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한애규 개인展   2005_0601 ▶ 2005_0613

한애규展_침묵_인사아트센터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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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01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3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com

여성성과 모성을 독자적 색채로 표현해온 작가 한애규의 신작展 ● 이번 전시는 여성성과 모성에 대한 이야기를 테라코타에 담아 표현하는 작가 한애규의 신작전으로, 기존의 작업들과 그 형식뿐 아니라, 본질적 측면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한 획기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전시이다. ● 민중미술의 시대였던 80년대 대다수의 작가들이 민중과 항거를 외칠 때 한애규는 군사독재에 맞서는 민주투쟁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오랜 역사 속에 굳어져 내려온 억압된 여성의 해방, 그 안에서 여성들이 상실해간 인간으로서의 자각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이후 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가사노동, 가족,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이 느끼는 분노, 체념, 적응, 번민, 포용 등 복합적인 감정의 굴곡을 일상성의 여러 상황의 구체적이고도 탁월한 묘사를 통해 제시하였다. 작가는 남성과의 대결구도에서 비롯된 페미니즘이 아니라 생명력을 가진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이야기하며 일방적으로 주어진 일상인 가사노동을 긍정적으로 수용, 집안을 장악하며 주체성 있는 인간으로 설 것을 부르짖었다. 이후, 그는 당차고 기가 세며 우람한 여체의 묘사를 통해 강인한 여성성, 모성을 표현해나가기에 이른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작업은 여성으로서의 본능인 모성과 생명의 근원인 자연, 땅 사이의 연관성을 모색한다. 여성의 몸과 흙은 근원적이고 영원하며 한결같은 무엇이라는 동일한 존재의 다른 양태일 수 있는 것으로, 한애규의 여성은 생산과 풍요를 의미하듯 풍만한 몸집으로 과장되고 변형된다. ● 그리고 이번 개인전에서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한 단계 더 나아가 이전 작업들이 내재하고 있던 역사, 그리고 그 안의 「침묵」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다. 작가는 인물과 동물의 형상을 단순화시켜 커다란 돌덩어리처럼 표현한다. 이들은 마치 오래된 집촌이나 거석더미, 폐허가 된 유적지처럼 전시장에 펼쳐지고, 관람객들은 그 사이를 오가며 작품에 기대거나 앉아 휴식할 수 있다. 작품과의 적극적인 신체적 접촉 속에서 작가와의 정서적 교감을 배가할 수 있다. 한편 제1특별전시장에서는 2001년 제작하였던 미발표작인 부조 「꿈」연작을 전시한다.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인 꿈을 소재로 한 부조들에는 작업의 모티브가 된 단상들도 함께 적혀있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한애규_깊은 잠-섬_테라코타, 백색조합토_38.7×38.7cm_1200℃_2001
한애규_꿈에_테라코타, 붉은조합토_37×37cm_1180℃_2001
한애규_낮잠-실종된 꿈_테라코타, 붉은조합토_32×73cm_1180℃_2001

따뜻한 재료와 부드러운 형상이 만나 보여주는 자연의 포용력 ● 침묵시리즈는 오랜 세월 대지에 놓여있어 마모된 듯 부드러우면서도 투박하고 소박한 인상의 비석, 상석, 혹은 석상 같은 모습으로 옛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동시에 그 속에서는 단순한 형태가 가져오는 세련된 현대적 미감도 읽을 수 있다.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이다. 작품들이 갖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흙이라는 재료가 갖는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가 묘사한 대상이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웅크리고 누워있는 동물의 형상을 묘사한 작품들과, 인물을 아주 단순화시켜 실루엣만으로 묘사하여 마치 하나의 비석, 오래된 고인돌이나 계단과도 같이 형상화한 작업들은 우리에게 포근한 어머니 대지 같은 이미지로 다가와, 그 품에 안겨 쉬고 싶은 충동을 준다. 그 부드러운 작품에 몸을 뉘이고, 침묵 속에 휴식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번 작품들은 날카로운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받는 현대인들의 고통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땅과 물, 자연의 넉넉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편, 「침묵」은 타인을 포용하는 원만하고 둥근 대지 자연, 어머니, 모성애를 연상시키면서 이전 작업보다 한결 은유적인 방식으로 더욱 본질화된 '여성성'을 드러낸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연의 포용성을 경험하고, 생명체로서의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

한애규_침묵_테라코타_133×38×28cm_2005 한애규_침묵_134×46×47cm_테라코타, 붉은조합토_1200℃_2005

한애규_침묵_테라코타, 백색조합토_35×56×53cm_1220℃_2005
한애규_침묵_테라코타, 백색조합토_95×62×45cm_1240℃_2005

침묵. 절제 속에 녹아있는 인간존재와 역사에 대한 사유 ● 한애규는 다독(多讀)의 작가이다.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그의 생활습관은 뛰어난 문장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독서로부터 비롯된 그의 깊이 있는 사유의 세계는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작업 내면에 커다란 울림을 부여한다. 작가는 이번 침묵시리즈를 통해 침묵이 웅변보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깊이있게 들려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 때는 찬란한 때도 있었을 사람이나 이제는 땅에 묻혀 묵묵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는' 죽은 자들의 침묵, 많은 말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어쩌면 일상에서의 소통을 저해하는 요소일 수도 있을 침묵을 고집하는 살아있는 자들, 세월과 함께 축적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되 침묵하고 있는 역사에 대한 사유를 작업에 담아 표현한다. 그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침묵 저편에서 부유하고 있을 '수많은 소설과 시'를 상상해 볼 수 있다. ● 테라코타를 통해 드러나는 소박하고 따뜻한 감성 ● 한애규의 조각은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해를 이끌어내는 힘을 지닌다. '구운 흙'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테라코타(Terra-Cota)는 점토를 원하는 형상대로 빚어 고온의 화력으로 구워내는 방식이다. 제작과정동안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손끝으로 흙을 만지고 떼었다 붙였다 하는 반복의 과정을 통해 형상을 구체화시켜나가면서 자신의 물리적 · 심리적 흔적을 작품 안에 고스란히 녹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손으로 완성되는 자기수공적 특징으로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다. 또한 신석기 시대 도기제작기술에서부터 시작한 이 기법은 예술의 한 기법일 뿐 아니라 생활성과 밀접한 방식으로서, 일상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고, 개인적인 고백과 예술의 정신 사이가 멀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애규의 작품이 관람객에게 소박하고 따뜻한 예술로 다가가는 것도 그것의 소재와 감동의 범위를 그들의 일상과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며, 이처럼 잔잔하지만 깊은 느낌은 마치 수만 년이 지나도 썩어 없어지지 않는 영원성을 지닌 흙처럼 인류가 존재하는 한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 가나아트갤러리

Vol.20050613a | 한애규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