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60년, 사진60년 ②

시대와 사람들展   2005_0412 ▶︎ 2005_0508 / 월요일 휴관

정광삼_피서열차_1970 피난 열차가 아닙니다. 동해남부선 해운대의 여름 피서열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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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현일영_임응식_김한용_임범택_이형록_안종칠_손규문_정범태_문선호_주명덕 김기찬_권정호_전민조_배상아_김기순_이준무_김운기_오상조_김상훈_박옥수 이창남_김용일_상희석_조문호_김남진_김영수_김영일_권태균_이갑철_김광수 정인숙_황선구_신경철_안웅철_김영노_김대수_박영홍_김용호_김혜미_인효진 방병상_김현필_김아란_박여옥_박하선_이희상_남민숙_이해문_정광삼_홍순태 손재식_임석제_오형근_조천용_홍균_김용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5 www.kcaf.or.kr

인물 사진과 풍속의 리얼리티 ● 1. 『광복 60년, 시대와 사람들』은 제목이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듯이 광복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사진 작가들이 찍은 인물 사진을 모아 놓은 기념 전시다. 참여 작가 중에는 현일영과 임응식과 같은 고인이 있는가 하면 김아란과 남민숙 등의 신진 작가도 있다. 출품작의 연대기는 1945년부터 2004년까지로 이루어져 있고, 공간적 배경은 판문점과 독도, 사할린과 아메리카 타운, 서울역과 중앙청과 청계천, 명동과 이태원, 탄광과 시장, 고궁과 묘지, 시골 농촌 마을과 도시 거리와 주택가, 신도시 공원과 청학동 등 아주 다양하다. 인물들의 목록도 전쟁 고아와 혼혈아, 해외 입양아를 포함한 아이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줌마, 노동자와 상인, 군인, 수녀와 무당, 유명한 예술인과 밤무대 무명 연예인 등 아주 다채롭다. 인물 자체보다는 배경의 역사적, 사회적 가치와 정보에 주목해야 하는 사진도 있고 인물들을 세워놓고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찍은 사진도 있다. 거리의 스냅 사진도 있고 스튜디오에서 연출해서 찍은 사진도 있다. 한국 현대사의 환갑을 기리는 인물 사진의 풍성한 잔칫상이다. ● 이러한 사진의 성찬(盛饌)에서 나는 무엇부터 맛볼 것인가를 망설이게 된다. 서툰 젓가락질로 먼저 '작가' 자신을 집어 본다. 캘리그램(calligram)과 픽토그래피(pictography)의 특성을 동시에 갖춘 김용태와 김영수의 공동작품 「D.M.Z.」는 김용태가 백 수십 장의 개별 사진들로 구성한 원래의 설치작업을 김영수가 「D.M.Z.」의 문자표기로 재구성하여 스틸카메라로 찍어 놓았던 것을 이번 전시를 계기로 다시 디지털로 스캔 받아 인화한 것이다. 'Z'자의 왼쪽 아래 모서리에 배치된 사진에 환하게 웃고 있는 작가는 무명의 미군과 서 있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이 사진의 배경에는 고궁과 소나무가 그려진 대형 키취 그림이 있다. 비무장지대의 영어 약어인 'D.M.Z.'는 한국 현대사의 '하이 컨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여러 겹의 사진적 층위에서 한국 현대사를 함축하고 환기시킨다. 원래의 개별 사진들은 김용태가 동두천의 사진관에서 수집한 것들로 알려져 있는데, 매우 안타깝게도 지금은 대부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이 사실 역시 '이 땅에서' 사진가와 사진 작품이 역사적, 사회적으로 존재해 온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D.M.Z.」를 염두에 두고 말한다면, 이번 전시 도록의 모두(冒頭)를 이루는 현일영의 작품에 연합군이라는 미명 아래 미군이 등장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달 수 있을 것이다. 2차대전 승전국의 국기들이 걸린 중앙청에서의 기념식을 찍은 사진의 전경에는 중절모를 치켜든 채 환영하는 중년 남성 그리고 미군 병사와 '블론드 파마' 머리의 외국 여성이 서 있다. 여러 모로 인상적이다. 젠더라는 점에서 볼 때 해방 직후 가장 중요한 공적 공간에 한국 여성은 없다는 점, 또 뒷모습으로만 보이는 바로 그 미군 병사는 「D.M.Z.」의 개별 사진들에서 매우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며 천박한 포우즈를 한 채 자신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중절모의 계급성에 조응하는 사진의 각도, 즉 부감(俯瞰)의 각도로 찍은 사진들에 이승만, 장택상(미군정청 수도경찰청장), 윤치영(이승만 비서실장) 등 해방 공간의 거물 우익 정치인들이 등장한다는 점은 곱씹어 볼수록 맛이 난다.

김상훈_형제_1973 ● TV도 없고 전기도 불편하던 시절… 연년생 형제를 네 명이나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김용태가 수집한 사진들에서 미군들과 웃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한국의 여성들은 언제 어디에서 비로소 등장한다는 말인가. 임응식, 김한용, 김기순 등의 40년대와 50년대 사진에서 간헐적으로 한 프레임 안에 두 명 이상씩 등장하는 것을 훌쩍 건너뛰고 말한다면 우리는 정범태의 「기다림」(1957), 「결정적 순간」(1961), 「파월」(1965)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진들에는 남성, 혹은 아버지는 없다. 심지어 같은 작가의 「홍제동 화장터」(1960)와 같이 한 집안의 여성 거의 전부가 모인 사진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아주 극명하게 나타난다. 심지어 아낙네들 일부는 웃고 있다. 정범태의 「기다림」에서의 아이를 업은 여성이라는 모티브는 1970년대의 이준무와 1980년대의 권태균의 작품에서도 반복해서 확인할 수 있다. ● 작품 제목에만 한정해서 말한다면 정범태의 「기다림」은 이형록의 「기다림」(1959)을 연상시키는데 이형록의 작품에서는 여자 아이가 동생을 업고 있다. 아이라고는 하지만 애기를 업은 한에서는 엄마 대신인 셈이다. 권태균의 작품에서도 아이를 업은 아줌마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정범태 작품에서의 양산, 권태균 작품에서의 영화 포스터, 이형록 작품에서의 운동화는 매우 이색적이다. 그것들은 현일영의 중절모와는 대척적인 위치에서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와 근대화를 지시하는 소도구이다. 어쨌거나, 아버지 혹은 부성이 부재하는 한국 현대사의 공간에서 어머니로서의 여성은 아이 혹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아주 필사적이다. 60년대 조천용의 작품에서도 이는 아주 극명하게 나타난다. 요컨대 한국 현대사의 어머니들에게 역사적이고도 공적인 사건이라는 것은 본디 자식 목숨을 앗아가는 괴물이다. 박옥수와 김용일의 사진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현대사의 격랑에 의해 아이 혹은 자식을 잃게 된 한국의 어머니들은 관과 무덤 앞에서 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정범태의 잘 알려진 「결정적 순간」에서 우리는 아무래도 '사진의 미학'보다는 정치학 내지는 사회학적 테마를 우선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야 사진의 구도라든가 흑백의 콘트래스트가 빚어내는 빛과 어둠 혹은 그림자와 반사광과 산란광, 그리고 인화지의 입자들이 빚어내는 질감 등을 지각하게 된다. 어머니의 얼굴은 국가 권력 앞에 고개를 숙여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서 아이는 어미에게 매달린 채 대체로 카메라 쪽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다. 공적 공간에서도 어미는 아이를 '달고' 있다. ● 어머니 혹은 여성의 어깨를 짓누르는 개인사 내지는 가족사의 엄청난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 대척적인 위치에 있는 것으로 한국의 인물 사진에서 묘사되는 것은 태극기와 훈장이다. 그런데, 국기와 훈장의 일차적 의미는 사적 개인들의 희생적이고 영웅적인 업적을 공적으로 인정하고 보증하는 정치적, 사회적 상징물이겠지마는, 정작 김영노의 광복군 사진들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러한 의미가 퇴색되어버림을 깨닫게 된다. 훈장 세부의 사진적 묘사가 선명하면 선명할수록 개인들의 역사적, 사회적 공헌과 희생이라는 것이 헛되고도 헛되다는 느낌을 우리는 갖게 되는 것이다. 생존 광복군의 얼굴 및 손의 거친 피부와 주름은 그 헛되고 허망한 세월을 환기시키고 있다. 박하선의 사할린 동포 사진 중 소련군 참전의 경력을 가진 할아버지의 가슴에 매달린 훈장들도 이런 점에서 여러 겹으로 역설적이다. 심지어 이번 전시에 제출된 사진 전체를 훑어보고 있노라면 2002월드컵 이전까지 태극기는 주로 관을 덮을 때 쓰이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생기는 것이다.

전민조_보행위반자_1975 ● 차도를 함부로 건너면 처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보행위반한 사람을 거리에 벌 세우는 모습입니다. 다음 단계는 파출소에 가서 반성문을 쓰거나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2. 현일영, 임응식, 정범태, 조천용, 김용일 등의 작품이 제한된 방식과 수량으로나마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를 직접 기록하고 있음에 반해서, 전체적으로 보아 역사적 사건들 자체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많지는 않다. 전시 주제가 인물 사진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보도사진이라는 장르에 속하는 사진들이 제외된 탓이다. 그 대신에 우리는 풍속의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많은 사진들을 시대별로 맛볼 수 있다. ● 한국 현대사진사에서 최초로 노동자를 다룬 임석제의 작품들과 놀이, 가사노동, 결혼 등을 다룬 김한용의 작품들, 시장 아낙네들을 다룬 김기순의 작품들을 필두로 해서 정범태, 이형록, 안종칠, 손규문 등의 작품은 1940년대에서 50대의 사회 풍속에 대한 사진적 기록이라는 아주 중차대한 의의를 갖는 작품들이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고르고 뛰어난 이들 작품의 다수는 이미 민족사진가협회가 2002년에 주최한 「한국사진과 리얼리즘전」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된 바가 있고 이 사진들의 의의에 관해서는 평론가 정진국이 도록의 서문으로 다루었다.(「곤궁한 시대의 활기」)

김용일_5. 18_1980 ● 1980년 5월 18일, 전두환 일당은 계엄 확대 조처에 항의하는 광주시민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가를 누볐다는 것이 기관총 무차별 난사의 이유였습니다.

지난 번 전시에서 소개되지 않은 작품 중에서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것이 김한용의 독도 사진이다.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반에 찍은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한국산악회의 울릉도독도학술조사단의 기념 사진인데, 사진 가운데 조그맣게 '독도'라고 쓰여진 표석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의 한일관계를 감안할 때 기억해 둘 만한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자갈치시장을 다룬 김기순의 작품 중에서 한 점은 풍속적 의미는 물론이고 조형적인 측면에서도 그럴 듯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 임범택의 「상경」(1956)은 임응식의 잘 알려진 「구직」(1953)과 연관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임응식의 작품이 더 먼저 제작되기는 했지만, 우리가 가진 현대사의 통념상 '상경 - 실업'의 순서로 읽는 게 자연스럽다. 묘하게도 어머니가 빠져 있는 임범택의 이 작품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아버지의 꾸부정한 자세, 이와 대조적으로 다소간 긴장과 설렘에 찬 아이들의 얼굴과 눈빛, 아버지가 메고 있는 '밥상'이 주는 정서적 울림, 서울역 건물 자체에 드리운 그림자와 사람들의 그림자의 대비, 또 중경(中景)에 묘사된 양복 입은 서울 사람들의 한가로움이 주는 대조적인 함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임범택의 작품에서 아버지를 따라서 상경한 바로 그 '아이'들에 관한 다양하게 변용된 사진적 이미지들은 이번 전시의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 우리가 맛볼 수 있다. ● 이런 점에서 우리가 좀 더 상호 연관 내지는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에 강조점을 두어 읽기로 작정한다면, 앞서 말한 현일영 관중의 중절모와 임범택 아이의 캡, 그리고 임응식 실업자의 눌러쓴 모자는 각기 서로 다른 계급성을 지시하며 대조적인 의미 연관을 구축한다. 반면에 임응식이 묘사한 실업자의 모자에 가려진 얼굴과 정범태 「결정적 순간」의 어머니의 숙여 가려진 얼굴은 서로 일맥상통한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상경한 많은 사람들은 정범태의 마부나 열쇠장수가 되기도 하고 이형록의 구두상이 되기도 하며 안종칠의 뻥튀기 상인이나 손규문의 채빙 노동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다수의 많은 사람은 임응식의 실업자로 궁핍한 시대를 견디어 내야만 했다. ● 이번 전시 중에서 194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많은 사진이 다루고 있는 인물 유형은 노인과 아이다. 두 유형 모두 사회적, 조형적 관점에서 그럴 듯한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다. 동시에 두 유형은 바로 그 공통점이 내포하는 의미에서는 매우 대조적이다. 사회적으로 보아서 하나는 곧 죽음에 이르게 될 노쇠를, 그리고 다른 하나는 희망과 미래를 뜻한다. 노인의 늘어지고 쭈글쭈글하게 변형된 살과 주름과 피부는 아이들의 활기차고 생동하는 눈빛, 표정, 자세, 동작 등과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이런 유형의 인물을 찍는 사진들에서 흔히 나타나기 쉬운 것이 바로 '포토제닉'과 관련된 우리의 상투적 사고나 감각일 것이다. ● 상투성에 함몰하지 않기 위해서 작가는 사회적 통찰력과 조형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피사체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관건인 바, 이의 모범적 사례를 우리는 홀트씨고아원과 시립아동병원에서 찍은 주명덕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 사진은 임응식이 해방 직후에서 한국전쟁까지의 시기를 묘사한 이후에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진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주명덕의 작품들처럼 그러한 통찰력과 긴장감과 거리를 확보한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포토제닉한 피사체로서의 아이들에 관한 상투적 관습에 굴복한 것이다. 문선호의 「고독」(1967)은 외국 사진전에 입선한 작품인데,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소재 및 제목, 그리고 카메라의 앵글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키취적이라고 여겨진다.

김영일_젊은세대_1983 ● 통금해제, 교복 자율화 등의 갑작스런 사회적 변화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가장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파마 머리 남성, 짙은 화장, 노출의 패션 등 이전에 볼 수 없던 시대변화입니다.

3. 1970년대까지 한국 현대 인물 사진에 어머니, 노인, 아이가 많이 등장한다. 이 사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할 터이지만, 결국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사회와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작가가 어떻게 설정하고 확보하려고 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공간에 작용하는 역사적이고도 현실적인 힘들은 촬영, 현상 및 인화의 각 과정에 걸친 사회적, 미적 실천의 궤적을 좌우하는 일종의 문화적 중력인 셈인데, 작가의 의식적이고도 분투적인 노력에 의해서 그 한계가 어느 정도까지는 넓혀지기도 하고 돌파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사회적이고도 예술적 상호작용의 공간이라는 것은 본디 경제적인 생활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영향과 변화가 인물 사진에도 슬며시 나타난다. 주명덕, 오상조 등의 작가가 찍은 '온전한 가족'의 사진이라든가 노동과 휴식의 군상을 잡아낸 정광삼의 작품, 김상훈의 형제, 자매를 찍은 사진, 김기찬의 도시 서민 동네를 훑어낸 작품, 전민조의 도시 거리에서의 생활 풍속을 다룬 사진 등이 바로 그것이다. 70년대의 이들 작품은 1960년대에 배상하, 이준무, 김운기 등이 주로 농촌에서 카메라로 포착한 풍속과는 지역적 배경이라는 점에서는 확실히 다르다. 서서히 그 효과를 내기 시작한 압축적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수도권 인구 집중이라는 실체적 역사 과정의 사진적 흔적을 우리는 체크해낼 수 있다.

김영수_고문_1988 ● 인권이 무시되던 시절_끌려가면 일단 고문부터 당해야 했습니다. 부당한 시대상황을 사회에 인식시키고 문제제기 한 사진입니다.

그렇지만 비판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50-60년대 리얼리즘 사진의 성과에 비추어 볼 때 그 볼륨이나 깊이에서 1970년대의 사진이 다소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서 나로서는,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인물 사진들은 1970년대에 국가 및 공공영역에서 생산된 많은 '이데올로기적 사진'과 대질 심문해서 처리되어야 할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말해두고 싶다. 즉, 도시의 거리, 그리고 산업 발전의 현장에 대한 영상적 전유(專有)는 국가 권력의 직접적 지원에 바탕을 둔 소위 공보사진과 언론계의 보도사진을 포함한 이데올로기적 사진들에 의해서 주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반면에 작가들이 작품으로 의식적으로 찍은 인물 사진들은 당대의 사진 관습을 따른 나머지 그 소재 영역이 아주 제약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거친 추측이며, 한국 사진의 사회사라는 관점에서 객관적 자료에 바탕을 두고 더 섬세하게 검토되고 논증되어야 할 주제라는 점만을 덧붙여 두기로 한다. ● 1980년대 이후의 사진들에는 새로운 징후들이 나타난다. 1980년대의 정치적이고도 사회적인 외상(外傷)을 현장에서 포착한 김용일의 사진을 제외하고 말한다면, 작가들의 사진적 실천은 특정한 공간에 서식하는 생태적이고 전형적인 존재로서의 사람들에 주목하는 것과 개체로서의 인물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강조하는 것에 집중되고 있다. 황선구의 안동 하회마을이나 충남 예산, 오상조의 청학동, 상희석의 전방, 조문호의 전농동, 김남진의 이태원, 김영일의 소비 공간으로서의 대도시의 거리 등은 바로 전자의 사례이며, 권태균, 황선구, 신경철의 개인 포트레이트는 초상사진의 전형과 본령을 본격적으로 확립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이제,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작용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기반 위에서 사진적 실천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속한 세대의 역사적인 체험과 기억에 기대서 말한다면, 김용일의 역사적 사건의 재현이나 황선구의 포트레이트, 그리고 김영일과 김남진의 거리 스냅 사진에서 나는 동시대적인 감흥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더 시간을 두고 곰곰이 따져봐야 할 일이기는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 이번 전시의 1970년대와 80년대의 사진 전체를 놓고 보면 뭔가 아쉬운 느낌이 솟아오르는 것을 억누를 도리가 없다. 이 시기 사진적 실천 전체는 일단 외연적 볼륨과 캐털로그의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보아서 빈약하며, 더 나아가 피사체인 인물과 대결하는 포트레이트 고유의 힘이 느슨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다. 물론 내가 이 시기의 사진을 많이 보지 못해서 갖게 되는 주관적 인상임에 틀림이 없겠지만 말이다. ● 어쨌거나, 우리가 전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사진적 실천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보아서 한편으로는 시각예술 전체의 제도적 권력의 미적 변방에 위치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아무리 그 재현의 속도에서 대부분의 다른 시각 미디어를 능가한다고는 하더라도 사진 이 예술적 실천인 한에서 역사적 현실의 변화 속도 자체를 곧바로 따라잡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양쪽 모두에 한국 사진 특유의 토착성 내지는 지역성(locality)라는 것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인숙_판문점-북쪽사람_1995 ● '6. 25 전쟁당시 휴전회담이 열려 군사정전 협정을 조인한 장소로 현재도 남한과 북한의 휴전장소로 사용하고 있고, 관광지이다' 라고 백과사전에 판문점은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판문점은 공무원 3급 이상의 고위 관직 신원증명을 받아야만 겨우 들어 갈 수 있었던 특별한 곳입니다. 창을 통해 처음 마주친 북쪽 사람, 그들도 남쪽사람을 신기하게 보고 있습니다.

4. 인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일종의 제도적 실천이다. 위에서 말한 사진의 지역성이 드러난다는 것도 다 이러한 점에서 보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희석이 전방생활을 묘사한 작품들이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나왔다는 것이나 판문점 및 전방 철책을 찍은 정인숙의 사진이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는 것은 특정 피사체에 대해서 카메라를 향하는 일 자체를 제약하고 검열하는 정치적이고도 사회적인 검열 제도의 힘이 얼마나 완강하고 보수적이고 전제적이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 한국 사진의 지역성이란 이렇듯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압력들이 사진적 실천에 작용함으로써 형성된 것이며 이 지역성이란 우리가 현실 자체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역성에 상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역성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서 한국 사진이 사진 문법의 일반적인 관습을 향해서 조금 더 자유스럽게 열리게 된 것이 1990년대 이후라고 하니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인숙의 작품들은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공보사진 및 보도사진들이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시각에서 텅 빈 판문점의 공간과 건물들을 통해 분단 현실을 환유적으로 제시하고 있고, 안웅철의 작품들은 조형적 형태의 유사성에 착안하여 두 개의 프레임을 결합시켜 제시함으로써 명동이라는 특정한 사회적, 문화적 공간을 묘사하고 있다. ● 1990년대 이후의 작품이 1980년대의 그것들보다 더 인물 사진을 더 특수하고도 분화된 방식과 시각에서 추구하고 있음은 누구나 한 눈에 잘 알 수가 있다. 이갑철의 인물 군상 연작, 김영노의 광복군 사진, 오형근의 아줌마 사진, 김현필의 '세움' 연작, 김대수와 김용호의 유명 예술인 사진, 개인 및 가족의 시간적 변모를 흥미롭게 기록한 김광수와 김영홍의 사진들은 1950년대와 60년대의 작품들과 비교해서는, 작가의 의도적인 주관성과 개성이라는 문제가 사진적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주관성과 개성의 추구라는 점에서 김영노, 오형근, 김현필 등의 작품들은 그 소재가 되는 인물들의 역사적, 사회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가들 모두 공통적으로 자기 고유의 감각과 분위기와 스타일을 애써 표출하려고 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 그런데, 2000년대라는 시간축에서 인물을 잡아낸 사진들, 즉 일산 호수공원에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을 찍은 인효진, 고궁 및 수영장의 군상들을 묘사한 방병상, 2002 월드컵의 열기를 담은 김혜미, 최근 몇 년간의 시위 현장을 담아낸 김아란, 굿판의 무당들의 순간 동작을 잡아내려 한 남민숙, 사할린 동포를 기록한 박하선 등의 작품에서, 우리는 한국 사진의 이미지와 이미지가 재현해낸 현실 사이에는 모종의 시간적 낙차랄까 지체감(遲滯感)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희상의 오늘날 거리 스냅 사진에서도 명백히 확인하게 되는데, 캡션의 정보를 괄호 안에 넣고 사진을 읽는다면 사진 이미지로 재현된 피사체의 연대기를 딱히 2000년대라고 쉽사리 확정할 수는 없다. ● 사진이라는 기계 장치는 본디 근대적이고 도시적인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 사진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 현대 사진을 우리가 일별하게 되면 사진 이미지로 재현된 이러한 근대성과 도시 공간성은 우리가 실제의 그것으로 상상하고 상정하고 있는 개념적인 수준의 근대성과 도시 공간성과는 상당한 낙차와 지체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현실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가파르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러한 변화는 표피적인 것일 뿐이고 사진 이미지의 무의식이 드러내는 심층적 차원에 볼 때에 우리의 삶에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측면을 강조하는가의 차이겠다.

김영노_광복군_1997 ● 조국의 광복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던 광복군, 이제는 몇 분 안 남았습니다.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는 우리의 영웅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오늘날 인물을 재현하는 사진 이미지의 대부분은 아주 일상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된다. 디지틀 카메라와 카메라폰에 의해 생산된 소위 '뽀샤시'한 인물 사진들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유포되고 소비되는 과정의 당대적 속도 및 가속도를 이번 전시에 제출된 사진이 잡아낸 인물 도상이 보여주는 속도 및 가속도와 비교해본다면, 이러한 낙차와 지체감은 더 두드러진다고도 말할 수 있다. ● 하지만, 대중소비문화의 시각적이고도 문화적인 성격 일반에 관한 우리의 개념적이고도 이론적인 파악 자체가 겨우 1990년대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 현대의 인물 사진 이미지에서 발견하게 되는 이러한 낙차와 지체성이라는 것이 사진적 실천에만 고유한 것은 아니고, 우리의 삶의 정신적이고도 문화적인 측면에 필연적으로 각인되어 온 바 한국 현대사의 고유한 성격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올바르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이러한 지역성이라는 것은 발현 방식과 정도에서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한국의 문화예술 전반에서 확인되는 일반적인 특성인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야말로 우리 나름대로 한국 사진의 전통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들의 사진들이 여기에 모여 있다. 이것들을 한꺼번에 본다는 것은 그리 흔한 기회가 아니다. 우리가 이번 전시에서 보게 되는 인물 사진들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지역성 및 이것과 연루된 낙차나 지체라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고유한 사진 전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진 고유의 지역성이라는 것을 더 이상 열패감과 열등감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일이다. 더구나 이번 전시의 기획과 진행 자체가 이러한 전통의 소산이 아닌가. 이러한 낙차와 지체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서 새롭고도 다양한 가능성들을 찾아내고 추구해나가는 것이 '한국 사진'의 현실에서 갖게 되는 우리 모두의 즐거움이고 보람일 것이다. ■ 이재현

Vol.20050423b | 광복60년, 사진60년-시대와 사람들展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