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空하다

공ㆍ유展   2005_0426 ▶︎ 2005_0508

이동재_Icon_캔버스 위에 쌀_91×116.7㎝_2004

초대일시_2005_0425_월요일_05:00pm

참여작가 이동재_주후식_백승호

책임기획_원보현

드루아트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화동 50번지 Tel. 02_720_0345

전시 취지 ● 동양의 예술사상 속에는 '확정되지 않는 것들의 아름다움' 에서 미의 본질을 찾으려고 했던 일련의 모색들이 있어 왔다. 이러한 일련의 모색들 중에서 '여백의 미' 는 비어있는 바탕조차도 '보이지 않는 형상의 존재 공간'으로 보았다. 사실적 묘사나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이 예술의 본질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과 자연의 이치를 담아내려는 작가의 사의(寫意)가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동양사상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생각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직관과 암시적 방법으로 접근해 왔다는 것이고, 그것을 일깨우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미술은 전통적인 의미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개념의, 새로운 유행들을 끊임없이 접하고 수용하는 것에 급급해왔다.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면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지나가듯이 우리의 미술 또한 그렇게 소중한 우리의 美感을 잊고 달려 왔는지도 모른다. ● 그런 의미에서 '空 有'展에서 소개되는 작가들은 소음과도 같은 군더더기나 수다스러움을 배제한 보다 대상과의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경험들을 추출하는데 치중하는 작품들을 선보일 것이다. 그것은 더러 절제적인 간결구조, 물성, 사유, 행위, 역설, 은유 등의 양상으로 압축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백승호_Dimension Complex_철_가변크기, 설치_2005

전시 의도대상을 어느 특정한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은 그것은 광범위한 연계(連繫) 위에서 그때그때 대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일 뿐이며,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이미 그것은 대상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이므로 그 대상에 언제까지나 집착할 필요가 없다. (반야바라밀다심경) ● '공(空')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거나 혹은 무한(無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고착된 실체에 대한 거부인 것이다. 반면 '유(有)'는 존재를 의미한다. 존재라는 말은 서양철학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이나 한 사물의 본질, 실체를 가리킨다. 니체는 존재에 대해 "존재는 가장 공허한 개념, 증발된 실재의 마지막 연기일 뿐"이라고 말한바 있다. ● 우리는 동양과 서양에서 공(空)의 사상을 해석하는 철학적 근거의 범위가 얼마나 현격(懸隔)히 대비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사유(思惟)적 개념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이 전시는 동양적 공사상의 사유(思惟)적 체계 위에서 사고(思考)를 근거로 하여 기획되었다. ● 우리가 일상에서 인식하는 경험의 세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모든 지각이나 관념의 대상들은 존재의 독자적인 근거가 없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그 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이 인위적인 의도에 의해 만들어 내고 있는 그 어떤 대상에 대한 어리석은 집착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 인간이 가지고 있는 五感 중에서 가장 빠른 현상학적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각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우리의 인식체계는 사회적 존재로서 습득했던 형식적인 사고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대상에 대한 의미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하여 형성된 기준들에 근거하여 사고를 연계하는 것이다. 그러한 반면 예술가는 보이는 사물에 대한 경험을 현실과 상상사이에 위치시키며,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물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결정적인 인식을 해체 시키고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해석의 자유를 인정하며, 관객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시키는 요소를 부각시켜준다. ●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공(空)으로서 새로운 인식전환의 변화가 가능하다. 예술가들이 던져주는 새로운 형태의 논의를 통하여 우리는 더욱 넓은 세계의 가상적 혹은 실체적 존재에 접근 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실체적 사고를 버리고 주입된 의식의 경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한 또 다른 예술세계의 작품들을 통하여 관객들은 새로운 대상으로서의 사물을 바라보는 폭 넓은 자유적 사고를 이 전시에서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후식_회귀_세라믹_120×120×8cm_2005

전시 구성 ● 이 전시에서 소개되는 세 명의 작가들은 넓은 의미로는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사물의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공(空)과 유(有)의 경계를 보여주며, 그 안에서 '비우는 것' 혹은 '소멸(消滅)'을 통해 '존재'를 설명함에 있어서는 각자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 ● 각기 다른 물성(物性)을 통하여 세 명의 작가들이 통찰(洞察)하는 작업의 세계는 '일시적 도취(陶醉)', '시선(視線)의 관계(關係)', '존재(存在)의 거짓말' 이라는 테마(Theme)로 나뉘어 부각되어 진다. ● 이 전시를 통해 관객은 작품 속에서 표출되는 작가적 사고에 예술적 유희가 가미(加味)된 그들만의 은밀한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 일시적 도취(陶醉)_이동재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일시적 도취'는 캔버스 위에 재현된 이미지가 공간 안에서 보는 각도와 거리에 따라 해체되었다가 구축되기도 하고 또렷하게 드러나다가 흐릿해지기도 하는 착시현상을 의미한다. 캔버스 위의 희미한 이미지는 선명하게 보여지는 결과물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인지(認知)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가져 다 줄 수도 있다. 그러한 반면 우리는 작가가 주는 사물에 대한 또 다른 현상적 딜레마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또한 두번째 테마의 작업인 바인더회화를 통해 보임과 보이지 않음, 의미의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나타내고자 했으며 자신의 작품을 가시적 경계라고 규정지음으로써 그 가시적 경계를 통해 있음과 없음,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음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식의 경계를 경험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 시선(視線)의 관계(關係)_고정(固定)된 이미지는 그것을 이탈(離脫) 했을 때 또 다른 흥미를 느끼게 한다. 백승호의 작품은 프레임(Frame)만 있는 지붕의 형태가 천정에서부터 혹은 벽면에서부터 내려와 바닥과 근접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전체의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왠지 모를 공허함 마저 들게 한다. 이 전시에서 그의 작업은 형태적으로는 두 부류로 나뉘지만 그것은 하나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Dimension complex는 이번 전시에서 전통지붕의 형태를 고수하면서 Wire-frame의 선(線)적 자유로움의 표현을 통하여 좀 더 포괄적인 작가관을 시도하고자 한다. 또 그의 작업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즉 사물과 공간을 하나의 작업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다. 지붕의 형태를 낮은 시야로 잡은 것은 작가가 White cube에 최소한의 행위를 함과 동시에 풍경을 옮겨 놓는다는 개념이지만, 여기에서는 바라보는 이들에게 객관적 사유의 자유로움을 열어두고 싶은 의도 또한 담겨져 있는 것이다. ● 이것은 작품을 공간에 놓는 행위가 아니라 전체 공간에서 고유적 물질을 빼내버리는 것이다. 즉 본 전시에 보여지는 형태는 적극적인 작업의 행위이기 보다는 본 작업을 위한 에스키스 인 것이다. 이 작업에서 흥미로운 것은 작업의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먼저 빈 공간 전체에 일정 단위로 mapping을 하고 이 공간에 사물을 설치한다. 이 mapping의 점에서 출발한 선들이 공간전체로 이어지면서 사물에 부딪히는 점들을 확인 한 후 이 사물들을 공간에서 빼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작업에서 중요한 점은 사물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점이다. 즉 사물의 형태를 빈 공간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전시명인 空,有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비우는 것과 '공유'한다는 행위, 그리고 부유하는 세가지 언어적 유희를 동시에 보여주는 과정이 나의 작업의 주된 요소가 될 것이다. (백승호)존재의 거짓말_주후식의 작품에서 주 재료로 보여지는 것은 흙이다. 흙이란 물성(物性)은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지만 800˚~1200˚의 불 맛이 어우러진 소성(塑性)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은 그 본질을 벗어나 있다. 하나하나 분리된 객체들이 각자의 주체의 모습이 아닌 일상의 현상에서 일탈하려는 마음처럼 '그것'은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는 있으나 이미 '그것'이 아닌 것이다. 그의 작업은 주체적인 내면의 존재성, 구축과 파괴, 사려져 감에 대한 아쉬움 등을 고전적 미의 구조에 입각한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 각각의 다른 물성(物性)들이 모여 또 다른 형상(形象)을 만들어 간다. 그것이 구축되어져 하나의 조형언어로 표현된다. 각각의 물성(物性)이 일상(日常)의 현상이라면 구축되어진 구조물은 새로운 조형성이며 작가의 표현 언어이자 얼굴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의 작품은 흙이 주는 제약된 물성(物性)의 요소와 1200˚의 불의 가변성을 통한 조형 언어인 것이다. (주후식)원보현

Vol.20050426b | 공ㆍ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