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지지 않는 ...어떤 것....

양현정 개인展   2005_0527 ▶ 2005_0607

양현정_꽃을 찾을 수 없는 꽃_거울, 한지, 수정액_48×48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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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527_금요일_05:00pm

아트포럼 뉴게이트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내자빌딩 1층 Tel. 02_737_9011 www.forumnewgate.co.kr

흐릿한 거울과 불투명한 이미지의 경계 그 너머 ● 양현정의 '나눠지지 않는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는 명쾌하게 구분하여 가를 수 없는 진리와 허구,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자아와 타자 등의 이분법적인 장치들의 경계 위에 서서 양자의 구별짓기를 헝클어트리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거울 위에 그려 넣은 전통회화 변형도상 위에 한지를 씌워 흐릿하게 만듦으로써 대상을 비추는 거울의 투사 기능과 회화의 재현 기능을 애매하게 만드는 거울그림 연작들을 선보인다. 깨진 거울을 색색의 한지로 감싼 후 벽면의 라인 드로잉과 결합한 설치작업은 화려한 이미지 안에 날카로운 파편을 숨겨놓음으로써 파괴와 단절이 생명과 연대와 교차하면서 공존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렇듯 거울과 유리, 한지와 도상들로 이루어진 양현정의 탈경계의 메시지는 초기작 이래 지속적인 내러티브 축선을 형성했던 조율(tunning)의 연장선상에서 세상을 향해 열린 예술가의 마음을 담고 있다.

양현정_끝없는 길_거울, 한지, 수정액_96×96cm_2005
양현정_끝없는 길-drawing_33×24cm_2005

1. 거울그림 연작들은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에 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불확실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작업은 천형처럼 자신을 따라다니는 한국화 또는 동양화로 불리는 회화방법을 재해석하면서 또 다른 세계로 열린 회화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중국의 화보집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에 나오는 산수화 도상들을 재해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도상 차용의 범본인 개자원화보는 엄밀히 따지면 청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중국 그림 교재이다. 16세기의 중국그림을 전통으로 받아들이고 맹렬히 따라 그려야 했던 그는 도상의 변형과 재맥락화로 전통회화의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선묘로 이루어진 전통회화의 도상들에 거의 위해에 가까울 정도로 비틀어 버린다. 양현정이 산수풍경 도상들을 가져다 쓰면서 모필을 수정액으로, 종이를 거울 판으로, 일필휘지를 꼼꼼한 개칠로, 재현적 도상을 한지에 가려진 개념적인 유희로 전환해낸 것은 어느 한 꼭지점에 자신을 고정하지 않고 현대미술의 두터운 지형 사이를 자유롭게 떠돌아다니고자 하는 예술적 일탈의 표명으로 보인다. 그는 옛그림의 도상과 한지를 사용함으로써 전통회화의 맥락에 접근하면서 동시에 시각예술의 탈장르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각적 차원의 환기를 넘어서는 시각예술가로서의 정체성 확인 작업과도 연결된다. 양현정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먹과 종이, 유채물감과 캔버스의 간극을 근원적인 차원에서 인정하되 접점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는 보다 유연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인 셈이다. 요컨대 장르와 매체의 구분은 시각예술의 큰 틀 안에서 하나의 방법적인 차이로 드러나는 문제일 뿐, 물질 그 자체의 구속력으로 인해서 예술의 정신성마저 고정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갑갑한 상황에 대해 스스로 해결지점을 찾아 나선 것이다. 박제화한 전통의 물질성에 귀의하기 보다는 예술의 정신성을 축으로 순환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거울 그림은 멀리서 보면 약간의 변화가 있는 색면 추상 작업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형상회화의 맥락을 가진 작품이다. 거울 위의 하얀 선들은 한지의 양현정 무늬에 의해 교란되며 동시에 그림 앞에서 선 견자에 의해 다시 한 번 혼란스러워진다. 거울 위에 그려진 수정액 그림은 양현정 무늬 특유의 선적인 요소에 가려져 불투명한 세계로 뒤바뀐다. 양현정 무늬는 첫 개인전 이후 음악적 모티프에서 출발해 청각을 시각화 하고자 했던 「조율」 연작에서 나타난 오선지 이미지를 꾸준히 변주해온 결과이다. 오선지의 선적인 요소를 물결이나 바람결 같은 부드러운 선의 요소로 전환해 나감으로써 양현정 특유의 아이콘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애초에 하나의 재현적 기호로 설정했던 오선지 이미지는 전혀 다른 맥락의 시각적 기호 그 자체로 전이됨으로써 양현정의 작업을 가늠하는 주요한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먹의 농담으로 선을 만들던 것에서부터 미디움과 먹이나 물감의 이질감을 이용한 선의 구성으로 넓혀나가고 이제는 거울에 종이를 붙이는 과정에서조차 자신의 아이콘을 적용하는 일관성과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양현정_길을 찾을 수 없는 길_거울, 한지, 수정액_48×48cm_2005
양현정_길을 찾을 수 없는 길-drawing_거울, 한지, 수정액_48×48cm_2005

거울과 그림과 한지로 이루어진 이 작품들은 매우 다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거울 위에 한지를 발라 대상을 투영하는 거울의 기능을 없애고, 거울 앞에 선 견자(見者)는 자신의 모습을 흐릿한 실루엣으로만 볼 수 있게 하며, 완전한 불투명이 아니라 보일 듯 말 듯 한 애매한 상황을 만들고, 거울을 감싸는 한지가 양현정 무늬에 의해 또 다른 시지각의 지층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이렇듯 여러 층위가 쌓여있는 거울 그림들은 뚜렷하게 형상과 의미를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 그림인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눈앞에 존재하는 거울과 한지가 뒤엉킨 대상을 정면에서 또는 옆에서 시점을 이동하면서 꼼꼼하게 관찰하도록 만든다.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보기 위해 시지각을 환기하는 효과를 유발한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계속 움직이면서 가려진 이미지를 찾아내도록 애를 쓰게 만드는 것이다. 정면에서 도상들을 보려고 하면 어렴풋하게 투영된 자신의 실루엣과 뒤섞인 한지에 가려진 선묘의 일단을 부분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려진 도상 이미지 읽기를 방해하여 시지각의 연쇄 고리가 끊어지는 상황에 직면한다. 따라서 그의 거울 그림은 관람객 자신의 흐릿한 윤곽과 수정액 드로잉 이미지들과 불투명과 반투명을 반복하는 양현정 무늬가 겹쳐지게 함으로써 작품과 관객 사이에 미묘한 긴장과 갈등을 만들어내는 섬세한 다층 구조의 작품이다.

양현정_떠도는 돌_거울, 한지, 수정액_48×96cm_2005

2. 양현정은 존재하는 실체로서의 달의 이면을 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인식 영역 밖의 것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박물관의 달 모형을 통해서 '존재하는, 그러나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100여 년 전에 만든 달 모형은 당시에 천체 망원경을 통해 수집한 정보에 입각해서 만든 것이었는데, 달의 전면은 분화구와 계곡 모습 등이 제대로 묘사되었지만 그 배면은 그냥 반질반질한 면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실체'에 미치지 못하는 시지각과 인식의 한계 상황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의 거울 그림도 이와 같이 명쾌한 재현 이미지를 만들기보다는 옛 그림 범본의 도상을 이미지 게임의 장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비가시적인 실체에 관한 인식의 한계 상황과 겹치게 만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거울그림 연작들은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는 길, 다가왔다가 이내 사라지는 물길을 통해서 불완전한 순환구조를 발견하기도 하고, 전통회화 영역이 밥그릇의 문제로 귀속되는 상황에 대해 '밥그릇 지우기' 작업을 통해 은근히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흐르는 계곡」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과 산 사이에서 흐르는 계곡물이 그 발생과 근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뜬금없이 흐르는 상황을 보여준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흐름에 대한 부정의 긍정인 셈이다. 「끝없는 길」은 길이 날 수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냄으로써 어떤 목표지점을 향해 뚫린 길이 아니라 제대로 갈 수 없는 끝없는 길로 이어진다. 불확정적이고 비가시적인 예술가의 끝없는 고행의 길을 암시하고 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길인 것이다. 「길을 찾을 수 없는 길」 또한 바위산을 타고 꼬불꼬불 돌고 도는 길의 연쇄 고리를 보여준다. 병풍식으로 이어붙이거나 두 조각의 평면으로 이루어진 「떠도는 돌」 또한 대지에 뿌리박은 굳건한 바위가 아니라 둥둥 떠다니는 바위들을 그린 것이다. 그의 괴석 이미지는 전형적인 산수의 바위 이미지들을 변형한 것들이다.

양현정_사라진 그릇_거울, 한지, 수정액_48×48cm_2005
양현정_난제 drawing_33×24cm_2005
양현정_난제들-설치광경_거울, 유리, 한지, 테이프_250×1100cm_2005

「다가왔다 사라지는 강」은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강줄기는 원근법적 시각에 의해서 굵어졌다가 다시 가늘어지는데 이것 역시 생성과 소멸을 한 판에 담아 혼란에 빠진 기이한 현실을 보여준다. 「꽃을 찾을 수 없는 꽃」은 선묘로 이루어진 국화 송이들의 연속을 통해서 가시적 실체로서의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을 보여주고 있다. 국화꽃 덩어리 그림에서는 또 다른 비평적 논점을 제시한다. 그는 밥그릇 속에 담긴 국화꽃 덩어리를 그린 연필 드로잉 「난제」를 제시한 후에, 동일한 모티프의 거울 그림 「사라진 그릇」에서는 밥그릇의 선을 생략한 채 꽃덩어리만 보여준다. '밥그릇에 담긴 꽃'과 '밥그릇 없는 꽃덩어리'가 은유하는 것은 밥그릇을 없애면 난제가 해결될까 하는 질문을 담고 있다. 전통회화에 대해 정의내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릇을 비우고 해결의 방안과 긍정의 지점을 찾아내고자 하는 젊은 작가의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붉은 색 테이프를 이용한 라인 드로잉과 한지로 감싼 유리 파편으로 이루어진 벽면과 바닥의 설치작업 「난제들...」은 '봐도 알 수 없는 거울'에서 나온 핏줄이나 식물의 줄기와도 같은 선들이 유리 파편들을 연결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상당히 장식적인 식물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날카로운 유리파편들의 신경질적인 위협에 의해 불가해한 상념에 직면한다. 날카로운 파편에 담긴 파괴와 상처의 이미지를 여러 가지 색의 한지로 감싸서 반투명의 또 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붉은 색 계열의 한지로 감싼 유리 파편들은 붉은 테이프 라인 드로잉에 의해 개별적인 파편의 단절을 넘어 마치 혈관이나 식물의 줄기와도 같은 선들에 의해 수많은 생각의 파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에 의해 부유하는 개별자로서의 새로운 네트워킹을 형성한다. ● 양현정의 거울과 유리 작업은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보여도 알 수가 없는 것'들에 대해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유보의 입장을 선택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만 빼고 모든 것이 변한다. 불변의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진 양현정은 거울 그림 앞에 선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 자신이 보이십니까?" 이러한 질문은 완만하면서도 예리하고,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색의 느낌을 주며, 보일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반투명의 거울 앞에서 관객을 끌어들이는 적극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그는 다시 묻는다. "내 그림을 한국화라고 할 수 있는가?" 그의 대답은 자명하다. "구분하지 말 것!" 흐릿한 거울과 불투명한 이미지의 경계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인식과 감성의 틀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새롭게 열린다. 경계를 넘나들며 고정된 의미망을 벗어나려는 양현정은 이렇듯 야무진 해답을 가지고 어느새 흐릿한 거울 앞으로 우리를 불러 세운다. ■ 김준기

Vol.20050608b | 양현정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