적일 수 있다. 작품 "페로몬(Pheromone) 플라워"는 잃어버린 꽃 향기를 대신하여 페로몬을 실제로 분사하도록 설치되었다. '아름다움=성적인 매력' 이란 웃지 못할 공식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를 꼬집고 있는 위트가 엿보인다. "꽃미남 꽃돼지와 산책하다"란 작품 역시 외모지상주의를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현대사회를 희화하고 있다. 꽃미남, 얼짱, 몸짱 등의 신조어에 열광하는 사회와 그것을 조직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상업주의가 낳은 우스꽝스런 "산책" 장면이다. ● 심승욱의 '꽃'은 다중적인 의미해석을 요구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만든 인공적인 화려함 뒤에 숨겨진 풍자를 읽어 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깨닫는다면, 꽃 향기의 유한함을 즐길 줄 알며, 영원불멸을 탐하지 않고, 우스꽝스런 가짜에 열광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한 송이의 꽃이 될 수 있다. 나르시스의 후예여! 옛 순수한 열정을 회복하라. 그리고 신화가 되라. ■ 이대형

Vol.20050327b | 심승욱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