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암 갤러리 개관 3주년 기념

한국 현대미술 도큐멘타 I展   2005_0504 ▶︎ 2005_0522

한국 현대미술 도큐멘타 I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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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504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_김구림_김봉태_김태호_김형대_류희영_서승원_석난희_안병석 오수환_유병훈_유인수_이강소_이두식_이정지_이태현_장화진 최명영_최창홍_하동철_한기주_한만영_한영섭_한운성_함섭

노암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02_720_2235 noamgallery.com

『한국 현대미술 도큐멘타 I』展은 모더니즘 회화가 한국 미술계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운동을 시도해온 중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기획되었다. 우리나라 미술계에 서구 아방가르드적인 관심이 유입된 시기는 50년대 후반에 나타난 앵포르멜 미술 이후로 볼 수 있다. 이후 『無동인』 『오리진』 『논꼴』 『제4집단』 등의 그룹들이 보여준 기하학적 추상, 추상표현주의, 오브제 아트, 옵 아트, 해프닝, 행위예술 등은 예술에 대한 막연했던 인식에 새로운 반성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1975년, 일본의 동경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 白』展을 통해서 한국 모더니즘의 중요한 양식 중 하나인 '단색조 회화'가 정립되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앞서 나열한 다양한 운동들과 예술 현상들을 이끌어낸 '예술가들'이라 할 수 있다.

김구림_캔버스에 디지털프린트, 아크릴채색_228×146cm_2003
김봉태_WINDOW SERIES2_알루미늄에 폴리우레탄페인트_122×122cm_2005
김태호_內在律_캔버스에 아크릴_162.5×130.8cm_2004
김형대_후광_캔버스에아크릴_145×145cm_2004
류희영_작품 2004-H_캔버스에 유채_145×145cm_2004
서승원_동시성_캔버스에아크릴_162×130cm_2004
석난희_자연_캔버스에유채_170×200cm_2005

모더니즘 회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재현(representation)'을 거부하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회화를 "가시적 세계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창"으로 여긴 알베르티의 관점은 당연히 무너졌고, 외부세계를 지시하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이러한 경향으로부터 나타난 다양한 표현 방법들이 모더니즘 또는 그 이후의 예술을 규정하게 한다. 자신의 고유한 화면을 분할하면서 건축적이 된다거나, 화가의 몸이 직접 개입하면서 화폭의 끝에서 시작해서 다른 끝까지 동일한 강도의 선을 반복해서 긋는다. 균일하게 채워진 화폭을 지우거나, 物性을 표현하기 위해서 재료만으로 채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대상을 확대하거나 축소함으로써 대상 지시적인 성격을 벗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방법을 통해서 현대 회화는 삽화적인 성질에서 벗어나 자기지시성의 존재론적 위상을 정립했다.

안병석_바람결 강아지풀_캔버스에유채_91×72.7cm_2004
오수환_변화_캔버스에유채_194×227cm_2003
유병훈_숲 바람 默_캔버스에아크릴_145.5×227cm_2004
유인수_일상적 이미지_캔버스에 유채_194x130cm_2004
이강소_from an island_캔버스에 유채_162×162cm
이두식_축제_캔버스에 아크릴_50호_2005

현재 예술계에는 다양한 내용들이 허용되고 있다. 특히 사회적인 현상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그 표현방식은 자유롭다. 사진이나 미디어가 재료로 사용되고, 합성을 통한 변형도 있으나, 중요한 점은 재현의 방법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모더니즘 회화가 거부한 원근법은 선과 색으로 가득찬 중세의 이차원적 평면을 거부하려고 고안된 것이다. 그렇다고 모더니즘 회화가 되찾은 평면이 중세의 평면과 같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모더니즘 회화는 원근법에 의해서 상실되었던 고른 평면의 내재된 깊이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회화에서 색으로 가득 채워진 고른 평면에 또다시 칠해지고, 그어지고, 지워지면서 형상(figure)들은 자유롭게 솟아나기도 하고 빨려 들어가기도 한다. 모더니즘이 되찾은 평면에서 형상들은 실존하게 된 것이다. 끌레(P. Klee)의 교의(敎義)처럼 "예술은 가시적인 것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이러한 생각은 확실히 지금의 시대정신과 맞물려있다. 모더니즘의 평면이 중세의 평면과 다르듯이 원근법과 함께 다시 나타난 재현적 방식은 새로운 재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정지_동그라미54_캔버스에 유채_193×134cm_2005
이태현_SPACE 25102 PYRAMID_캔버스에 아크릴, 유채_162.2×130.3cm_2005
장화진_핸들이 있는 문Ⅱ_캔버스에라인테이프, 브론즈핸들_100×194cm_2004
최명영_평면조건 21-105_캔버스에아크릴_162×130cm_2004
최창홍_요철 Drawing 005-4_한지죽을 솔로 두드리는 기법_지름120cm_2005
하동철_Light 04-12_캔버스에 아크릴_180×180cm_2004

모더니즘 회화를 단지 이전 시대의 산물로만 여긴다면 이번전시의 제목에 쓰인 '현대(contemporary)'라는 단어는 모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모더니즘은 아직도 유효하다. 왜냐하면 현재 실험되고 있는 우리네 회화들은 한국 모더니즘의 모태에 아직 들어오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 나타난 재현적 방식들은 19세기의 사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회화작품으로 구성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미술(fine art)'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를 덧붙여야 하겠다. '미술'이라는 용어는 20세기 초 메이지 시대의 일본으로부터 수용된 것이며, 이 단어는 1747년, 바뙤(C. Batteux)가 'beaux'와 'art'를 결합시켜서 사용한 'beaux-art' 즉 fine art에 대한 번역어이다. 이 시기에 'art'는 이미 정신적인 활동에 속해있었다. 하지만 예술은 필연적으로 물질적이기 때문에 정신적이라는 구분은 이 시기 조차도 범주적 구분에 불과한 듯 하다. 현대의 사유는 정신과 물질의 구분을 본래의 애매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사실이 그렇듯 정신과 물질은 경계 없이 서로 영향을 주며 넘나든다. 정신적인 활동은 물질로 나타나고 그러한 물질들은 동시에 정신에 영향을 준다. 모더니즘 회화는 이러한 운동을 엄격하게 고수했다. 일본의 미술사학자 기타자와 노리아키는 "미술은 바로 오늘날의 예술을 뜻하는 의미로서 그 역사의 문을 열었다"고 말한다. 모더니즘 회화를 두고 구태여 '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기주_Work-間 2004_한지캐스팅_167×1002cm_2004
한만영_Reproduction of thim-Modigliani_박스에 아크릴릭, 와이어_4×129.7 ×6.8cm_2004
한영섭_관계 5005_한지에 탁본, 꼴라쥬_131×207cm_2005
한운성_피망이 있는 정물_캔버스 유채_100×300cm_2005
함섭_한낮의 꿈 4051_한국전통한지_177×177cm_2004

『한국 현대미술의 도큐멘타 I』展은 현재 한국 미술계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모더니즘 운동의 맥을 확인하고자 하는 전시다. 도래할 새로운 예술을 위하여… ■ 박순영

Vol.20050516a | 한국 현대미술 도큐멘타 I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