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관한각서

김주환 조각展   2005_0404 ▶︎ 2005_0411

김주환_선에관한각서_철선_165×165×56cm_2004

초대일시_2005_0404_월요일_04:00pm

롯데갤러리 안양점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 88-1번지 롯데백화점 7층 Tel. 031_463_2716

「선에관한각서 1」작업은 작가의 작업 전체를 아우르는 '무한'이라는 주제를 종교, 철학에의 탐구와 문학적 대위법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작업으로, 그 형식상 옵아트적인 요소가 강하다. ●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작업공간의 제약을 받으면서 좁은 방안에서 할 수 있는 평면작업을 선택하였고, 그 표현의 도구로 '점'이 새겨진 주사위를 사용하게 된다. 주사위의 '점', 그것은 '하나의 점에서 시원(始原)을 찾을 수 있다'는 전통적인 우주관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도구이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우주의 시각적인 형상 - 별은 하나하나 점이 되고 그 점들을 선으로 이어 별자리라는 상징체계를 만들게 된다. 그 상징체계는 우주에 대한 끝없는 상상과 시공에 대한 개념들을 만들어내는 신화적인 모티브로 작용하기도 한다. - 을 압축해 표현하는 소재가 된다. 주사위의 '점'들을 연결하여 만들어낸 평면의 문양들은 무한에 대한 의식의 확장을 이미지화 하여 마치 천체도(天體圖)나 우주도(宇宙圖)를 연상케한다. 입으로 내뱉는 만트라적 행위 - 이상의 시에 대한 연구와 조형언어의 대입 (문학적 발현) - 와 시각적인 도형의 조합을 통해 명상으로 들어가게 하는 얀트라적 형식이 만나 「선에관한각서 1」작업이 탄생하게 된다. ● 이상의 시 '선에관한각서1'에 나오는 '입체(立體)에의 절망(絶望)에 의한 탄생(誕生), 운동(運動)에의 절망(絶望)에 의한 탄생(誕生)'이라는 구절에서 작가가 「선에관한각서 1」작업에 접근한 방법적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선에관한각서 1」작업은 다분히 반복적이고 조합적인 행위를 통해 수행의 도구로서 기능하여 무한에 대한 명상적인 접근을 의도한다. 또한 보는 이들에게는 시각적 몽롱함과 수학적 배열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여 접근과 해석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 「선에관한각서 2」작업은 점에서 선으로 넘어가 선의 중첩과 반복을 통해 구체적인 형상에 이르는 과도기적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변화의 3단계(점→선→면)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 형식적인 측면에 있어서 다분히 시간과 노동이 드러나는 작업이다. 이어 붙인 선들의 사이를 용접으로 메워 완전한 면으로 탈바꿈시키는 동안 명상적인 수행이 계속되고 질감에서는 금속의 표면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을 배제한 용접자국들이 유연함과 따뜻함을 더한다. 「선에관한각서 2」작업들은 처음부터 결정된 형태라기보다는 작업과정에서의 자기증식을 통해 최종적으로 선택되어진 형태라는 점에서 형태로 읽혀지는 이미지보다는 점으로 선을 이어 면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읽혀지기를 기대한다.

김주환_선에관한각서_흰색주사위_각 54×54cm_1997 / 위

색주사위_58×58cm_1999 / 투명주사위_58×58cm_2003 / 아래

「선에관한각서 3」작업은 하나의 선으로 이루어진 형태를 취한다. 용접을 통해 나선으로 이어가는 형상들은 모두 원형을 향해 나아가며 기하학적인 형태로 귀결된다. 작품이 나타내고자 하는 무한이라는 주제는 이제 방법적 측면과 형상적 측면에서도 그대로 읽혀지게 되는 것이다.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연결되는 선과, 무한 함수의 그래프를 연상케 하는 형태는 주제에 대한 압축적이고 기호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 「선에관한각서 3」작업중 「흐린하늘」 작업들은 문학적 발상과 시적 대입을 통해 일본의 초단시 '하이쿠'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압축의 미를 보여준다. 「흐린하늘」연작은 형태적으로 보아 검은 구름이 잔뜩 낀 흐린 하늘과 거기서 빗방울이 떨어져 저수지의 표면에 일어나는 파문 - 물리적 힘들의 교묘한 상호작용들로 이루어지는 무한 파동 그리고 수면에 비쳤던 하늘이 파문으로 인해 흐려지는 시간적, 공간적, 물리적 현상들을 공감각적으로 보여준다. ● 「선에관한각서 2」작업과 「선에관한각서 3」작업은 철선이라는 동일한 재료와 용접을 통해 형태를 만들어가는 동일한 방법에 근거하고 있으나, 「선에관한각서 2」작업이 실로 옷감을 짜고 재단과 재봉을 통해 옷을 만드는 단계를 거치는데 반해 「선에관한각서 3」작업은 실로 뜨개질하여 바로 옷을 만드는, 과정상의 상이한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 「선에관한각서 4 작업에서 작가는 내면으로부터 탐구해 들어가던 무한이라는 주제의 방향을 일상에서 부딪히는 외부세계와의 끊임없는 소통과 길 찾음으로 전환하게 된다.

김주환_선에관한각서_철선_136×160×34cm_2000
김주환_선에관한각서_철선_120×120×85cm_2001

「선에관한각서」1~3까지의 작업에서 소승적 방식의 수행을 통한 주제에의 천착이 있었다면 「선에관한각서 4」작업에서는 일상에서의 실천과 나눔이라는 대승적인 접근방식으로 새로운 방법 찾기를 시도한다. ● 작가가 농촌에 내려가 만나게 된 자연의 질서들, 머리로 생각하는 작업에서 삶과 함께 하는 작업으로 2004년 옥수수 법계도를 시작한다. 옥수수알맹이에서 싹을 틔우고 심고 키우고 수확하면서 하나의 씨앗 속에서 생명의 본질을 찾고 자연과 우주의 심오한 질서를 체감한다. ● 법계도의 형상을 빌어 옥수수밭을 만들고 그 사이로 난 끝없이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길을 걸으며, 유한하나 그 순환의 고리로 연결되는 윤회와 같은 무한의 역사를 생각한다. 이제 선은 길이 되고 길은 계속된다.

김주환_선에관한각서_철선_각 120×120×180cm_2003
김주환_선에관한각서_철선_165×165×56cm_2004

숲속조각가의 나들이 ● '숲속조각가의 나들이'전은 작가 김주환의 일상과 이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전시이다. 김주환은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결혼 후 강원도 횡성의 작은 농촌마을(하대리)로 이주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작업실이 있는 곳 - 그 곳은 작가에게 새로운 작업의 세계를 열어준 무대이다. 단조롭지만 자연의 순리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다가오는 일상, 그러자고 작정하고 들어선 곳은 아니지만 하대리에서의 삶은 마치 농부의 그것과 같았다. 눈이 녹고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 폭신하게 솟아오른 땅을 뒤엎고 씨를 뿌린다. 싹이 나면, 순을 쳐주고 대를 세워주고 잡초를 매주고 흙을 북돋아주고, 가물면 물을 주고 바람에 쓰러지면 일으켜주고…… 고단한 노동 끝에 빨갛게 농익은 토마토나 물이 잔뜩 오른 오이며, 알알이 찰지게 박힌 옥수수, 제법 맵싸한 풋고추를 수확한다. 가을이 지나 찬바람이 불면 수확물은 하나하나 곱게 저장하고 나머지 죽은 몸체들은 겨우내 썩어 퇴비가 된다. 다시 새 생명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필시 불필요한 노동일 수도 있는 이러한 일들은 작업을 하는 그에게 자연스런 영감을 제공한다. 생명의 순환, 자연의 경이로움, 이러한 것들은 '한 송이 들꽃에서도 우주를 보는' 성찰과 자기발견의 소재가 된다. 그래서 그가 3년째 기획하고 있는 '하대리 여름숲속미술제'는 사람과 자연과 예술이 조화롭게 어울리고, 이해에 대한 강요나 제약이 없는 자연스런 축제를 지향한다.

김주환_선에관한각서_철선_206×206×10cm_2004
김주환_선에관한각서_철선_120×120×5cm_2005

이러한 일상의 배경들 속에서 보여지는 그의 작업은 관념적이고 미니멀하여 다소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대학시절부터 줄기차게 매달려온 '선에관한각서'라는 제목의 작업들은 '이상의 시' 연구에서 시작된 '정신의 변화'와 '무한'이라는 주제에의 끈기 있는 도전과 연구를 보여준다. 롯데갤러리에서의 이번전시에서는 「선에관한각서」1작업에서 4작업까지 그의 작업의 진화의 4단계를 볼 수 있다. 특히 3작업부터는 하대리 정착 후, 자연에 가까운 삶과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며 얻어진 정신적인 변화들이 작업에 반영된 모습이 보인다. ● 애벌레가 몇 번의 변태를 거쳐 성충이 되듯 '선에관한각서'는 허물을 벗을 때마다 그 내면의 동질성과 관계없이 새로운 작업 형태를 보여준다. 밭을 매는 농부의 이마에 한 방울 한 방울 땀이 맺히듯 그가 하나의 선을 한 땀 한 땀의 용접을 통해 이어가며 만들어낸 나선 구조의 형상들은 지난한 노동의 과정에서 수도자의 경건함을 읽게 하고, 단순하고 기호적인 형태로 사고와 해석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또한 일상과 이상이 깍지 낀 손가락의 맞잡은 두 손처럼 조화롭게 엮어져 탄생한 생태미술- 옥수수법계도(선에관한각서4-1)는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가 작업 속에 함께 녹아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주환의 첫 번째 개인전 '숲속조각가의 나들이'전은 스스로 소박한 삶의 형태를 선택하고 자연의 질서에 동참하며, 우주의 무한함에 비견할 수 있는 정신의 무한 세계로 끝없이 항해해 가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 여름숲

Vol.20050404a | 김주환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