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작업실

남경민 회화展   2004_0408 ▶︎ 2005_0501

남경민_세잔느의 작업실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03

초대일시_2005_0408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www.brainfactory.org

화가의 작업실 엿보기 ● 남경민의 이번 전시 '화가의 작업실'은 그녀가 좋아하는 화가들에 대한 은밀한 상상으로부터 출발한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폴 세잔(Paul Cezanne),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meer), 그리고 반 고흐(Van Gogh)에 이르기까지, 유명 화가들의 작품과 삶에 대한 그녀의 깊은 관심과 존경심은 남경민의 그림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각각의 그림을 보며 이 그림이 어떤 화가를 표현한 것인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그리트의 작업실 그림 속에는 특유의 파란 하늘에 구름, 초록 사과, 그리고 앞 코가 사람의 맨발인 구두가 등장한다. 프리다의 작업실에서는 프리다의 얼굴을 한 피흘리는 사슴과 휠체어가 등장하여 육체적 고통으로 얼룩진 프리다의 삶을 떠올릴 수 있다. 각 그림 속에는 이렇듯 화가들이 실제로 남긴 작품은 물론 그 작품 안에 등장했던 소품들-호크니의 작품 속 둥근 테이블과 침대는 이제 남경민의 그림 속 방안에 놓여있다-을 비롯하여 실제로 화가가 입고 쓰던 물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남경민의 그림을 보면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화가들의 흔적이 담긴 소품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남경민_고흐의 방_캔버스에 유채_117×81cm_2003

남경민의 그림이 단지 독특한 작품과 삶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화가들을 새삼 일깨워주는데 그쳤다면 이번 전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각 그림들이 화가 개개인의 모습을 뚜렷이 보여주면서도 남경민다운 그림으로 완성될 수 있음은 바로 남경민의 독특한 시선의 힘이다. 호크니의 방 한 구석에 놓인 시들어 꽃잎이 떨어진 화병의 꽃은 맞은편 거울 속에서 활짝 핀 꽃으로 둔갑하고, 캐비닛 위 작은 거울 속에는 실제 방 안에는 없는 호크니의 얼굴이 살짝 숨어있다. 중세시대에 살았던 베르메르의 뒷모습이 있는 곳은 지금 2000년도 날짜가 찍힌 오페라의 유령 포스터가 붙어있는 방안이다. 오페라의 유령을 고른 이유도 실제로 베일에 가려있던 베르메르의 삶을 은유한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모래가 들어있지 않은 모래시계를 베르메르의 뒷모습과 그 뒷모습이 그려진 캔버스 사이에 놓아둠으로써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즉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의 정지 상태를 보여준다. 프리다의 작업실 안 갇힌 새장안의 새는 하염없이 창문을 바라보며 저 바깥세상을 향한 자유로운 탈출을 꿈꾸는 프리다의 심리를 나타내는 반면, 이젤 위에 놓인 거울에 비친 새장의 문은 활짝 열려있고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다. 이렇듯 남경민은 허를 찌르는 반전과 위트로 화가들의 숨은 심리까지도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경민_마그리트의 작업실_캔버스에 유채_112×160cm_2004
남경민_베르메르의 의한 환영_캔버스에 유채_112×160cm_2004

이번 전시가 화가의 작업실을 모티브로 한 것이지만 내용면으로 볼 때 남경민이 그 동안 지속적으로 보여준 실내풍경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커다란 창이 있고 그 창을 따라 빛이 실내로 스며드는, 언뜻 보면 그리 낯설지 않은 방안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익숙한 풍경을 보면 볼수록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는 것이 이게 과연 현재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간인지, 아니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공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시공을 초월한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닫혀있는 창문 곁에서 커튼이 펄럭이고 유리병과 판도라의 상자 또는 캔버스 안에서부터 마치 마술처럼 쏟아져 나오는 나비 떼들은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커다란 창을 통해 보이는 나무숲과 푸른 하늘은 적막한 실내와는 대조적으로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이상향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림 속의 창과 거울을 통해 보이는 것은 방 안의 사물과 전혀 같지 않거나 또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창문과 거울은 더 이상 실제 사물을 비추는 역할이 아니라 비현실적 세계로의 출구, 즉 현실과 상반되는 이상향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현실공간과 비현실의 공간이 남경민의 공간 안에서는 공존하고 있었다.

남경민_프리다의 작업실_캔버스에 유채_97×146cm_2004
남경민_프리다의 방_캔버스에 유채_97×146cm_2004

남경민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요소들인 창, 거울,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액자 등은 이번 작업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세잔의 작업실 그림에는 실제로 창이 보이지 않지만 바닥의 빛과 그림자로 인해 분명 가까운 곳에 창이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 일상의 공간 속에서 쉽게 접하는 이러한 오브제들은 그림 구석구석을 채우며 우리가 늘 보아온 실내풍경을 만들어내는 한편 투명 병 안의 날개, 사람의 두개골, 모래시계처럼 다소 생경한 사물들의 배치 또한 용이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고흐의 방과 호크니의 방에 함께 등장하는 투명 유리병 속 날개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화가 고흐가 꿈을 다 펴지 못한 채 중도에 날개를 접어버렸음을 은유함과 동시에, 그의 꿈과 열정만은 영원히 병에 담아 보존하고 싶은 염원을 의미한다. 실제로 고흐를 동경하였다는 호크니 또한 날개가 담긴 유리병을 방 안에 놓아둠으로서 고흐를 바라보는 호크니와 남경민 두 사람의 심리적 일치감을 보여주고 있다. 남경민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들은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의미와 역할을 가지며 일상적이지만 비범함을 갖춘 것들로 다시 태어난다.

남경민_호크니의 방에서 고호의 창을 바라다 보다_캔버스에 유채_146×224cm_2005

남경민의 그림은 그녀 자신이 바로 그림을 그린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관찰자로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작업을 하는 동안 그 거리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온 결과이다. 작업실이라는 화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춰진, 나아가 은밀한 비밀의 장소로 인식되는 공간을 엿보는 관찰자는 남경민 자신뿐 아니라 이제 그녀의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들도 동일한 관찰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우리는 남경민의 그림을 바라보지만 화가들의 작업실 안을 구경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취향과 관심으로 시작된 유명 화가들에 대한 탐구는 그들의 작업실이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궁금함과 호기심을 유발시켰고 이제 남경민의 손을 통해 그들의 공간이 재창조되었다. 오래 전 어딘가에 실재했던 화가의 공간은 감히 엿볼 수 없었던 닫힌 공간이었지만 이제 남경민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화가의 공간은 비로소 활짝 열린 공간으로 다가온다. 남경민의 그림을 통해 막힌 공간을 벗어나 다른 열린 공간으로의 이동을 경험해 보길 바란다. ■ 손유정

Vol.20050411c | 남경민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