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티쉬와 15인의 도둑

10미터 인연들-골목그림-괴기스러운-공공-길-일상-달콤한 환타지- 아파트관광-조립식-벽-숨은꿈-물고기-히키코모리-미끄덩-뿌리찾기展   2005_0518 ▶︎ 2005_0525

신지선_아파트 투어 퍼포먼스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모란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518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성은_김옥순_김소연_노현정_문수성_박수진_박정원_신지선 신영미_오상열_오진선_우성종_전은숙_최수임_하주영

책임기획_오진선

모란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 백상빌딩 B1 Tel. 02_737_0057 www.moranmuseum.org/gallery.html

골목을 따라 걸어가는데 10미터 거리쯤 떨어진 저편으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그림이 망막에 펼쳐지는 거야. 어쩌면 저들이 숙명의 인연이 아닐까. 순간 서 있는 이곳이 괴기스러운 공공의 무대로 느껴지고 말았지. 고개를 들어 일상에서 벗어난 달콤한 환타지를 꿈꾸는데, 귓속에서 아파트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조립식 벽 너머로 숨은 꿈의 소리가 말이야. 물고기야! 너는 알고 있었구나. 히키코모리가 된 물고기를 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 미끄러지듯이. 뿌리가 있기는 한거니?(피식, 웃더니) 풍덩!

문수성_사은대잔치(동성아파트)_디지털 프린트_59.4×84.1cm_2005
오진선_아스팔트 연못_가변설치_퍼포먼스_2005

A Research Organization_패스티쉬와 15인의 도둑 ● 문화 인류학자 에드워드 티 홀(Edward T. Hall)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구도 속에서 자신을 방어할 보루로 '친밀 공간'이라 불리는 절대공간을 가졌다고 한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재질의 둥근 공 속 같은 이 공간은 개인적 기준으로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 친밀함을 인정한 대상 즉,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 감성적으로 연결 되어 있는 사람 만을 허락한다. 즉, 어떤 종류의 위해도 없을 것이라 판단 받은 대상만이 들어올 수 있는 개념적 공간인 것이다. 물리적으로 인간의 시야 둘레 1~2m의 이 공간은 따라서,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침범 당했을 때는 방어로 보이지만 사실은 공격 바로 전 단계 자세를 취하게 되는, 무형의 경계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 자기세계의 확실한 구획만이 진정한 예술가의 첩경이라는 모더니즘 신화는 허물어진지 제법 되었다. 그렇다면, 이 15인의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과거, 근대적 예술가에게 특권처럼 부여되었던 '새로움 창조의 권한' 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무엇일까. 어찌 보면 서로를 단순 복제하는 듯한 그들의 시도는 새롭지 못하다. 주지하다시피 패스티쉬(pastiche)가 미덕인 Post-Modern한 동시대의 논리는 창작의 개념과 주체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시절 이미 너무나 수고했다. 다행히 이 15인의 작가는 단순한 패스티쉬의 연장선에서 자신들을 소모시키지 않는다. 이들이 생산하는 것은 잉여생산물로서 서로의 껍질을 복제하는 의미 없는 행동들은 분명 아니다. 사실, 이들의 시도는 일종의 학습태도로 이해 될 수 있는 명민한 '연구-Study'에 가깝다. 그들 각자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친밀한 공간을 허락하고 그 대신 나머지 14명의 친밀 공간을 마음 것 유영할 수 있는 Free ticket을 얻었다.

김소연_골목그림_시멘트패널위 유채_124×182cm_2005_부분
박정원_땅따먹기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97×145cm_2004

그들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생산된 가치들을 집단 안에서 교환한다. 이 일종의 연구기관 (A Research Organization)으로서의 가상의 공간에서, 예술가의 이름으로부터 연유하는 모든 것은 '창조적이고 유일해야한다'는 명제는 그들에겐 최우선으로 고려해야할 당위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한 학습태도는 미술의 역사일반 속에서 습관처럼 반복 되어온 것이다. 이것은 피카소와 마티스를 비롯해 과거 많은 수의 창작자가 그러했듯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장하는 한 가지 방법론으로 동시대나 전시대의 대가들로부터 그 작가나 작품이 가진 의미를 되짚어 새로운 방법과 형식으로 재 맥락화 해온 것과 같은 연장선에 있다. 그들이 서로에게서 차용하는 이미지는 가치평가가 끝난 대가의 기호학적 Symbol로서의 도상, 파편들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자의 세계에 대한 존경과 호기심의 표현이다. 그들은 서로의 작품세계에서 자기 세계의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거름을 찾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론은 오로지 서로를 열심히 찬미 하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의 유희 속에서 각자가 생산한 이미지들은 개인에게 복속되기를 거부하고 다른 작가의 세계에서 '가변의 고리'로 등장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바는 자가당착적인 사물관/세계관이 아니라 숨겨진 자신의 일면을 깨닫는 풍크툼(Punctum)의 순간일 것이다.

하주영_public line_6mm영상_150초_2005
김성은_The way_컬러인화_가변크기_2005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현재를 반추해보는 기회를 통해 그들이 감각하는 자기세대의 동질성이란 어떤 의미 작용을 만들어 내는가, 서로 얼마나 유사하고 얼마나 다른가를 기대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10미터 인연들-골목그림-괴기스러운-공공-길-일상-달콤한 환타지-아파트관광-조립식-벽-숨은꿈-물고기-히키코모리-미끄덩-뿌리찾기' 이라는 다소 번잡스런 제목 덕분에 오히려 동시대의 젊은 예술가로서의 상호 유사성이 발견 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그 덕분에 선명하게 대비되는 지점 또한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절대 공간을 기꺼이 내어놓고 서로가 피 실험자가 되어 자신이 예술가로서 어떠한 재료인가를 펼쳐 보인다. 그 결과가 얼마나 유사하며 또 얼마나 다를지를 기대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우리의 현재(Present)는 일종의 역사적 유기체이다. 과거는 현재의 이름으로 미래가 된다. Modern의 공간에서는 새로운 기술의 발견이 시·공간의 개념을 확장 시켰으나 이제 우리는 그들을 통해 새삼 알게 된다. 진정한 개념의 확장은 상상력과 상상력을 실행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 안현숙

노현정_종이컵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93×72.7cm_2005
오상렬_일상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16.7×72.7cm_2005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같아지기는 힘겹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화두로 나오게 된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일것이다. 우리는 주변곳곳에서 단체를 통하여 단체, 혹은 개인의 목적을 이루어 내려는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웃사이더의 지존구역인 미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미술계에서 끊임없이 맥을 이어오고 있는 동문전이 그렇고 교류전이 그렇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는 낯간지러운 행사들이 유지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결속력에 집착하는 원인을 찾자면, 유교사상이외에도 복합적이고 다양하게 얽혀있어서 쉽사리 파헤쳐내기는 힘들겠지만, 결과적으로나마 내용, 또는 형식에 어떠한 가치변화가 있었는지,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매년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교류전에서 교류가 이루어 졌는가. 공통의 꿈은 이루어졌는가. 진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같은 세대라고 여기고, 이 시대가 요구하며 갈증을 느끼는 중요한 컨텍스트를 찾고자, 나아가 적당한 라인을 형성하고자, 그야말로 부푼 꿈을 안고 있지 않았나. 나는 이러한 부푼 꿈으로 그려지는 전시, 기획을 거품전시, 거품기획이라 정의해 본다. 거품기획에 대한 의구심이 들면서 기획에 관하여 알고자 몇 명의 기획자들과 만남을 갖게 되었다. 미술에 갇혀버린 거품기획자들의 속내란 애인을 꼬시는 선수씨 같았다. 길거리에서 상행위를 하는 장사꾼의 지조가 섞인 목소리처럼. 전시를 만드는 기획자, 작가에게 있어서 지조는 무엇일까. 지조는 필요한가. 현실의 꿈을 꾸기도 전에 꿈을 위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짱 박혀온 미술교육의 강박일까. 전시 기회가 간절한 무명씨에게 고마운 제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시점에서 오늘날 대부분의 미술이 컨텍스트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점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작가의 진정성은 어디로 숨은 것일까.

최수임_동시발생_130×90X50cm_혼합재료_2004
박수진_10m인연들_디지털 프린트_2005

작품이나 작가의 어떠한 성향으로도 추출되지 않은, 학연에 의해 모여진 작가들의 작품과 글에 통일된, 또는 새로운 컨텍스트를 입힌다는 것은 곤욕이 아닐수 없다. 게다가 뻥을 친다고 해도 들킬 뻥이라 재미가 없다. '10미터 인연들-골목그림-괴기스러운-공공-길-일상-달콤한 환타지-아파트관광-조립식-벽-숨은꿈-물고기-히키코모리-미끄덩-뿌리찾기'라는 제목은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텍스트화 된 작가들의 작품의 아이콘들 사이에 다리만 걸쳐놓은 것이다. 곧, 서로의 작업에 불완전한 말걸기를 시도한다. 그들은 다른 전시참여자의 작품 속 그 무엇인가를 엿보고 타인의 소재를 제약없이 인용하기도 한다. 그러한 차용과 모방은 작가 개인들이 지닌 작업뿌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다른 생명체의 가지를 이식하는 접붙히기처럼 예상치 못한 열매를 맺게 하기도 하고, 허물어지기도 할 것이다. ● 참여작가15인은 맞춤식 전시와 굳어진 미술현상에 거리를 두면서, 그들 내부의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기획을 맡은 본인 역시 커뮤니티의 최소한의 통로를 만드는 일 이외에, 거품기획의 위상을 허물고 참여를 통한 열린 기획으로 가기를 소망했다. 전시공간에는 서로에게 스며드는 작품의 진행과정, 만남의 기록물과, 각자의 꿈을 거세당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꿈속을 여행할 수 있는 자유로운 지형도가 그려지게 된다. 이로서 그들은 서로에게 현실적이며, 이상적인 꿈이 된다. 비몽사몽. ■ 오진선

Vol.20050521c | 10미터 인연들-골목그림-괴기스러운-공공-길-일상-달콤한 환타지-아파트관광-조립식-벽-숨은꿈-물고기-히키코모리-미끄덩-뿌리찾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