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

문득 바라보다 - 서울의 발견展   2005_0601 ▶ 2005_0704

김을_THE WIND_지도위에 연필과 수채_40×85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601_수요일

참여작가_김을_김태헌_이부록

주최/기획_(재)세종문화회관 객원기획_김최은영

광화랑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 Tel. 02_399_1160 www.sejongpac.or.kr

지하의 광장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 ● 전철역 지하통로 안에 또! 새로운 갤러리가 생겼다. 이름하여 "광화랑" ○ 기존의 광화문 갤러리와 혼돈스러울 수 있지만 그 위치와 크기가 분명하게 다른 이 공간은 광화문 한복판, 그러니깐 이순신장군 동상 발밑이라고 생각하면 딱 이다. 공간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보자면 보행자들의 공간에서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어찌 보면 사생아 같은 공간인데 기능을 잃어버린 공간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긴 했으나 그게 좀 행정적인 편의에서 급조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간편하게 드는 걱정들이 있다. 바로 '모두에게 불행한 공간이 되면 어쩌나'하는 것이다. ● 문화라는 이름으로 그 공간을 점유하고는 문화를 향유할 사람은 구하지 못하는, 미술이라는 문화를 제공하는 사람들도 외면하고 보행자에게는 미움 받는 천덕꾸러기 공간이 되면 어쩌나하는 것. 지하보도의 널찍한 공간 안에 끼워져 있는 광화랑, 태생적으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이라는 숙제를 안고 태어난 이곳이 과연 "미술"과 "공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김을_새쇄자리_지도에 먹과 수채_40×47cm_2003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동원된 작가군단 ― 김을과 김태헌, 그리고 이부록 ● 30, 40, 50대의 이 작가들은 이미 미술판에서 어느 정도 알아주는 촌철살인적 인물들. 작품의 크기와 상관없이 결코 가볍지 않은 세상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담아낼 줄 아는 작가들이다. 싸늘한 냉소의 직설화법보다는 해학과 풍자의 파라독스를 더 즐길줄 아는 이들은 생활의 발견처럼 우리네 일상에서 문득 바라본 서울의 속내를 훔치듯 보여주고 있다. ● 50대의 김을의 드로잉엔 삶의 행간을 허허롭게 읽어내고 있는 작가의 눈썰미가 담겨있다. 2002년 이후 드로잉으로 대부분 전시를 꾸려가고 있는 작가의 작업을 보며 새삼 드로잉의 미술사적 의의를 거론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의 기존 작품을 미루어 짐작하면서 김을 눈 속에 비쳐진 서울의 모습과 한 두 마디의 씨니컬한 유머가 어떻게 담길지 기대될 뿐이다. 삶이 제법 농익은 작가의 눈길이 서울이라는 재료에 닿았을 때 우리는 어떠한 숙성된 장맛을 맛 볼 수 있을까. 조물딱조물딱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말깡말깡한 지우개로 무언가 만들어본 기억이 있지않을까? 54년생 김을이 지우개 귀신을 만들었다. 지우개 귀신은 어두워진, 남산쯤으로 보이는 서울의 검은 산위에 두둥실 떠있는 "SEOUL"을 올려다보고 입을 쩌억 벌렸다. 지우개 귀신의 본분이라도 다하려는 듯 무언가 하나 꿀꺽 삼켜 없앤다. 철자 "E". 꼴랑 E자 하나 없어지니 서울은 "SOUL"이 된다. 영혼이 된다. 정신이 된다. 도대체 무엇이 사라져야 서울은 제대로 된 정신상태를 찾을 수 있을까? 지우개 귀신한테나 물어봐야 알 수 있으려나?

김태헌_맥락없는 사회 맥락없는 사회 2005_2005
김태헌_맥락없는 사회 맥락없는 사회 2005_2005

김태헌은 40대의 작가로 민중미술로 출발하여 사루비아다방과 갤러리 피쉬등을 거치며 자신의 일기같은 1호짜리 캔버스 작업과 화첩 작업으로 화단에서 눈길을 받고 있다. 조용한 방법론으로 삶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작가는 그 조용한 방법론과는 다르게 힘있고 깊은 울림과 생각의 소유자이다. 작품은 작가를 닮기 마련. 김태헌 작업 속에 세상과 나, 그리고 이웃이 담겨있다. ● 이번 전시에서 김태헌은 1호짜리 캔버스를 대신해 날카로운 셔터타이밍을 선택했다. 카메라속에 담긴 서울위에 장난스러운 농을 가볍지 않게 얹는다. 뿌연 바탕이 자못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봄철에 똑떨어지게 어울리는 분홍빛 진달래 송이송이라니……. ●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연실색할만한 웃음이 나온다. 뿌연 것은 곱게 칠해진 바탕화면이 아니라 도시에 소리소문없이 쌓여진 먼지투성이의 회벽이었다. 또 하나의 풍경화가 등장한다. 커다란 은행나무 위에 색색깔 사람들이 걷고 있다. 자칫 유머러스해 보일수도 있는 환타지 풍경, 은행나무 위를 거니는 사람들이라니… 역시 더 자세히 보자. 으악! 은행나무가 아니다. 먼지나무다. 김태헌은 허구 많은 서울의 풍경 중에 먼지를 보았다. 그가 말하는 먼지는 단지 물리적인 먼지만이 아닐 것이다. '아~아~'라는 감탄사로 시작하는 서울의 찬가 속 우리의 서울은 먼지의 서울?

이부록_맥락없는 사회_렌티큘러_24.5×32.6cm_2005

이부록은 말그대로 30대의 젊음이다. 그의 작업은 위의 두 작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직설법에 가깝게 보인다. 이미 수차례의 전시로 사회와 밀접한 작가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작업은 직설법 중에서도 수필이라기보다는 주장하는 글에 가깝다. 날카로운 시선을 영상과 그림문자 등 다양한 매체로 담아내고 있다. 이부록식으로 말해주는 서울에 대한 직설법이 이번에는 렌티큘러(착시효과, 보여지는 각도에 따라 두 개의 이미지가 바뀌는 작업)방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부록의 작업은 사회를 바라보는 냉정과 이성이 유쾌한 파라독스로 울리고 있다. 정면을 향해 줄지어 늘어선 정경들, 조금 각도를 달리해 보면 그 가운데 거대한 표적이 드러난다. 우리시대의 과녁은 누구를 향한,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 교실 한가운데를 차지한 초록색 칠판, 역시나 비스듬히 칠판을 바라보니 비상구 표지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탈출구가 있기나 한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의무교육을 거치고 입시라는 제도에 한번이라도 몸담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업 앞에서 한숨부터 나온다. 동의의 한숨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답답한 시대 코드 가운데 하나다. 그것을 이부록식으로 담는다. 고개를 갸우뚱 돌리면 안보이던 새로운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역사와 사회를 작은 각도의 움직임 하나로 전혀 다른 간극을 보여준다. ● 많은 이름 다 놓아두고 부록이 되고자 했던 이유는 본편에서 끝내 말할 수 없는 숨겨진 이야기, 버려진 이야기를 제대로 다시한번 모아주려는 뜻이 아닐까? 이부록이 말하는 본편에서 말할 수 없었던, 그러나 버려져서는 안되는 서울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부록_비상 구교실_렌티큘러_32.6×43.5cm_2005

장맛은 찍어 먹어봐야 알고 전시는 판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일 ● 「장소와 제목만으로 편견을 갖지 마십시오.」○ 이 전시를 바라보는 모든 시선에게 던지는 부탁이다. 서울의 행정 속에서 나온 전시장에서 서울에 관한 전시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서울의 찬가만 울려 퍼지리라는 법칙은 없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반쪽짜리 문화와 정치의 공간이라고 내팽겨치지 말아 달라는 말이다. 혹시 누가 또 아나? 이순신 동상 발밑에서 찌그러져 있는 이 작은 공간이, 비워진 곳 채워넣기가 아닌 이 시대 미술판의 홍길동 역할을 할지 말이다. ● '미술'과 '공공성'을 위해 투입된 작가들은 맡은 바 임무를 너무도 충실히 잘해내주었다. 동네잔치처럼 미술관련 직업인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닌 향유자라고 부르는 대중이 보아도 즐기며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역량껏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만 잘하면 된다. 이 공간과 전시를 보고 무관심으로 지나쳐버릴 서울이라는 바쁜 도시를 살고 있는 우리만 잘하면 된다. 시청 앞 푸른 잔디를 눈앞에 두고도 밟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지하보도 한복판을 차지하고서 보행만 불편하게 하는 공간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광화문을 오고가는 수많은 서울 시민의 공간이 되어야 할 광화랑이다. 단어 그대로 향유자들은 향유만 하게 하여야한다. 그 즐김을 위해 마련된 전시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는 것 역시 숨겨지지 않는 속내이기도 하다. ■ 김최은영

Vol.20050608a | 문득 바라보다 - 서울의 발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