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나 귀는 육체로 즐긴다

안옥현 사진 비디오展   2005_0408 ▶︎ 2005_0505 / 월요일 휴관

안옥현_초록티를 입은 여자, 혹은_3채널 비디오_약 8분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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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408_금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_2005_0428_목요일_02: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일요일_11:00am~06:00pm

갤러리 정미소 서울 종로구 동숭동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02_743_5378

자기 안에서 맴도는 시선들 ●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 선보였던 안옥현의 사진작업은 빈 방, 밀폐된 공간 속에 자리한 고독한 존재에 관련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텅 빈 방에 장시간 홀로 서있거나 병에 갇힌 물고기, 침침한 구석들과 계단, 그리고 비둘기 집, 버려진 병들과 낡은 차 스푼 등과 같은 장면들인데 그것들은 한결같이 침묵과 정적 속에 아늑한 시간이 두께를 둘러쓰고 한없이 가라앉은 느낌을 던져주었다. 다소 음울한 분위기로 가득 찼던 사진들을 기억의 갈피 속에서 슬며시 건져 올려본다. 가물가물 하지만 묘하게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일련의 시퀀스로 이루어진 연작개념의 그 서사성이 강한 사진들은 진지하고 내밀한 시선에 의해 내용의 층위가 두툼했다.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오랜만에 선보이는 작가의 작업은 사진작업이 아닌 영상작업이다. 「초록티를 입은 여자, 혹은」과 「극장안내원 여자의 작은 손전등」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마치 단편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다. 절제된 영상이미지와 잔잔한 음향, 차분한 나래이션이 깔끔하게 연출되어있다. ● 두 작품을 보고 난 후 나는 이전의 그녀의 사진작업을 영상으로 연결해서 다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옥현이란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성향, 감정, 정서가 영상작업에서도 여전히 부활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작가의 그 서사성에의 욕구와 섬세한 자의식의 표현에 더 적합한 형식과 방법을 찾아 나선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서 영상들은 느리고 정적이며 사진처럼 한동안 멈춰서서 보는 이가 오랫동안 응시하게 한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음 장면으로 이동하면서 전 장면과 그 다음 장면들을 서서히, 함께 끌고 가고 다시 잇대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 단 채널 비디오 작업은 부동의 사진을 연결시켜 놓은 형식에 더욱 가깝다. 오히려 영상을 감정과 시선의 유동성을 유지하면서 이에 대한 간섭, 개입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어 보인다.

안옥현_초록티를 입은 여자, 혹은_3채널 비디오_약 8분_2004
안옥현_초록티를 입은 여자, 혹은_3채널 비디오_약 8분_2004
안옥현_초록티를 입은 여자, 혹은_3채널 비디오_약 8분_2004

「초록티를 입은 여자, 혹은」이란 작업은 세 개의 채널 비디오로 이루어졌다. 미국의 유명한 관광지인 그랜드 캐년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 모습들에 대한 흥미, 엿보기로부터 시작한다. 작가는 그곳에서 누구나 예외 없이 특정 장소에 왔음을 증거 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셔터를 누르고 이내 심드렁해지는 모습들을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사실 모든 여행과 관광은 한 장의 사진이미지로 봉인되기 위한 절차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은 분명 사진이 지닌 인증의 힘과 기억과 추억을 연장시켜 주고 깨닫게 해주는 사진의 힘을 믿고 있다. 셔터를 누르고 촬영이 이루어지는 그 짧은 3초 정도의 시간 동안에 사람들은 경탄과 감동, 행복감과 순식간에 찾아드는 싫증과 권태, 무관심을 수시로 교차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의 뒷모습을 자신의 시선, 렌즈로 몰래 훔쳐보고 꼼꼼히 훑어본다. 그들의 뒷모습(앞모습보다 더 크고 은밀한 상상을 자극하는)을 자신의 시선 아래 두었다. ● 작가는 사진을 찍기 위해 경건한 의식처럼 진행되는 상황들, 그러니까 배경을 정하고 웃음을 짓고 부동의 자세로 셔터가 눌러지기까지의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그 시간동안 새로운 현실이 만들어지고-일반적인 일상의 현실과 다른 층위에 존재하는 현실-촬영이 끝나면서 동시에 그 새로운 현실이 휘발되고 증발되어 버리는 모습을 담담하게 관조했다. 작가의 말처럼 그것은 "비누방울의 아름다움과 같이 그 시간 안에서는 밀봉되어 있는 현실"이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작가는 그 위에 자신의 존재가 은밀하게 투영되어 올라타 상상의 세계로 나가고 있음을 허용한다. 누군가를 유심히 쳐다본다는 것은 결국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일방적인 독백을 풀어놓는다. 비디오에 나오는 이 일방적인 작가의 나래이션은 결국 자신에 대한 반영에 그쳐 일시적인 시간을 허공으로 나와 살다 이내 사라져버린다. 이 나래이션, 독백과 무관하게 그랜드 캐년을 보고 있는 여행객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의식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그들만의 의식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고 작가의 시선은 거기에 절대 미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할뿐이며 자신의 내면에서만 맴돌 것이다. ● 결국 작가는 자신이 어떤 대상을 보고 그 우월한 시선으로 뒷모습을 관찰하고 묘사하고 심지어 여러 상상을 하지만 대상에 대한 묘사나 상상이란 시각체계를 거쳐 대상을 보고 자기 의식의 범위 내에 의식의 필터(작가의 경험, 상상력의 한계 등등)를 거친 것, 다시 말해 자기 언어적 한계 안에서 산출되어진 자기의 반영에 불과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안옥현_극장 안내원 여자의 작은 손전등_비디오 프로젝션_약 20분_2003
안옥현_극장 안내원 여자의 작은 손전등_비디오 프로젝션_약 20분_2003

「극장 안내원 여자의 작은 손전등」은 단 채널 비디오 작업이다. 어둡고 밀폐된 영화관에서 사람들은 각자 화면에 몰입되어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태를 경험한다. ● 아래에서 위로 촬영한 장면으로 인해 사람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고 영화의 대사와 음향이 흘러나온다. 다 같이 어둡고 밀폐된 통조림 통 속 같은 곳에서 영화를 보지만 결국 사람들이 보고 있는 장면은 동일한 장면에서 출발해 저마다의 경험, 상상, 욕망 등으로 각자 다른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 작가에 의하면 이 작업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러나 일관성 없는 우리 일상의 현실과 조작되어진 그러나 일관성 있는 영화의 세계, 즉 비현실 사이의 경계에 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우리들은 현실에서 겪는 여러 순간들의 경험들이 마치 언젠가 보았던 영화장면 같을 때나, 이전에 한 번 겪었던 경험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종종 있다. 또한 우리들의 경험, 기억이나 욕망, 아울러 자신의 가치체계 같은 것 역시 어느 정도는 영화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영화관에서 그런 경험을 겪어내는 사람들이 다양한 표정에 주목했다. ● 결국 작가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생기는 자기 현혹, 그리고 그에 따른 감정 및 자각, 그것들의 지속되는 순환이란 주기를 관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 안옥현은 작업을 통해 보는 행위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기억과 상상, 감정과 의식, 아울러 일정한 서사에 대한 회의를 담담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회의라기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일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현실과 환영, 비현실 사이에서 딸꾹거린다. 결국 본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욕망,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자의식의 산물인 동시에 관습의 틀에서도 벗어나기 힘든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발원되는 이 보는 행위를 숙명처럼, 천형처럼 지니고 산다. 그렇다면 이미지를 업으로 삼는 작가의 시선은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 박영택

Vol.20050408b | 안옥현 사진 비디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