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거울의 통로

한정광 설치展   2005_0601 ▶ 2005_0607

한정광_cronos & kairos_강화안전유리, 목재_가변 설치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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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01_수요일_06: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 2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22_9883 www.topohaus.com

검은 거울의 통로를 걷다 ●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일.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존재를 어루만지는 일. 유사 이래 원시적 형태의 자연숭배로부터 문명화한 동서양의 모든 종교라는 이데올로기가 그 역할을 자임해 왔다. 인간의 영혼,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일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나오는 원천적인 신앙심을 토대로 그것을 현세의 기복과 내세의 또 다른 삶으로 확대재생산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자리 잡은 종교는 기나긴 세월 동안 죽음 이후의 시간을 볼모로 죽음을 앞둔 인간들의 현실 삶을 다스려왔다. 종교가 하나의 진리영역으로서의 시스템을 가지고 인간의 영혼을 현세의 기복과 내세의 기원으로 이끌어나감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반면, 진정한 예술은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치유해내기보다는 그 아픈 상처를 더욱 아프게 찌름으로써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 또 다른 차원의 진리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한정광은 절제된 공간과 빛의 언어로 짜여진 검은 거울의 통로를 제시함으로써 죽음의 그림자를 드러내고 나아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고 있다.

한정광_cronos & kairos_강화안전유리, 목재_가변 설치_2005
한정광_cronos & kairos_강화안전유리, 목재_가변 설치_2005

1. 한정광의 작업은 시간의 축선을 가로지르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그가 죽음에 관한 일련의 작업들을 자신의 주제로 삼아온 것은 시간의 문제를 다루었던 초기작의 연장선상에 있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찬 기호들을 통해서 한정광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담아 왔다. 한정광의 예술세계를 타고 흐르는 이 죽음이라는 주제는 수천년의 간극을 넘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알리는 기념비적인 문명으로 존재해온 고인돌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예술적 초월로 표출되어왔다. 그의 작업은 따뜻한 감성으로 영혼을 어루만져 준다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터부시하는 모종의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있다. 섬뜩함이나 혐오감까지 유발할 수 있는 이러한 죽음의 이미지는 그의 유년시절부터 장손 집안의 제사 문화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에 관한 나름의 깨달음을 키워온 탓이다. 성인이 되어 문득 만난 고인돌에 관한 한 장의 사진과 기사를 접하고 고인돌 답사를 다닌 것에서 본격적인 작업 세계로 이어졌다. ● 삶과 죽음, 조상, 영혼 등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삶과 죽음의 시공간을 압축한 바니타스(Vanitas)의 세계로 이어진다. 한정광의 바니타스 모티프는 그러나 자폐적인 미술언어에 포섭된 개념적 유희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유학시절 어느 날 밤 혼자서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공동묘지에 가서 삶과 죽음의 엇갈린 이정표들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편안하고 아늑하며 숙연한 죽음의 상징을 접했다고 한다. 한정광 내러티브가 실체로부터 동떨어진 허구로서의 예술 내적인 개념이 아니라 육화된 체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삶의 헛됨과 덧없음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각성하게 하는 바니타스 전통은 서구 근대 회화에서 나온 개념이지만, 한정광이 이 모티프를 자신의 작업과 연결시키는 것은 식민화한 미술지형의 언어들이 아니라 스스로 오랜 시간동안 체험과 사유를 통해 다져온 작가 주체의 자신감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인다. ● 한정광은 빛을 다루는 설치미술가이며, 사물을 다루는 조소작가인 동시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이러한 정체성은 매체의 경계 위에 서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후, 설치미술이 일대 열풍을 일으키던 시기에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던 설치미술의 흐름을 따라잡는 것과 동시에 전통적인 조소 작업의 개념을 버리지 않으려고 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형상조소예술의 뒷심을 지키려 했다는 점이다. 조소가 뒷받침하는 설치작업 가운데서 형상성을 찾으려 했다는 점, 특히 최근에는 거울 뒷면에 스크래치 드로잉을 함으로써 평면회화의 감성을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게다가 자아발견의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개념미술의 함의를 갈파하는 오브제와 개념을 결합한 미술행위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노동집약적인 예술행위를 가미한 수공 작업의 미덕을 잊지 않고 있다. 조소기반의 설치작업과 회화적 손맛이 가미된 오브제를 연출함으로써 일관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치열한 방법적 탐구를 모색하는 작가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정광_cronos & kairos_강화안전유리, 목재_가변 설치_2005
한정광_cronos & kairos_강화안전유리, 목재_가변 설치_2005

2.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선 낯선 자아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 한정광이 드러내고자 하는 검은 전략의 핵심이다. 마주보고 서있는 스물 두개의 검은 거울(黑鏡)을 전시장 한가운데 배치해두고 그 흑경의 통로를 관통하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하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도록 한 설치작업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스물 두개의 장방형 흑경 통로 한 켠에 두 판의 스크래치 드로잉을 선보인다. 한 판은 갓 피어나는 생기 넘치는 장미이고 다른 한 판은 꺾이어 말라비틀어진 장미이다. 한정광은 삶과 죽음을 대비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삶보다는 죽음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일상을 다루는 작업들이 창궐하는 시대의 대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죽음의 심연을 좇아 어두운 그림자를 그려낸다. 죽음은 삶의 이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삶의 부분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회화적 요소를 가미한 한정광의 근작에 있어 거울작업의 평면성은 매우 두드러지는 요소이다. 그가 습작으로 만들어놓은 거울 작업은 작은 맨 거울의 뒷면을 긁어서 인물 두상 실루엣을 남긴 작품에서 보이듯이 드로잉으로 형상을 각인하고 그 형상의 일루전을 통해서 무언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실루엣의 인물 너머로 보이는 관람자 자신의 모습을 통해 존재 너머의 자아를 발견하도록 한 것이다. ● 인공적인 오브제나 행위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예술가의 시도들 가운데서 한정광의 거울 작업처럼 정적이면서 동시에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작가와 관객 사이의 떨림과 울림에 대한 꼼꼼한 헤아림을 필요로 한다. 특히 거울과 같이 대상을 날것으로 드러냄으로써 무언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일은 공간과 오브제와 빛과 동선에 대한 엄격한 절제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거울을 다루는 한정광의 마음은 다음과 같은 육성에 잘 담겨있다. "거울은 나를 반영하는 물건이다. 오늘의 나와 과거의 나, 미래의 나를 투영하는 심연이다. 거울 속에서 포착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의 변이를 발견하게 하는 흥미로운 소재이다." 이렇듯 그는 거울 앞에 선 사람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거울이라는 매체를 활용해서 초월적 시공간을 담아내고자 한다.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관객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해 보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어두운 공간 한가운데 마련된 '흑경의 통로'는 엄숙한 자아성찰의 장을 마련하는 개념적이면서도 가시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장방형의 흑경 통로가 텅 빈 검은 거울 면에 비친 관객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절제된 명상 언어를 도출하는 데 반해 다섯 개의 공간으로 분할된 소품 블랙박스에는 갖가지 이분법적인 상징 언어들로 가득 차있다. 한정광은 소품 블랙박스 안에 삶과 죽음, 안과 밖, 존재와 부재 등을 암시하는 스크래치 드로잉을 가미했다. 살아생전 신의 대리자로서 만인의 추앙을 받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과 등을 보이고 돌아서있는 모습을 대비시킨다. 막강한 권력과 명예를 가진 존재였지만 죽음을 맞아 뒤돌아 가는 모습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밖에도 깃털과 모래시계, 장례식 상여와 고인돌 등의 도상들, 미의 기준으로 통하는 비너스와 죽은 장미의 실루엣, 인간의 탄생과 성장과 변이 과정을 담은 작가 자신의 모습의 아이의 모습 등 한정광의 블랙박스 속에는 회화의 입체, 일루전과 오브제, 개념과 형상 등의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

한정광_cronos & kairos_아크릴, 강화유리위에 스크레치 드로잉_가변설치_2005
한정광_cronos & kairos_아크릴, 강화유리위에 스크레치 드로잉_가변설치_2005

한정광은 삶의 희망과 환희를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죽음의 절망과 공포를 드러낸다. 삶의 이면에 존재하는 죽음이라는 것이 결코 은폐될 수 없는 진실의 한 축이라는 것을 각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삶과 죽음의 공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 흐르는 시간 속에 갇힌 인간 삶의 유한함 등에 관해 깊은 성찰을 가지고 그것을 시각화 하는 예술가이다.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맞이하는 최후의 사건은 죽음이다. 그 누구도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한 삶의 종지부를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진실은 염려의 대상에서 제외하고자 한다고 해서 없어지거나 가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을 공포의 대상으로 치부한 나머지 그저 덮어두려 하거나 또 다른 절대 진리를 설정함으로써 그 공포를 희망으로 바꾸고자 한다. 모더니티의 작동 이래 수많은 예술가들이 갈급해온 바,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정광에게 있어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탈은폐의 발언으로서의 예술은 한정광이 갈구하는 궁극적인 지향이다. 예술은 종교의 몫을 나눠가진 근대 이후의 자율성의 영역이다.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는 가장 본질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영혼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체계화한 종교의 교리를 선택하지는 않지만 영혼의 존재를 믿는 범신론자로서 세속화한 종교적 시스템이 아닌 범신론자의 입장을 가진 예술가로서 인간의 영혼을 다룬다. 한정광이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빠져드는 것은 이러한 예술가의 숙명을 거스르지 않는 길인 것이다. ■ 김준기

Vol.20050603c | 한정광 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