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그 사람

이진화 사진展   2005_0601 ▶ 2005_0614

이진화_그 집 그 사람_컬러인화_80×8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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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01_수요일_06:00pm

대안공간 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21번지 Tel. 02_735_4805 www.altpool.org

무작정 떠난 여행길에서 무심코 본 차창 밖 이상한 풍경들... 그것은 언제나 보아 왔던 익숙한 장면들 거의 같은 형식으로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지붕들이다. 달리는 차창으로 보여 지는 수많은 색 덩어리들은 나의 망막에 상이 맺히기도 전에 뒤로 지나가 버린다. 이러한 색 지붕들은 70년대 새마을 운동 때 특히 큰 도로변이나 철길 가에 있는 마을을 대상으로 외벽과 지붕만 바꾼 새마을 운동의 산물이었다. 대부분 슬레이트나 양철 지붕으로 지역마다 거의 정형화된 형태를 보이지만 집 주인의 선호에 따라 조금씩 형태도 색도 다르게 칠해졌다는 알 수 있다. 빛바랜 황토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붕 색들을 보며 나는 낯선 이국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것은 단순히 촌스럽다는 느낌을 넘어 순간적으로 날 멍하게 만든 이상한 인상이었다. 그것은 길을 걷다 들려오는 음악이나 냄새가 기억장면들을 언뜻 언뜻 스쳐 지나게게 하는 순간과 같다.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는 자신의 마지막 책에서 인간 존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기억적인 이중인화들이라고 말한다 : 예컨대 A라는 해변은 B라는 교회 위에 겹쳐 있고, 그 교회는 C라는 얼굴 위에 겹쳐 있고 또 그 얼굴은 ... 이러한 연상은 또한 동일한 대상 위에서 응시자의 경험에 따라 각자 달리 해석되는 연상이 아닌가 ? ● 내가 바라본 색들은 내가 인도에서 봤던 그 색들이었다. 이국적 취향과 태고의 어떤 신비를 감추는 대지의 붉은 황토와 짙은 코발트 창공, 인도 어느 도시를 뒤덮은 푸른 색 물결, 그리고 골목골목마다 칠해져 있던 카오스 아이보리 ... 이 모든 것이 만들어 내는 강렬한 첫인상의 기억, 비록 그것이 우리가 착각이라고 하는 데자뷔 D?j?-vu 나 상징적 전이(轉移)일지라도, 여하간 내가 익숙하게 바라보았던 차창 모습은 나의 또 다른 기억의 창이다. 새마을 정책의 성과를 확연히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눈에 잘 들어오는 색들로 칠해진 지붕 행렬이라고 하지만, 내가 느끼는 색들은 나만의 경험과 나만의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내가 익숙하지 않은 인도에서 오히려 익숙함을 느꼈듯이, 익숙한 우리네 마을에서 불현듯 처음 보는 그러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다.

이진화_그 집 그 사람_컬러인화_80×80cm_2004
이진화_그 집 그 사람_컬러인화_80×80cm_2004

난 사각으로 잡혀진 이미지를 좋아한다. 그러나 왜 그런지는 잘 모른다. 물론 사진을 담는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해 보았지만, 사실상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장면의 35mm의 경우, 나에게는 그 익숙함이 개인적으로 나의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정사각형 안에 이미지를 담았을 때, 우리를 질식하게 하는 답답한 느낌, 어딜 봐도 탈출구 하나 없는 꽉 막힌 공간, 앞과 뒤 그리고 전과 후도 없는 완전한 사각 공간, 그 대칭 구도와 정면성이 괜히 좋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내가 정사각형에 매료된 것은 단순히 감각적인 완전함이나 심미적인 조형성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내재된 아주 심리적인 불안과 불안정한 내적 구도 다시 말해 동전의 양 면과 같은 개념적인 이중성 때문이었다. 사실상 정방형 이미지는 우리의 파노라마 시각과는 반대로 언제나 수평구도로의 시각교정과 확실한 무게 중심인 근경으로의 원근교정을 요구한다.

이진화_그 집 그 사람_컬러인화_110×110cm_2005
이진화_그 집 그 사람_컬러인화_110×110cm_2005
이진화_그 집 그 사람_컬러인화_110×110cm_2005
이진화_그 집 그 사람_컬러인화_110×110cm_2005

나의 작업 속 이미지들 역시 우선 첫 눈에 외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내용과 완전한 형식을 보여주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예컨대 초가집의 구조적인 내부와 슬레이트 지붕과 시멘트벽으로 둘러 쳐진 외부 혹은 개념적인 측면에서 모든 것을 수평과 수직으로만 허용하는 사각 공간에서 안으로 가두려는 폐쇄성과 틀 밖으로 연속하려는 개방성의 이중적 구조가 공존한다. 사각 이미지들은 모든 것이 이중으로 된 현실 즉 과거 사실의 분명한 기억의 창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공존은 아마도 현실과 비현실, 체념과 욕구 그리고 기억과 망각과 같은 나 자신 스스로가 위장한 감정의 이중성을 말하는 듯하다. 그 이중성은 사각으로 보이는 기억의 풍경으로 재구성되어 나타난다. 그 첫 작업으로 우선 인도의 느낌이 나는 색의 집들을 찾아 다녔다. 창을 바라본다. 사람이 지나간다. 참 이상하다. 그냥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인데, 카메라의 창을 통해 본 이미지는 현실감을 일어버린 어색한 장면이었다. 더욱이 지나가는 사람의 포착은 단순한 공간의 조합이 아니라 처음 보는 이상한 마을 풍경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 다만 그 사람과 색 지붕 그리고 콘크리트 담벼락이 어디서 많이 본 기억의 무의식을 만들 뿐이다. ● 난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텅 빈 마을에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나중에 가서야 마을 사람들이 언제 많이 보이는지 알았지만 처음 촬영 당시 덩그렇게 카메라 놓고 무작정 기다렸다. 완전히 촬영 세트장을 생각하게 하는 텅 빈 마을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긴장되는 순간이 왔다. 내가 만든 사각의 덫으로 한 사람이 지나간다. 내 앞을 지나가면서 나를 알아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 사람을 위해 나의 기억 속 나를 위해 셔터를 눌렀다. ■ 이진화

Vol.20050601a | 이진화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