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삶의 공간-문학가 16인

오정석 사진展   2005_0407 ▶︎ 2005_0429

오정석_수필가 전숙희선생님-손_흑백인화_60.96×50.8cm_2005

초대일시_2005_0407_목요일_06:00pm

한국현대문학관 중앙홀 서울 중구 장충동 2가 186-210번지 Tel. 02_2267_4857

사진으로 문학을 본다 ● 사진으로 문학을 보는데 어려움이 딱 하나가 있다. 그것은 사진과 문학이 이미지와 텍스트라는 서로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리고 사진 자체도 얼마든지 문학적일 수 있기 때문에 사진으로 문학을 보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어려움은, 사진이 너무나 문학적으로 되는데 있다. 문학을 문학으로 보지 않고 위인이나 영웅이나 스타로 보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진가들이 유명인사들의 포트레이트를 찍었지만, 그들의 사진은 항상 대상인물을 위대하고 기품 있고 단아한 어떤 것으로 격상시켜 놓고 있었다. 그 격상을 위해 사용되는 사진의 수사들은 결코 건전한 것이 아니었다.

오정석_시인 김규동선생님_흑백인화_60.96×50.8cm_2005
오정석_시인 김남조선생님_흑백인화_60.96×50.8cm_2005

오정석이 찍은 문인들에게서는 그런 불건전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들은 렌즈를 들여다 보거나 글을 쓰거나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문학을 하고 있다. 사실은 '문학'을 하고 있는 것을 사진 찍을 수는 없다. 사진은 문학을 '하고' 있는 것을 찍을 뿐이다. 문학을 '하는' 것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삶의 공간에 문학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 하는 사람들 작업실을 가보면 인생을 바쳐 작업을 하는 작가의 경우 작업실에 있는 조그만 물건 하나에도 작가의 체취가 묻어 있고 사물의 질서가 있다. 반면, 건성으로 작업하는 사람의 작업실은 휑하고, 사물들은 따로 논다.

오정석_시인 김춘수선생님_흑백인화_60.96×50.8cm_2005
오정석_시인 김춘수선생님-손_흑백인화_60.96×50.8cm_2005

사실 오정석이 찍은 문인들은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분들이고, 그들이 일생 동안 쌓아 놓은 기운과 공력은 사물에 속속들이 베어 있어, 그것들이 사진에 나오는 것이다. 이때 사진가에게 필요한 태도는 사물을 관찰하고 거기서 문학의 냄새를 읽어내는 것이다. 이 사진에 나오는 문인들은 대부분 컴퓨터를 쓰지 않고 원고지에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쓰는데, 그런 습관이 사진 속에 문학적 분위기를 넣는데 한몫 한 것 같다. 컴퓨터로 글 쓰는 모습보다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200자 원고지에다 펜으로 글 쓰는 모습이 더 포토제닉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를 쫓다가 얄팍해진 사진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학은 이미 저 쪽에 준비가 돼 있고, 그것을 사진으로 옮겨야 하는데 사진이 오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진적으로 오바하지 않고 문학을 전달하려면 적절한 절제의 선을 지켜야 한다. 사실 수 많은 사진가들이 유명인사들의 포트레이트를 찍으면서 오바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무게를 담으려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오정석_소설가 박경리선생님_흑백인화_60.96×50.8cm_2005
오정석_소설가 박상륭선생님-손_흑백인화_50.8×60.96cm_2005

오정석은 어깨에 힘을 빼고 사진을 찍었다. 저들이 잘 났으면 나도 잘났다는 식이 아니라 겸손하고 솔직한 사진의 눈으로 보았다. 문인들이 어떻게 글 쓰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눈빛을 보았고 얼굴에 생긴 세월의 주름을 보았고 글씨 쓰는 손을 보았다. 그리하여 문학에 대한 사진이 되었다. 결코 문학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사진과 문학이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이 문학을 만나려 하지 않고 문학이 되려 했다면 아마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기가 연기하는 인물과 과도하게 동일시한 나머지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배우처럼 어색할 것이다. 사진은 사진으로 머물러 있고, 바로 그 자리에서 문학을 보았기 때문에 오정석이 본 문인들은 모두 다 제자리에 있다. 올바른 사진의 태도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 사진들이다. ■ 이영준

오정석_소설가 서기원선생님-메모지_흑백인화_50.8×60.96cm_2005
오정석_소설가 이청준선생님-타자기_흑백인화_50.8×60.96cm_2005

『문학가 16인 전』은 2001년부터 계간『동서문학』에 연재해 온 '문학과 삶의 공간'이 모티브가 되었다. '문학과 삶의 공간'은 한국의 현대문학사를 이끌어온 거장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고, 이를 통해 한국문학의 나아갈 길을 짚어 보는 귀한 지면(誌面)이었다. 그 지면을 맡아 문인들을 촬영하면서 故 구상 선생님을 비롯해 시인·소설가·수필가 등 문학가 16인의 삶과 집필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들의 집필공간에는 문학을 잉태해 산고를 겪듯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하며 일구어낸 그들 문학에의 혼신과 열정이 고스란히 베어 있었고, 그 특별한 공간을 접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내 깜냥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그들의 문학세계 앞에서, 다만 렌즈를 통해 담아낸 것은 한 인간이 평생을 다해 쌓아온,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문학에의 애정과 백발 성성한 초로의 나이에도 여전히 가슴속에 타오르는 삶과 문학에 대한 진정성이었다. 문인 한 분, 한 분은 몇십 년, 몇백 년 세월의 온갖 풍상 속에서도 한결 같은 모습으로 의연하게 뿌리내려온 노송(老松)과 같았으며, 그와 같은 그들의 삶의 자취를 좇으며 저들의 삶이 현대사회의 건강한 안테나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였다. 그러나 한 장의 사진으로 한 사람의 생(生)을 표현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다만 현실의 한 단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창작의 길, 문학가들이 걷는 그 힘겨운 노정의 한 걸음이라도 보는 이들이 느낄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 길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조금이라도 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정석_시인 피천득선생님_흑백인화_60.96×50.8cm_2005

이번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도와 주신 한국현대문학관 전숙희 이사장님, 김원일 관장님과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촬영에 협조해 주신 피천득 선생님을 비롯한 문학가 열여섯 분께도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 오정석

Vol.20050407a | 오정석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