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아득함으로 살아가기

서루나 회화展   2005_0603 ▶ 2005_0614

서루나_gaze_패널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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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03_금요일_06:00pm

다빈치 갤러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5-23 카사 플로라 지하 Tel. 02_6409_1701 blog.naver.com/64091701

서루나의 작품세계 - 순간의 아득함으로 살아가기이미지는 사물에서 나오는 빛과 시선에서 나오는 빛의 교차점에 있다 - 플라톤

서루나_gaz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9×130.3cm_2005

#1 - 투명 덩어리 ● 비가 내렸고, 도착한 서루나씨의 작업실 안은 '혼돈' 혹은 '시선'이라는 제목을 가진 일련의 작품들이 벽에 쌓여있거나 바닥에 뉘여 있어서 사람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림 사이를 몸의 면적을 최대로 움츠려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옷에 아직 묻어있던 빗방울 하나가 그만 바닥에 놓여있던 그림으로 굴러 떨어졌다. 흠칫 놀라서 화가의 기색부터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광고 사진 속에서 인위적인 포즈를 만들고 있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자신의 주된 소재라고 말하면서 비 오는 창문 바깥을 살펴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물방울이 굴러갔던 곳, 그 흔적을 다시 찾아보려하는데, 대신 수많은 물방울들이 겹쳐져 상이한 색채들이 어룽거리는 어떤 투명의 흔적 같은 것이 그림 속에서 먼저 다가왔다.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색채와 실루엣들은 서로 겹쳐지면서 겨울 햇살 아래서 녹아내리고 있는 눈사람 같은, 아니 눈사람이 녹고 나서 그 자리에 고여 있는 약간의 물 같은, 실체가 아니라 그립기도 하면서 동시에 두렵기도 한 어떤 투명의 흔적 같은 것을, 스스로 투명덩어리가 되어 감내하고 있는 진법을 펼치고 있었다. 또한, 서로가 겹쳐지고 이탈하면서 시방 떨고 있는 그 투명덩어리들이 이렇게 되묻고 있는 것을 들을 수도 있었다. "모든 존재들은 어떤 불완전한 투명 덩어리들인가?"

서루나_gaz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05
서루나_gaz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05

#2 - 경계 ● 광고 속의 여성은 모두들 예쁘고 겁나게 잘 나가는 줄 알았다. 하나의 생각을 또 다른 생각으로 교체하는 것이 재현이라면, 서루나의 그림들은 우선 광고 속의 여성들에 대한 그러한 생각을 오롯이 바꾸어준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 대한 끝없는 선망과 소비를 조장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광고 속의 여성은 도리어 정체성의 불안을 대표하고 있는 이미지들, 오로지 타인이 자신을 '바라본다'라는 의식 속에서 자신과 불화하는 이미지들로 부각된다. 그래서 그림 속의 여성들은 그렇게 윤곽과 실루엣이 갈라지면서 다수로 분열되고, 마치 투명덩어리처럼 몸 안의 공간이 몸 밖의 공간과 동일한 질감의 상태로 처리되고 흐려진 채, 이렇게 되묻고 있는 것은 아닌가 - "그렇다면 당신의 시선이 마중 나와 내가 당신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아직 당신 바깥에 있는 것인지요?"

서루나_gaz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05
서루나_gaz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05

#3 - 시선을 받아내는 시선 ● 서루나의 그림들이 보다 더 의미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광고 속의 여성들과 같은 신세"라는 각성에만 머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각성은 사실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는 여성들이 다만 어느 일순간만이라도 '겁나게 잘 나가는' 현전을 염원하는 아니마적 연민이 아니무스적 각성의 배후에 자라잡고 있기에 서루나의 그림들은 아주 오랫동안 어른거린다. 타인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는 그림 속의 여성들의 무표정한 시선 혹은 감겨있는 눈은 현전의 그러한 순간이 결코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선 탁 깨놓고 말해 주고 있는 듯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순간들을 허하고 다가올 순간들을 자신만의 희망으로 회임하고자 하는 기도가 모델의 얼굴과 전신에 지문처럼 칭칭 감겨 새겨져 있는 것이 서루나의 작품세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전에 대한 영원한 갈망'으로 몸들은 또 한번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며 수 없이 겹쳐지고, 배경처럼 몸과 마음의 잔상들이 태어나고 밀생(密生)하는 그 아득한 순간성들의 아우라는 진작부터 서글프기도 하다.

서루나_gaz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12.1cm_2005
서루나_confu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05

#4 - 한 방울의 빗물을 받아내는 그림 ● 이번 전시회에 나오는 그녀의 작품들이 기존의 작품들과 다른 것은 광고 속의 모델이라는 소재들이 신기하게도 점점 자연속의 물상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일테면, 모델의 얼굴은 어디론가 하염없이 떠밀리는 강의 물빛들을, 그림의 배경으로 펼쳐진 모델의 머리카락들은 바람을 따라 순하게 흔들리고 있는 솔잎들을, 모델의 옷깃은 겨울밤 얼어 있는 강의 어둠 뒤로 숨었다가 다시 환하게 나타나는 오리 떼의 날개 죽지들을 받아내고 있다. 당겨 말하자면, 그녀의 그림은 보다 더 거대한 시공간의 움직임에 말을 걸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 한 방울의 빗물을 받아낸 그림에 대해서 아직 서루나 화가에게 고백하지 하지 않은 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 이찬규

Vol.20050610b | 서루나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