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_夢想家

김성희_이지원_전민수_파야展   2005_0601 ▶ 2005_0614

이지원_Bus Stop_아크릴 채색, 컬러인화_12.7×8.9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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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01_수요일_06:00pm

책임기획_이수민 후원_토포하우스_그린아트

갤러리 토포하우스 지하 1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32_7555 www.topohaus.com

『몽상가』 ● 삶이란 언제나 양면성을 갖는다. 현실의 명료함과,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일탈의 욕망.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삶은 행복하다. 매체를 통해 일탈하는 자들이니 그들은 때때로 행복하다. ○ 『몽상가』의 4작가는 사진을 통해 일탈하고 꿈을 꾸는 자 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몽상은 현실도피의 구실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양면성, 그 공존의 법칙을 인정하기에 거침없이 현실을 수용하고 이용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현실 개입이라 할 수 있다. 주변의 사소로운 일상과 세상을 향한 소통의 욕구는 사진으로 재현된 현실의 편린들을 통해 발언하기 시작한다. ● 사실 이 네 작가들에게 있어 사진은 '최후의 매체'가 아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발언의 이미지들이 얇디얇은 인화지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들의 몽상이 차고도 넘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조각낸 세상에 비현실을 더하거나(파야, 이지원), 상상과 상징의 과정을 거쳐(전민수, 김성희)그들의 속내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전민수_인터뷰-사랑스러운 그녀_디지털 프린트_50.8×101.6cm_2004

파야는 문득 옛 사진들을 꺼내어 놓는다. 사진 속 그날이 현실이었음은 '사진이 증명'하기에 자명한 사실이나, 어떠한 추론으로도 그날의 그 분위기를 다 말하지 못함 또한 자명할 뿐이다. 과장과 다소간의 거짓말도 허용되기에 과거의 사진들은 항상 재미난 기억이 된다. 그래서 파야는 내친김에 상상도 하고, 게다가 고무찰흙까지 덧붙이는 장난을 해본다. 과거의 사진과 현재의 손놀림으로 만들어놓은 또 다른 이미지들은 사진속의 파야를 현재의 정체성과 교접시키는 방법론으로 작용한다. 상상하고 장난하고 과장된 세계에 재미있어하는 것이 파야의 98%이다. ● 이지원의 몽상은 은근히 발칙하다. 드넓은 세상의 개념을 욕망대로 재단하는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 잘라내는 것에 그치는 것 뿐 만이 아니라, 노상 그렇게 찍어놓은 사진마저도 그가 의미를 부여한 피사체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물감으로 지워버리고 만다. 의미 없이 덧입혀진 색깔들과 붓질은 그에게 있어 카메라만큼이나 족쇄가 아닌지라, 그의 이기적인 주변 지우기는 의미의 육중함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시각에 풍부한 내러티브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작가는 그저 묵묵히 세상이 끊임없이 간섭하는 현실에 대해 거리두기의 시선을 일관하고 있다.

김성희_뱀과 이야기하는 소녀

김성희는 인간에게 공존하는 외부적 자아와 내부적 자아의 이중성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리고 그 이중성을 세상이라는 틀에도 고스란히 적용시키고 있다. 작가 스스로 세상에 공존하는 '현실'과 '환상'이라는 이질적인 세계를 자각하면서 시작된 이 '환상시리즈'는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우화를 상정하며, 어느덧 신화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원초적 갈망이 만들어낸 신화는 결국 영원을 바라는 우리의 몽상이 빚어낸 '보편적 상징'이기에 친근하다. ● 전민수에게 있어 작업은 곧 놀이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예술가에게 있어 '나는 누구인가?'만큼 진부한 주제가 또 있을까?. 하지만 그러한 화두도 전민수 에게는 놀이의 구실이 된다. 그리고 더 재미나게 놀아보고자 사진과 포토샵을 일 삼하 자신과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고 상상한다. 성실한 모범생이 일기를 써내려가듯 사진으로 꼼꼼하게 일상을 '일기'한ㄴ 전민수의 주변 인물들은 케리커쳐의 그것마냥 개성을 포착한 작가의 손놀림을 통해 '아무나'에서 '스패셜리스트'로 변신하고, 작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배역에 당당히 캐스팅된다.

파야_MIKE maous K_고무찰흙, 컬러인화_20.3×25.4cm_2001

하이퍼리얼 시대를 사는 우리들 눈에 이 네 작가의 손 때 묻은 몽상이 TV속 성형미인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몽상이 항상 유치하기 마련이며, 일탈이란 여전히 비현실적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 이수민

Vol.20050606c | 몽상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