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탈색된 시간

윤정선 도예展   2005_0427 ▶︎ 2005_0503

윤정선_몽중_흙_35×33×18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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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427_수요일_05:00pm

통인화랑 서울 종로구 관훈동 16번지 통인빌딩 B1 Tel. 02_733_4867 tonginstore.com

세상과의 소통 ●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생은 혼자서 떨어져 나와 혼자로 돌아간다. 외로운 건 당연한데 사람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부딧끼고 마주쳐 주길 원한다. 이 땅의 여성은 사랑받질 못한다. 존재자체의 상처는 아물지 못하는 것이다. 할머니의 삶보다 어머니의 삶이 나았었고 어머니의 삶보다 내 삶이 나았었다고 말하면서 그걸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모든 여인들은 그리워하고 바라보고 또, 기다린다. 항상 당신들로 다가가려하지만 막혀버린 벽 앞에서 늘 당황하는 모습들. 오늘도 내일도 돌아오지 않는 시선을 당신들에게 보낸다. 세상이 빨리 돌아갈수록 복잡해질수록 소통의 끈은 가늘다. 세상과의 회복을 꾀하는 치유의 몸짓, 상처의 씻어내기. 타인과의 대화와 소통의 단절로 인한 우리시대의 삶의 한 부분을 지나가기 위한 성찰의 시기를 표현하고, 내가 보내는 시선이 이 여인들의 얼굴 안으로 들어가서 그 화폭 속에 나의 언어로 담아내는 작업을 지속시켜야 한다. ■ 윤정선

윤정선_물오른 나뭇가지_흙_43×23×16cm_2004
윤정선_기억을 더듬다_흙_44×22×16cm_2004

탈색된 시간에 부쳐 ● 사람들은 현실의 삶이 항상 만족스럽지 못하고 풀어가야 할 실타래처럼 늘 엉켜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엉킨 실타래를 어떤 이는 엉킨 채로 두기도 하고, 다시 새로운 매듭을 만들어 내는 이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끊어 내고 새 실타래를 만들어 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윤정선이 풀어 나가야하는 실타래는 흙이며, 그녀는 이를 통해 삶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녀에게 있어 흙은 갈증이 나면 찾는 샘물과도 같다. 흙은 자연이며, 인간이며, 삶이요, 일상이다. 시간의 더께 같은 주름이나 살갗에 생긴 흉터, 흔적과 같은 여러 가지 삶의 파편들을 그대로 재단하지 않고 현실에서 받아들인 단편적인 경험들을 탈색시키고 정제시켜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흔적들을 유기적으로 조작한다.

윤정선_몽상가_흙_27×30×20cm_2004
윤정선_검은 기억_흙_23×21×14cm_2004

이번 이야기는 자화상 - 탈색된 시간이다. ● 감정의 기복이나, 일상의 소용돌이 안에서 생명력과 역동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삶의 가치를 거기에서 확인할 수 도 있겠지만, 그녀가 빚어내는 여인들을 보고 있자면, 시간을 통해 정제되고 탈색되어진 일상이 구현되어진다. 손끝에서 빚어진 여인의 모습 안에 일상이 보이고, 그 사이에서 체험된 기억들이 그녀를 감싸 안고 있는 오래된 나무토막이나 흙과 새 등의 상징적인 형상으로 그녀의 머리위에 앉아있게 된다. 반죽하고, 빚으면서 완성된 일련의 명료한 형태들은 가마 속의 불을 견디고 나와 완연히 탈색된 검은 빛을 띠는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탈색된 시간은 이런 잿빛어둠을 실토한다.

윤정선_뒤바뀐 상황_흙_52×30×17cm_2004
윤정선_더듬이질_흙_37×25×17cm_2004

사유하고 있는 이 여인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유토피아를 구체화 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를 꿈꾸게 한다. 이런 모순과 갈등은 여타의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작품화시키는 내용의 일부를 이루게 되기도 하며, 때에 따라 개인적인 감정 상태에서 몰입되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체험을 통하여 세상을 다 품을 수 있는 깊이와 생명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윤정선에게 있어 자연은 천연 그대로, '스스로 그냥 있음' 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본래 자연이란 산·강·바다·초목·동물·비·바람처럼 저절로 생성·전개·소멸이 이루어지는 일체의 것을 의미하겠지만, 넓은 의미로 조화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 일체의 것, 곧 인간을 포함한 천지간(天地間)의 만물·우주까지도 포함시킬 것 같다. 사유하는 여인의 표정을 보고 있다 보면, 시간이 압축되고 많은 생각을 통해 공간과 공간이 압축되고 겹쳐짐으로써 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버리고 비우는 것이 누구에게나 쉽지 많은 않다. 누구나 무언가를 갖기 원하며 이러한 소유와 집착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이다. 하지만 선뜻 버리고 떠나는 일은 새로운 삶의 출발로 이어진다. 비우지 않고서는 새 것이 들어설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버리고 채우는 일이 쉽지 많은 않은 것이다. 윤정선은 흙을 통해 채우고, 흙을 통해 비워낸다. 추상적인 모습도 아닌, 햇살과 비바람을 이겨낸 꽃보다 아름다운 풍경이 눈을 감은 여인의 표정 안에 머무르고 있다. ■ 이정원

Vol.20050426a | 윤정선 도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