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발소에 간다

김지연 사진展   2005_0511 ▶︎ 2005_0602

김지연_귀빈이발소_흑백인화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지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511_수요일_06:00pm_갤러리 룩스 초대일시_2005_0527_금요일_06:00pm_옵스 갤러리

2005_0511 ▶︎ 2005_0524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www.gallerylux.net

2005_0527 ▶︎ 2005_0602 옵스 갤러리 광주 동부 황금동 78-9 Tel. 062_228_2446  

베허 부부와 이발소 작업 ● 사진 공부를 하던 어느 날 베허부부의 사진(프레임 하우스, 사이로, 물탱크 등)을 보고 단번에 질리고 말았다. 사진으로서 예술성이 어떻고 하는 문제는 내 추론으로는 버거운 일이었고 우선 그 엄격성, 단호함(모듈화에 대한), 단순함, 획일성 그리고 긴 시간과 많은 장소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으로 지루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나는 절대로 이런 사진을 찍을 생각도 흥미도 없었다. 베허부부 사진이 미니멀리즘과 개념예술의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아우구스트 잔더의 유형학적 방법에 영향을 받은 사진이라고 하지만, 나는 별로 주목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보다 개인의 내면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김지연_대원이용원_흑백인화_2005
김지연_등대이발관_흑백인화_2005

일전의 작업인 정미소 사진을 찍고 다니면서도 이것은 단순한 내 추억의 일기장쯤 되는 일이며 대상성에서 오는 친밀감이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베허부부의 사진 개념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허긴 얼마 전 어느 선생께서 당신의 사진은 절대로 그들 사진과 같아질래야 같아 질 수 없다고 한 이야기를 상기한다. 아마도 그 의미는 독일의 전통적 사진의 뿌리인 신즉물주의 즉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내면세계의 표출을 거부하고 객관적이고 정밀한 사진의 형태를 일러 이야기 한 것이라고 본다. 기죽을 일이다. 나는 단지 오랜 추억의 조각들을 머리 속에 넣어두고 발 품을 팔고 다니는 게 능사라고 여기는, 체계적 이론도 별로 없고 데이터도 별로 과학적이지 못하고 철학은 지나온 삶의 희로애락을 밑천으로 여기는, 거기다 각지를 돌아다니다 보니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선생을 존경하게 됐다는 철없는(?) 감상주의자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한 이발소, 한 이발사와 정면으로 마주서서 이들의 직업, 이들의 인생을 직시하고자 했다. 사라지는 것을 기억한다는 일이 이미 감상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나는 그 감상을 무시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위에 떠있는 찌꺼기인 거품을 걷어내고 정제된 감정을 껴안고 싶다.

김지연_명광이용원_흑백인화_2005
김지연_신설이용원_흑백인화_2005

이발사가 싫어하는 사진가 ● 어떤 사람들은 나를 '추억을 찍는 사진가'라고 이야기한다. 시대에 뒤쳐진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감정을 사진을 빌어서 말하는 사람이라 여긴다. 정미소라던지 이발소 등. 물론 여기에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것을 나 혼자 생각하고 있으면 향수지만 모두와 함께 공유하면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허지만 정작 이 일에 종사한 당사자들로서는 기록 따위가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40년을 넘게 이 짓을 했지만 남은 게 뭐요? 명예도 없고 돈도 못 벌고… 그나마 미용업에 밀려 이제는 사라지게 생겼는데 뭐가 자랑이라고 사진을 찍겠소."이렇게 퇴짜를 맞기가 일쑤였다. 이런 말을 들으면 딱히 대꾸를 한다거나 위로를 할 말이 없다. "사는 게 다 그렇지요. 이 나이만큼 살아보니까 명예도 돈도 그렇게 대단한 것은 못됩디다. 이 직업으로 자식들 키우고 먹고살았으면 된 거지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답을 할 때도 있고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 말도 못하고 쫓겨 나올 때도 있다. 한 때 도시 일부 이발소에서의 퇴폐영업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이것은 본래의 직업에서 이탈된 영업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어쩌면 이발소의 몰락을 앞당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구시대 사람이라서 요즘 젊은 사람들과는 다른 여러 가지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어린 시절에 이발소에 드나들던 기억이다. 그때 아이들은 여자 남자 구별 없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턱없이 작은 앉은 키에 걸 맞는 의자가 없어 의자 양쪽 팔걸이 위에다 판자를 걸쳐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머리를 잘랐다. 그 시절은 명절이면 제일 붐비는 곳으로 목욕탕, 이발소를 먼저 꼽을 수 있었다. ● 세상의 이치는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 인생도 직업도 자연도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우주의 섭리가 있기 마련이다. 주어진 역할이 길거나 짧건 간에 사라져야하는 때가 있을 터. 지는 해를 끌어올릴 지남철은 없다. 지는 해는 가게 두고 내일 또 떠오르는 해를 기다려야 한다. 비록 내가 그 해를 맞이할 수 없다고 해도 그건 이미 내 소관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명예도 없고 돈도 별로 못 버는 일에 일생을 바쳐온 한 사람 한 사람 직업인을 기억하는 일, 마을 한 모퉁이에서 동네 사람들의 머리 모양새를 내주고 응접실 역할까지 해온 시골 이발소를 기록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간혹 이발소 주인은 반문한다. 당신 혼자 이 사진을 찍고 다닌다고 해서 역사에 기록되는 것도 아닐텐데 뭐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하고 다니느냐고. 그렇다! 역사에 남을 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을 함께 공유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김지연_아랫이용원_흑백인화_2005
김지연_의신이발관_흑백인화_2005

여기 서 있는 이발사 ● 대부분의 이발사분들은 흑백사진을 싫어했다. 그 이유는 우선 이미지가 화려하지 않고 칙칙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보다는 아마도 흑백사진이 과거형으로 보인다는 느낌때문인 것 같다. 아직은 현재인 상황을 과거형으로 표기하려는 사진가의 의표에 대한 저항인 셈 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 제시한 작업들을 현재형으로 찍었다고 밝히고 싶다. ■ 김지연

Vol.20050514b | 김지연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