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紙적積노怒리理

최송화 개인展   2005_0427 ▶︎ 2005_0503

최송화_지(紙)층_혼합재료_2005

초대일시_2005_0427_수요일_05:3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2층 Tel. 02_734_1333

지紙적積노怒리理 ● 누구나 종이에 손을 베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칼을 사용할 때는 베일 것을 예상하고 있으므로 조심하게 되지만, 항상 친숙했던 가볍고 약하기 짝이 없는 종이에 무방비 상태에서 베었을 때는 의외로 섬세하고 깊이 상처를 입힌 종이가 새삼스럽다. ● F.S.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 저택의 완벽함 말해주기 위해 견고한 영국제 참나무로 된 고딕풍의 서재를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작 개츠비는 어느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고급스러운 책장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들은 방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식의 권력 앞에서 위압감을 느끼고 돌아가며, 개츠비는 자신의 책들 앞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작가 최송화는 자기 방에 있는 책들 앞에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누구나 느끼는 지식의 권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니다. 책의 내용이나 제목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얇은 종이가 지층처럼 수없이 쌓여 있는 그 두께가 너무나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면서 숨통을 조이기 시작한다.

최송화_지(紙)층_혼합재료_2005
최송화_지(紙)층_혼합재료_600호 부분 100F_2005
최송화_지(紙)층_혼합재료_600호 부분 400F_2005
최송화_무게1_혼합재료_132×160cm_2000

작가는 자신의 모든 경험들, 즉 강박, 고정관념, 기억, 불안정, 고통, 외로움, 사랑 등을 각자 다른 내용이 씌여 있는 책의 한 장 한 장, 또는 서로 다른 색깔의 색지와 동일시하고 있다. 수만장의 종이가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자기 역사는 어느덧 큰 파도가 되어 캔바스 위를 굽이친다. 작가에게 캔바스는 사회적인 공간으로서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이지만 이를 피하지 않고 직접 부딪히는데, 일상 속에 산재된 근원적 고통을 직면하고 천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종이를 쌓아 얹는 행위는 깨어날 수 없는 악몽에서 자기중심적 의식을 파괴당하고 새롭게 자신을 돌아보고 영적 각성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자, 미완의 인간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과정이기도하다. 그것으로부터 일상속의 사랑과 예술의 당위성을 건져 올리는 이 반복적인 행위는 물론 자신의 지극히 제한된 경험으로부터 시작 되었지만 자기가 이루어낸 삶의 의미가 언젠가는 사람들로부터 보편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쫓는 것이리라. 에밀리 디킨슨의 시처럼 말이다. 각자는 그 어려운 이상을 / 스스로 성취해야 한다. / 침묵하는 삶의 / 고독한 용기를 발휘하여. // 노력이 유일한 조건이다. / 스스로와의 인내, / 맞서는 세력과의 인내 / 그리고 온전한 믿음.

최송화_유쾌한 베이컨1_혼합재료_15F_2005
최송화_유쾌한 베이컨2-15F_혼합재료_2005
최송화_두통_혼합재료_40F_2005

이러한 과정 끝에 작가는 이 모든 행동들은 결국 이기주의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여기서의 이기주의는 자기밖에 모르는 독선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즐거움이나 자기만족 같은 심리적인 요인들로 인해서 말 그대로 자신을 이롭게 하는(利己)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하는데, 이것은 다시 말해 고통으로 가득찬 심연의 바다에서 오히려 그 바닥을 치고 진주를 주워 올라오는 것과 같다. 작가는 긍정적인 이기적 본성을 통해서 자기만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가능성에 도달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자신을 지워서 비워나가는 삶을 시도하고 있다. 들뢰즈가 베이컨이 캔버스에서 얼굴 등을 지움으로서 탈영토화를 시도하여 하나의 정체성에 함몰하지 않고 끝없이 제 존재를 다양화하는 유목적 주체가 형성된다고 했듯이. ●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그 순수한 가능성이란 애초부터 없는 것일 수도 있다. ■ 심혜화

Vol.20050428c | 최송화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