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찾는다

곽은정 사진展   2005_0406 ▶︎ 2005_0412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100×22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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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406_수요일_06:00pm

갤러리 시선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0번지 Tel. 02_732_6621 www.gallerysisun.com

낭만적 거짓과 사진적 진실 ● 때로 그런 때가 있다. 카페에서, 거리에서, 차 안에서 어떤 한 사람을 문득 주목하는 때가 있다.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는 모르는 한 사람. 그때 그 사람은 대체로 혼자이고 혼자이면서도 혹은 그렇게 혼자이기 때문에 아주 편하고 아주 평안하고 아주 가벼워 보인다. 그럴 때 그 사람은 공기처럼 투명해서 빛나 보인다. 그리고 나는? 나는 눈뜨는 욕망을 발견한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은, 저렇게 투명하게 빛나고 싶은 욕망... ● 미믹(the mimic)은 번역하면 '의태'다. 미메시스(mimesis)는 '모방'이다. 미믹과 미메시스, 의태와 모방은 의미범주가 동일한 두 단어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개념들이다. 미믹의 목적은 '같아지기'다. 예컨대 아이가 거울 앞에서 화장 흉내를 내는 건 엄마와 똑같아지고 싶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와 똑같다고 믿기 때문에 엄마처럼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한다. 하지만 미메시스의 목적은 같아지기가 아니라 '달라지기'다. 예컨대 젊은 예술가가 어느 명망 높은 대가를 모방하는 건 그와 같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같아지기가 목적인 미믹이 미성숙 상태의 행동양식이라면 달라지기인 미메시스는 성숙하는 자아의 발현이다. 미믹이 유아적 퇴행충동이라면 미메시스는 자기동일성에 대한 지적이고 합리적인 욕구인 것이다.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52×100cm_2005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52×100cm_2005

곽은정의 사진은, 적어도 내게는, 메시지를 읽어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건 깊거나 복잡한 의미내용이 사진들 안에 오묘하게 직조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곽은정의 사진들은 오히려 명료하고 간결하다. 굳이 명명하자면 '더블 사진'이라고 불러도 될 이 사진들의 후레임 속 상황은 똑같다. 누군가 차를 마시거나 기도를 하고 있다. 누군가 CD를 고르거나 책을 읽고 있다. 또 누군가는 미용 팩을 하고 있거나 헬스클럽에서 다이어트 운동을 하고 있다... 곽은정의 사진들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상황들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친근한 일상의 한 순간들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사적인 경험을 통해서 이 평범한 상황이 아주 '특별한 상황(special-state)'임을 잘 알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그 상황들은 사실상 그 어떤 한 사람만의 그때 그곳에만 속하는 상황,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일회적이며 우 연적인 상황, 그래서 그 상황의 주인에게만 소속된 절대적 사유시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곽은정은 이 타자만의 그때 그곳에서 타자를 빼어버리고 그 빈자리에 슬쩍 자신을 끼워 넣는다. 나를 어렵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이 천연덕스럽고 은밀한 '바꿔치기'이다. 곽은정의 병치 사진들이 내포하는 메시지가 이 바꿔치기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는 무엇일까?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52×100cm_2005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52×100cm_2005

곽은정의 은밀한 바꿔치기는 우선 미믹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경우, 곽은정의 사진들은 R. 지라르가 말하는 '낭만적 거짓'의 좋은 예가 된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지라르는 현대인의 욕망을 '삼각형의 욕망'으로 규정한다. 즉 현대인은 저마다 욕망하는 주체이지만 그 욕망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는 낭만적 거짓 욕망이라는 것이다. 곽은정의 사진들도 그렇게 읽힐 수 있다. 곽은정은 욕망하는 주체이지만 그녀의 욕망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욕망이 그렇듯, 타자의 욕망에 대한 낭만적이며 주물주의적인 미믹, 다시말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아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곽은정의 바꿔치기가 단순히 그러한 욕망의 미믹에서 끝나는 것 같지는 않다. 그건 이 낭만적 거짓이 사진 속 인물의 바꿔치기를 통해서 객관적 사진 이미? 値?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낭만적 거짓에 매몰되어 있지만 그 인물들을 객관화 하는 소설 자체는 그 낭만적 거짓을 재현함으로써 진정성의 지위를 얻는다고 지라르는 말한다. 곽은정의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타자만의 편안한 그때 그 자리에서 그 타자를 빼버리고 자신이 슬쩍 대신 들어앉는 곽은정의 욕망은 분명히 낭만적 거짓이지만 그 욕망이 사진으로 재현되면 낭만적 거짓은 사진적 진실로 바뀐다. 거짓이 거짓으로 재현되었을 때 그 거짓은 이미 진실에 대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곽은정의 사진적 진실이란 무엇일까?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100×200cm_2005
곽은정_그리고, 나는 찾는다_컬러 인화_52×100cm_2005

내게는 그것이 미메시스, 즉 '달라지기'에의 욕망인 것 같다. 타자에 대한 선망이 아니라 나의 내면적 자아에 대한 요청, 타자의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나의 진정한 순간을 발견하려는 욕구가 곽은정의 바꿔치기 사진들이 전하는 메시지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광고의 이름으로 혹은 예술의 이름으로 욕망들이 확대 재생산되는 시장사회 속에서 어느덧 욕망의 미믹에 감염당한 우리들이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기에의 욕망을 기억시킨다. 이 기억은 경우에 따라서는 몹시 아프다. 곽은정의 천연덕스러운 바꿔치기 사진 앞에서 우리가 잠깐 발을 멈추는 건 이 깨어나는 아픔 속에서 확인하는 자기에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 김진영

Vol.20050407c | 곽은정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