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춤, 조각의 만남-양재건 조각展   2005_0518 ▶︎ 2005_0531

양재건_그녀의 궁전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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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시_2005_0518_수요일_05:00pm 2005_0521_토요일_04:00pm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www.artside.net

한 소녀가 궁전 앞에서 머뭇거린다. 그토록 고대하던 궁전이었건만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가? 궁전은 이 소녀에게 축복인가 아니면 다가 올 시련을 알리는 서막인가? 양재건의 2005년도 전시는 거대한 궁전 앞에 선 소녀의 머뭇거림으로 시작된다. 과연 궁전 안에서 펼쳐질 세계는 어떤 것이기에…. ● "나는 궁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부제와 함께 현대무용가 조성희씨의 퍼포먼스가 함께하게 될 조각가 양재건의 개인전이 아트사이드에서 열린다. 눈, 코, 입을 잘라낸 얼굴을 통해 현대인의 익명성과 소외, 단절, 몰개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던 양재건이 이번에는 한 여성 그리고 한 인간의 삶을 결혼-현실-기억-잉태의 순환구조로 풀어내고 있다.

양재건_연-생명_대리석_2005

1층 전시장 중앙에 3미터 60센티 높이의 번쩍이는 조형물이 놓여 있다. 거울처럼 곱게 표면을 갈고 닦은 흔적이 역력한 이 거대한 구조물이 바로 소녀가 걸어 들어가고자 하는 궁전의 모습이다. 입구가 감춰진 동화 속 얼음 궁전처럼 들어가는 입구는 찾을 수 없고 표면에 비친 청동으로 빚은 소녀의 나체만이 보인다. 이름 모를 꽃으로 만든 화관을 머리에 곱게 쓰고 있는 소녀의 손에는 장미 한 송이가 들여 있다. 그러나 수줍어할 소녀의 얼굴 표정을 읽을 수는 없다. 조각가 양재건의 이전 작업과 마찬가지로 소녀의 얼굴은 날카롭게 절단되어 정체를 알 수 없다. 오직 소녀의 몸짓만이 단서로 남겨진다. 얼굴을 잃어 버린 소녀와 궁전의 만남. 작가는 이를 '결혼'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소녀를 반겨줄 소년은 없다. 이 같은 결핍 구조는 한 특정인이 아닌 여성 전체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내 인생 전체를 담아내고자 했던 양재건의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양재건_기억_석고_85×45×65cm_2005

참선에 들어간 미동 없는 노승의 얼굴을 보았는가? 지극한 고요함 속에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는 치열한 고뇌를 넘어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니 그 고요함이란 인간의 오감 영역 밖에 있음이 마땅하다. 일곱 개의 반구로 구성된 양재건의 작품 「연(連)-생명」 역시 무척 고요하다. 물이 가득 찬 그릇에 작은 찰랑임도 없는 형상을 하고 있다. 간혹 보이는 파동 역시 시간이 순간 정지된 것처럼 소리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양재건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이 고요함 뒤에 숨어 있는 현실이다. 각기 다른 일 곱 개의 반구 모양 그릇은 지나쳐서 넘쳐서도 부족해서 비어서도 안 되는 인간사의 현실과 그 속에서 지켜나가야 할 균형, 중용, 인내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옛 추억을 회상하는 '기억'으로 이어진다.

양재건_둥지_대리석_25×20×30cm_2004

거울을 통해 바라본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양재건의 작품 「기억」을 바라보자. 거울을 통해 바라본 세계란 반드시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이다. 전부를 담아 내지 못하지만 비교적 정직하게 '나'를 포착하는 도구를 우리는 거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양재건의 작품 「기억」 속에 등장하는 거울 속 인체는 얼굴, 팔, 다리가 사라져 버리고 몸통만이 남아있다. 그나마 남아 손짓 발짓하던 인물이 한 갓 토르소로 변한 것이다. 정지된 물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것들이 현실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내'가 사라진 기억만을 남긴 것이다. 그럼 이제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가? 양재건은 생명의 '잉태'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 "나 다시 돌아갈래!" 라는 절규로 시작된 모 영화처럼 인간의 귀소본능은 필사적이다. 처음 태어난 엄마 품에 대한 기억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수했던 순간을 다시 경험할 수는 있다. 양재건은 새로운 생명의 '잉태'가 문제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작은 새싹이 피어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작품 「둥지」는 한 아이가 태어나고 있는 기운을 표현한다. 작가는 작품 「둥지」를 통해 결혼-현실-기억-잉태의 순환구조의 종지부를 찍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순환구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모든 것은 원점에서 시작해 원점으로 되돌아 간다. ■ 이대형

Vol.20050522b | 양재건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