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기억에 관한 해부도

이윤태 개인展   2005_0513 ▶︎ 2005_0524

이윤태_무제_레진, 실리콘호스, 혼합매체_15×40×3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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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513_금요일_05:00pm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이런 시험이 있다 ● 숲을 돌며 그 속에 분포해 있는 나뭇잎을 채집한다. 채집 할 당시 그 자리에서 나뭇잎과 나무를 연관시켜 모든 정보를 기록하고 기억한다. 그리고 돌아와 나뭇잎의 표본을 만들고 이름과 종류, 특성, 나이 등을 기록하여 채집통에 넣는다. 어느 날 나뭇잎만 가득한 상자를 하나씩 받고서 무작위로 꺼낸 나뭇잎을 보고 그 나무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시험이다. 나뭇잎 하나로 나무의 모든 정보와 상태를 기록하는 것은 단시간의 암기를 위한 연상법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수종(樹種)을 파악하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멀리서 나무의 태(態)만 보아도 모든 것을 알아 낼 수 있다. ● 나뭇잎으로 나무를 파악한다 ○ -부분의 합은 전체와 일치하지 않는다- 나뭇잎은 전체의 부분이다. 나뭇잎이 그 나무를 대표한다고 고집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전체에 대한 부분이며 모종의 힌트를 지니고 있음은 사실이다. 나무 가지를 접목 시켜 나무를 재생시키는 방법이나 세포 하나로 생명을 복제하는 경우, 부분을 전체에 대한 대표로 주목할 수 있겠다. 우리는 나무를 보고, 숲을 보는 법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나뭇잎에서 출발해 나무를 생각하고 나아가 숲을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경험이 없다.

이윤태_무제_레진, 철파이프, 혼합매체_30×35×8cm_2005

증상으로 병을 기억한다 ● 우리가 아는 병은 그것이 외상이든, 내상이든 정확하거나 똑같은 모양이 없다. 외상의 경우는 보여지는 실체에 대해서 비슷한 형상을 갖추고 있지만 각각의 경우가 다를 수 있고 내상의 경우는 (정신적인 것까지) 구체적인 형상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증상으로 표현 될 뿐이다. 증상의 가장 빠른 표출은 눈동자와 피부이다. 피부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내상이든 외상이든 가시적이며 직접적이다. 애매 모호한 부분적 살덩어리와 부분적인 피부의 증상들은 병을 기억하게 하고 몸을 기억 하게 한다. 인체를 샅샅이 해부한다고 해서 모든 증상의 형태를 찾아낼 수 없다. 그것은 유기적인 작용이고 그곳은 낱개 물질의 구성 일뿐이다. 증상의 실체는 몸에 있는 낱개의 물질에서 찾을 수 없으며 정신에 대한 것은 더욱 어렵다. 우리는 알고자하는 부분만을 취함으로써 그 전체를 기억해 내야 하는 것이다. ● 나무나 병의 경우같이 나무만 보고 숲을 찾고, 증상만 보고 병을 찾는 것은 실패의 확률이 높다. 나무가 모여서 숲 이상의 어떤 것이거나, 증상이 모여서 병 이상의 어떤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애초에 없었거나 찾을 수 없는 환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분을 보고 전체를 기억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 부분. 증상. 그림자. 흔적... ○ 이제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이것과 저것이 부딪혀 깨지고 어긋나기를 반복해 본다. 부분은 계속 왜곡되고, 증상은 나타났다 사라진다 . 그림자는 실체와 다르고, 흔적은 미미하다. 모든 것은 어긋나있고, 불완전하고, 애매하고, 복잡하다. 그곳에서부터 상상이 시작되고 정확한 기억을 위한 진자운동이 시작된다. ● 너무 빠르고, 많은 ○ 기억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귀찮고, 시간을 보내야 하고, 실패하기 쉽다. 알고자 하는 것은 기억보다 너무나 쉽게, 빠르게,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또렷이 기억하는, 진지하게 기억되는 어떤 것이 있을까. 기억은 과거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의 정확한 재현은 과거의 자료에서 얼마나 많이 조합하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정확한가에 있다. 오늘날의 재현은 정확함에 있어 부분의 합, 그 이상의 것으로 가득 하다. 정확하게 재현 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재현은 너무나 빠르게, 쉽게, 많이 지나다닌다. 그래서 더욱 부정확하다. 이제 기억의 창고는 점점 빈약해지고 모든 것은 껍질에서 끝난다. 어릴 적부터 보아오던 사물들의 친밀감은 점점 희박해 진다. 살아있는 코끼리를 한번 본 것만으로도 그 실체와 느낌까지 재현해내는 어린아이의 기억을 우리는 쫓아가지 못한다. 하물며 그 코끼리를 보아 뱀의 뱃속에 숨기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윤태_무제_레진, 혼합매체_45×40×20cm_2005

remembrance ● "사물을 생각해내는, 또는 그것을 기억해 두는 것." ○ 어떤 병에 대해 치료법이 많다는 것은 그 병에 대한 이해가 확실치 않다는 반증이다. 마찬가지로 사물을 파악하는데 여러 가지 표현수단이 있다는 것은 사물의 지각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않다는 말이다. 알고자 하는 사물의 정확한 기억-- 그것은 있거나 혹은 없거나가 아니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저런 작업을 행하는 것은 있음의 순간과 없음의 순간을 무수히 반복해서 조우(遭遇)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미리 알 수 없으며 현재의 디딤돌인 과거의 기억이나 자료에서 출발한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현재에서 과거로 밀려 나가는 기억들은 언제나 과거이며,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진동하고있다. ● 우리는 과거의 기억, 자료로부터 한계를 인식할 때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다. 만일 이런 한계 지우기가 없다면 존재는 불확실하고 혼란하게 될 것이다. ● 그것은 언제나 비껴 가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것은 일대일 대응에서 이대일, 삼대일 대응 같은 형식으로 그물코를 늘려 가게된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그것은 불확실한 어떤 것으로 표현되고 완전한 이해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한계의 인식은 그 폭을 더하여 늘어가게 되고 그것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의 확률은 높아지게 된다. ● 전체에 대한 부분의 인식은 한계 지우기와 그물코를 늘리는 동시 작업이다. 부분을 인식함과 동시에 한계의 폭을 넓히는 것은 그것의 포위망이 점점 넓어진다는 것이다. ● 사물에 대한 지각은 모든 이해의 기초이다. ■ 이윤태

Vol.20050511c | 이윤태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