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_Conversation

국민대학교 박물관 현대작가 초대展Ⅰ   2005_0530 ▶︎ 2005_0630

안중식_유물-탁족도_26.2×20.8cm_조선후기 권여현_작품-탁족도_사진 위에 아크릴 채색_69×66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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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530_월요일_05:00pm

참여작가 권여현_문형민_서은애_서희화_신장식_이동재_최지만_황두진

국민대학교 박물관 (성곡 도서관 5층) 서울 성북구 정릉동 861-1번지 Tel. 02_910_4210~2 museum.kookmin.ac.kr

박물관에서 만나는 유쾌한 도발 ● 귀중한 물건을 수집, 보존하는 박물관의 역사는 죽은 자의 시신과 함께 금은보화를 함께 껴묻었던 고대사회의 군주나 정복자 등의 무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오늘날 통용되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지칭하는 용어의 어원은 기원전 300년경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학예의 여신들인 뮤즈에게 바치기 위해 건설한 무제이온(Museion)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처럼 무덤, 성소(聖所), 사원 등은 모두 귀중하고 의미 있는 물건의 보존을 위해 주력했다는 점에서 박물관의 기능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민들이 신전에 바쳤던 헌납품들을 보관, 전시하던 장소인 오피스토도무스(Opistodomus)나 중세시대 수도원의 도서관이나 성물(聖物) 보관소 역시 '보물창고'로서 박물관의 성격에 부응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박물관에 대한 다양한 은유 중에서 '예술품이 가는 최후의 안식처', '혈통적 유사성을 지닌 박물(博物)이 묻히는 가족묘지' 등은 모두 수집, 보존이란 박물관의 전통적 기능에 대한 풍자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16세기에 바사리(Giorgio Vasari)란 인문주의자가 메디치 가문의 요청에 따라 이 가문이 소장하고 있던 물건들을 계통, 계열별로 분류하여 전시한 우피치 갤러리아(Uffizi Galleria)의 개관은 값비싼 물건을 독점적으로 소유, 보존하기 위해 격리했던 것에서 '전시'란 새로운 방식의 도입으로 발전한 것이긴 했으나 여전히 그 물건들은 권력을 지닌 소수의 사유재산에 불과했고 따라서 그것의 접근은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유물-조보_1879
문형민_작품-Untitled 31_자동차용 페인트_50×50cm_2005

사실 박물관이란 미술품을 수집, 보존, 전시하는 미술관을 비롯하여 동·식물원, 수족관은 물론 역사, 기술, 과학, 군사, 천문학적으로 가치 있는 자료를 다루는 각종 기념관까지 포함하는 넓은 용어이지만 이 글에서는 고고미술사적 자료를 취급하는 박물관으로 그 범위를 제한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시대와 소장품의 성격을 분류의 근거로 하여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나누는데 이 글에서는 그런 구분과 관계없이 고고·역사적,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소장품을 수집, 보존, 전시, 조사·연구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국한하되 굳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란 용어에 얽매이지 않고 포괄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 어쨌든 근대적인 의미에서 공공적 성격을 띤 박물관의 등장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고조된 시민정신과 민족주의(nationalism)에 부응하며 설립된 중앙박물관(Musee Centrale des Art)의 개관과 함께 이루어졌다. 당시 혁명정부는 혁명이념의 실천이란 차원에서 왕족과 귀족, 교회 등이 소유하고 있던 귀중한 물건들을 몰수하여 루브르궁에 모아놓고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방침에 따라 이것들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이로서 예술품은 개인이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사유재산이 아니라 문화유산(patrimoine)이란 개념이 정초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박물관은 그 출발부터 이미 당대의 비평가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832년부터 미술비평을 쓰기 시작한 테오필 토레(Theophile Thore)는 이 새로운 시설에 대해 '명작의 공동묘지', '죽은 뒤의 피난처'란 독설을 퍼부었고, 여기서 열리는 전시에 대해서도 '생기 없는 바자회'라고 공격했다. 심지어 20세기로 접어들자마자 미래주의자들은 괴질에 걸려 악취를 풍기는 박물관에 대한 저주와 함께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는 이탈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박물관을 불사르자고 선동하기조차 했다. 20세기의 몇몇 지식인들 역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지나치게 권위적이며 부르주아 냄새가 난다며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 인물로 프랑스의 초대 문화부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Andre Malreaux)를 들 수 있다. 말로가 제안한 '상상미술관(Le Musee Imaginaire)'은 영어권에서 벽이 없는 미술관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말하자면 사진의 복제기술을 이용하여 문화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예술품들을 모은 책이 바로 그가 제시한 상상미술관인 것이다. 말로의 상상미술관은 디드로(Rene Diderot)가 지향했던 계몽주의적 이상인 진보의 연속선에서 예술품을 시공을 초월하여 항구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영구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복제기술을 통한 대리체험만으로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한 원작의 아우라를 얼마나 체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유물-아미타후불탱화_137×56.5cm_1875
서은애_유일무이 관음보살도(唯一無二觀音菩薩圖)_종이에 채색_140호_2002
유물-십장생6폭병풍_349×232cm_조선후기
서희화_장생-목단_혼합재료_150×14cm_2003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태생적 한계에 대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은 여전히 '호기심의 방(le cabinet de curiosites)'이자 '기억의 저장고'일 뿐만 아니라 지식과 발견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중요한 제도임에 분명하다. 소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박물관에서 죽은 것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소중한 물건들과 만난다. 그곳에 '모셔진' 물건들을 박제된 주검으로 볼 때 박물관은 우리의 삶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박물관에서 전시와 교육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벤야민이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글에서 한때 신전에 봉안되었던 물건이 박물관으로 옮겨지면서 '예배가치(kultwerk)'는 '전시가치(ausstellungswerk)'로 전이(轉移)되고 그에 따라 그 물건이 애초에 지녔던 의식적(儀式的) 의미는 사라진다고 말했지만, 장소를 떠난 물건은 박물관이란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삶의 뿌리를 내리며 더 풍부한 해석을 기다린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분리가 아니라 교류와 소통, 특히 동시대의 미의식, 취미, 요청과의 만남이다. 이러한 만남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동인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를 말로의 상상미술관의 물리적 구현으로 볼 수도 있으나 엄숙하고 때로는 신비적인 분위기조차 풍기는 박물관에 현대미술이 틈입해 들어간다는 것을 생경한 방식의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 아니라 만남의 어색함을 뛰어넘는 대화의 제안, 누가 먼저 말을 걸든 상호이해를 위한 첫걸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유물-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복제
신장식_반구대 암각화를 생각하며-사랑, 영원, 기쁜 날, 생명력, 복, 기원, 풍요

캔버스에 한지 아크릴 채색_194×144.5cm_2005

유물-백자양각매화문대접_178×9×7.5cm_조선시대
이동재_무제_캔버스에 실, 아크릴릭, 쌀_50×50cm

국민대학교 박물관이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하는 소장품과 현대미술의 대화는 박물관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 즉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골동품이나 진열하고 있는 고리타분한 공간이란 관념의 더께를 벗겨내는 유쾌하면서 의미심장한 '도발'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문화재를 전시하는 박물관 전시실에 느닷없이 현대미술을 끼워넣는 발칙한 행위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최근에 주의사당 건물을 재건축하여 개관한 현대미술관(Kunstsammlung K21 Contemporary Art Collection)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21세기 동시대 미술을 신장하기 위해 20세기 미술관인 'K20'에 대응하여 만든 것인데 기획전시의 하나로 '제단(altar)'을 주제로 한국의 무속적 성향이 물씬 풍기는 굿판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제단을 재현한 설치미술전을 개최한 바 있다. 'K21'이 어차피 현대미술관이니 자의적이든 아니든 간에 과거의 물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재구성하는 것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최첨단의 현대미술관이 시공을 초월하여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제단을 끌어들이는 데는 나름대로의 미학적 원칙과 논리적 정당성을 갖춰야 할 것이고 '이상하고 해괴한 물건'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에 대해 불쾌해 할 현대작가를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전시는 현대미술을 다루는 큐레이터들조차 신선한 시도로 평가할 만큼 비상한 관심을 끈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멀리 갈 것 없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어떤 조각가 모임'이란 작은 단체가 공주박물관 등지에서 문화재를 재해석한 현대미술을 문화재와 나란히 전시하는 모험을 시도한 바 있다. 만약 박물관이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권역주의에 몰입할수록 보수화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국민대학교 박물관의 이번 시도는 박물관의 고유기능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활동의 확장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유물-신라목항아리
최지만_21세기 신라 항아리_자기_h.33cm dia.31cm_2004
유물-조각보_74.2×78.2cm_조선후기
황두진_부분과 전체 시리즈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1

이 전시에 참가하는 작가의 선정에 있어서도 박물관의 이러한 기획취지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목이 긴 항아리(長頸壺)」를 연상시키는 최지만의 발랄한 도자기를 비슷한 형태를 지닌 토기와 함께 배치함으로써 우리는 천오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문형민의 섬세하고 미니멀한 작품은 마치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비문(碑文)을 조심스럽게 읽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제공한다. 수렵, 어로의 삶을 기록해 놓은 반구대 암각화에 나타나는 여러 도상 중 특별히 고래에 주목하여 한국민족의 자연친화적이면서 순리에 순응하는 정신세계와 연결시키고 있는 신장식의 작품은 반구대 암각화룰 실물크기로 캐스팅해 놓은 부조와 함께 놓임으로써 암각화와 현대회화를 비교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밖에도 평범한 일상적 오브제를 조합하여 십장생도를 재현하고 있는 서희화나 화면에 쌀을 붙여 백자의 섬세하고 아름다움을 연상케 만드는 작품을 출품한 이동재의 작품, 조각보에서 발전된 건축적 입체를 제시한 황두진의 작품은 주변의 소장품들과 어울리며 시간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만든다. 더욱이 근대기에 활동했던 안중식의 「탁족도」를 차용하여 작가자신이 능청맞게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노인으로 분장하고 제자에게 시동(侍童)의 역할을 맡긴 권여현이나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관음보살의 용맹정진 장면을 그린 불화를 공상과학 만화영화에나 나올법한 장면으로 번안하여 관음보살의 얼굴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은 서은애의 '뻔뻔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도발은 다 같이 현대미술의 중요한 표현방법인 패러디를 활용하여 그림을 보는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것이 문화재의 아우라에 딴지를 걸고 그 권위를 해체하려는 우상파괴주의자의 섣부른 신성모독이 아니라 문화재를 우리의 삶과 더 가까운 곳에 위치시키려는 즐거운 반란으로 받아들일 때 박물관은 저 먼 곳에 있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가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진 국민대학교 구성원은 물론 많은 시민들에게도 널리 소개되어 모두 시간여행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최태만

Vol.20050530d | 대화_Conversation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