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litude of wide space

이도선 회화展   2005_0413 ▶︎ 2005_0419

이도선_기다림_화선지에 채색_161×122cm_2005

초대일시_2005_0413_수요일_06:00pm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Tel. 02_733_9512

이도선의 몽환적 인체 표현과 그 가능성에 대하여 ● 작가 이도선의 이전 작업은 고졸한 색감이 잘 어우러진 바탕위에서 이루어지는 정교한 구조를 지닌 비구상 작업이었다. 혼합 재료를 이용하여 일정한 두께를 지닌 바탕을 구축하고 여기에 다양한 표현 방식들을 차용하여 화면을 구축해 나아가는 이러한 작업들은 이미 나름대로의 독특한 구조와 조형성을 확보한 안정적인 것이었다. [몽환의 흔적]이라 명명되어진 이러한 연작들은 비록 비구상의 얼개를 하고 있지만 낭만적인 색조와 감성적인 구조를 지닌 섬세한 것이었다. 특히 두터운 바탕을 긁어 표현한 선묘의 졸박하고 감각적인 표현은 단연 빼어난 것으로 인상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 탄탄하고 안정적인 비구상 작업을 견지하던 작가는 근래에 들어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비구상의 조형적 화면에서 구상의 재현적 방식으로의 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과감한 방향선회는 분명 일정한 위험 부담을 감수하여야 하는 위험한 것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그것이 비구상과 구상이라는 전혀 다른 조형 원칙을 바탕으로 한 상이한 심미체계였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도선_solitude_화선지에 채색_194×130.5cm_2005
이도선_parting_화선지에 채색_162×194cm_2005

작가는 새로운 작업의 화두로 인물을 선택하였다. 가장 보편적이고 일상적이지만, 그만큼 어렵고 우열이 쉽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인물일 것이다. 작가는 일단 아카데믹한 접근을 통하여 일종의 정면승부를 도모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수많은 크로키와 뎃생을 통하여 인체의 특징들을 포착하고, 이를 섬세하게 가공하고 재구성하여 화면에 안착시키는 노력이 여실하다. 이는 비구상에 전념하였던 작가의 경우 일거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작가는 생동감 있는 인체를 포착하고 표현하기 위하여 서울역 등지의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노숙자 등과 어울리며 그들을 관찰하고 그리기를 반복하였다고 한다. 여담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는 분명 일정한 용기와 각오가 전제되지 않는 한 실행되기 어려운 각오이자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포착되고 채집되어 진 인물들은 여러 양태의 다양한 인간군들이다. 이들 인물들은 대부분 주름이 깊게 파인 굴곡진 얼굴들을 하고 있으며, 작가는 이를 사실적인 필치와 표현으로 수용함으로써 관찰되어진 객관적 사실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 만약 작가의 작업이 사생을 통한 인물의 객관적 재현에 머물렀다면 그 성과는 과정에 대한 부수적인 설명과 그 기능적인 재현 능력의 발휘 정도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 작가는 사생을 바탕으로 획득되어진 탄탄한 인체를 바탕으로 변형을 통한 자기화 작업을 시도한다. 여타 부수적이고 설명적인 요소들을 배제한 체 오로지 윤곽선만을 통한 인체의 설정은 일단 작가의 관심이 재현 자체에 있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공허한 빈 껍질 같은 윤곽선으로 이루어진 인체들은 비록 색이나 질감에 의한 수식이 없지만 미세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은 작가의 치밀한 관찰에 의해 독특한 사실성을 지닌다. 물론 이러한 사실성은 객관성과는 다른 것으로 이상화된 사실적 표현이라 함이 보다 옳을 것이다.

이도선_The Wrench of Parting_화선지에 채색_130×83cm_2004
이도선_Dream_화선지에 채색_130×83cm_2005

작가의 변형과 이상화는 단지 부수적이고 설명적인 요소들을 배제한 엄격한 형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파격적인 전환을 통하여 전혀 다른 표현 방식을 창출해 낸 것이 흥미롭다. 그것은 윤곽선을 따라 온갖 색채들이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모양으로 인체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일그러지고 힘든 모습이 역력한 인체도 마치 무지개를 몸에 지닌 듯 변화무쌍한 색채의 띠들로 단장되어 있다. 이러한 색채들은 마치 공기가 움직이듯이, 또 물이 흐르듯이 일정한 리듬감과 운율감을 형성하며 인체를 에워싸고 있다. 색동의 색채들은 마치 잔치 날의 화려함과 들뜬 분위기를 연상케 할 정도이다. 이는 전적으로 인체가 지니고 있는 엄밀한 형태감각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그러한 형태의 정형성에서 벗어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게 된 조형적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채는 가공되지 않은 원색의 강렬함과 풋풋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색과 색이 서로 대비를 이루며 구축해 나아가는 인체의 양태들은 일종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인체의 윤곽을 따라 펼쳐지는 원색의 파노라마는 비록 인물을 주제로 하였으나 이미 이는 부차적인 것이다. 오로지 색채를 통해 재구성되는 인체의 재구성이 있을 뿐이다. 사실 이런 정도의 변형과 재구성의 단계에 다다랐다면 보다 과감한 생략과 과장은 필연적인지도 모른다. 이는 자연스러운 충동이자 과정일 것이라 여겨지는데, 작가는 여전히 그 형태의 엄격함을 견지하려 애쓰고 있다. 이는 인체에 대한 부담감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며, 동시에 새로운 작업 양태에 완전하게 적응하지 못한 과도기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작가의 작업은 개선이나 변화의 여지가 많은 동시에 그만큼 풍부한 가능성의 단서들을 내재한 진행형의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도선_邊境_화선지에 채색_194×130.5cm_2004
이도선_기다림_화선지에 채색_161×122cm_2005

사실 작가의 작업은 비록 비구상의 구축적 화면에서 인물의 구상적 표현으로 그 방향을 선회하였지만 여전히 비구상 작업에서의 성과와 경험들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크게 남겨진 배경의 구축과 운용에서 이러한 점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무작위적으로 설정 된 듯 한 배경의 구성 요소들은 모두 일정한 패턴과 조형적 요소들을 담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성질들이 지나치게 두드러져 오히려 드러내고자 하는 인물의 표현까지도 방해하는 역기능의 우려가 있음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지적과 같이 보다 과감한 왜곡과 변형, 그리고 인체의 객관적 형상성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하고 비구상 작업에서 축적되어진 상투적인 요소들을 조화롭게 조절할 수 있다면 작가의 작업은 분명 한 단계 진보한 성과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색채에 의한 형상 표현은 그 표현의 용례가 대단히 풍부한 것이다. 만약 소재를 확대하고 보다 분방한 표현의 묘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그 성과는 가히 주목할 만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단 작가의 새로운 출발점은 건강한 것이며 그 성과를 담보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보다 과감하고 자신 있게 스스로의 조형적 색채를 드러낼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고 보여 진다. 작가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 김상철

Vol.20050419c | 이도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