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미치다

  2005_0607 ▶ 2005_0617

초대일시_2005_0609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_권미애_김상균_장선미_정기훈_정재원_홍미미

갤러리 반 서울 중구 필동 3가 26번지 동국대학교 수영장 옥상 Tel. 02_2260_3424

'너에게...미치다'는 참여한 사람들 스스로가 규정한 규칙에 의해 진행되어 있다. 개인의 관심사가 다른 누군가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자신의 손도 또 다른 누군가의 관심을 전달받아 무엇인가를 만들게 된다. 그러나 순환적 연결고리를 통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은 원래의 관심사와는 다르게 반영되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규칙은 이질적인 관심과 사고를 묶어두기 위한 하나의 게임의 법칙으로 존재하지만 결국 완전한 하나의 틀에 담을 수 없음을 확인하는 역할로서 소통에 조심스럽게 접근해보고 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존재하는 오로지 독립적이고 자생적 사고는 없다는 것, 또 그 사고조차 누군가에게 분명 영향을 받고 또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너에게...미치다'는 사고의 개인적 소유화 또 완전한 소통에 대한 맹신을 반성하고 규칙이라는 매개를 빌어 의도적으로 풀어 보이고 있다. ■ 갤러리 반

나를 망각 할 수 있는 무언가를 ● 내가 사라지는 것.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표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정한 나에 대한 망각이 아닌가. 작업을 함으로서 잊어버리는 것, 망각에 대한. 나를 망각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한 작업들. 이것은 역으로 자아를 찾게 되는 것인 것 같다. 내 주변에 보이지 않는 막을 형성해가며 누군가 있는 것이 겁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며, 언어에 긴장한다. 모든 것이 두려운 난 점점 혼자 즐기기를 원한다. 지나치게 개인주의로 되어 가고, 알 수 없는 것으로 북적거림. 정착하지 못해 떠돌아다니고, 합류하지 못하는. 난잡함, 겉치레, 빈말, 신경쓰임, 시종일관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쓸 대 없는 기억들. 생각 없이 내뱉는, 배려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들, 쉽게 상처받고 그 상처에 마음을 닫아 버리고 나는 혼자 서있지도 못하면서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듯 망각을 위해 음악을 듣는다. 음악-그것은 나를 끝까지 사라 질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해준다. ■ 권미애

권미애_중독_혼합매체_가변설치_2005
홍미미_Super star shot_63×88cm_2005

너나 할 것 없이 외모지상주의 속, 비정상적인 미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스스로의 모습에 불만을 갖고 살아간다. 이런 불만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이미지의 조작을 통해 인형 같은 외모를 소유해본다. 인형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구나. ■ 홍미미

후천성 오른손 잡이 미미의 왼손 드로잉 ● 왼손 잡이로 태어난 나는 어린시절 부모님의 강압적인 권유로 인해 후천성 오른손 잡이가 되었다. 그러나 뭐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오른손, 오늘 따라, 이런 오른손의 아둔함이 지독히도 눈에 거슬린다. 왼손을 버린 선택이 너무나 후회스러운 지금 나는 다시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다시, 시작이다. 갓난 쟁이 왼손이 만드는 희망의 드로잉. ■ 홍미미

홍미미_후천성 오른손_8절_2005
정재원_스물다섯의 돌잡이_수동카메라,슬라이드,오브제_가변설치_2005

어릴적 사진 중에 돌 사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몇 사람은돌잔치 날에 돌잡이도 같이 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전통중 하나인 미래를 점치는 행위로써 그것이 미신이기는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전통으로 행해진다. 돌잡이때 행해지는 선택들에 있어서 인식하지 못한 채 하게 되는 선택이라 본다면 지금하게 되는 선택은 의식하고 있는 상태이다. 현재의 나는 어른이 되었고 지금 다시 선택을 하라고 강요한다면 어떤것을 향하여 선택을 하게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내가 선택한 선택은 과거에 행해졌던 선택들이 아니라 앞으로 선택을 하게 될 현재의 나를 나타내었다. ■ 정재원

외적 소통 ● 인간은 문명화 되면서 더욱더 치밀해지고 있으며 계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간의 욕구중의 하나인 자신을 알리고 표현하려는 것에 있어서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현재는 사이버공간의 만남이 많아지고 있으며 사이버공간에서 자신을 알리기 위하여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사람의 첫인상을 그 사람의 외적인 이미지로 판단하게 된다. 그 사람의 옷 입은 모습만 보고 우리는 그 사람의 직업을 상상하며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판단하게 된다. 만남에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하며 정확히 명시되는 기계적인 확인이 필요하게 된다. 그 선입견은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소통 되지 못하는 사회로 만들게 된다. 그렇게 소통은 어려워지고 있으며 인간은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정재원

정재원_외적소통_합성수지, 모터장치_120×100×70cm_2005
정기훈_착한 하나되기_사진_110×150cm_2002

'스포츠형' 머리는 교문을 당당하게 출입할 수 없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올바른 학생의 모습은 3Cm스포츠형 머리와 규격에 맞는 교복 차림. 특별히 악을 저지르지 않고, 등교시간에 맞춰 등교를 한다하더라도 머리가 3Cm가 넘거나 교복의 모양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올바르지 못한 학생이며, 학생다운 것이 아니다. '3Cm'는 질풍노도시기에 올바른 대안으로 설득보다 강요를, 자율보다 강압으로 감시와 검열을 위한 장치로 사용된다. 그러나 검열과 감시의 주인은 확연하지 않은 채 대상은 획일화되며 피동적인 자세로 길들여지고 결국 이런 훈계와 강요는 실체 없는 강요로, 기준 없는 훈계로 전락되어 공공장소 등에서 유령 같은 존재로 배회하고 있다. ■ 정기훈

공공시설의 정수리는 작용점으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칭적이며, 상징적 표상이고 사람의 시선 위에서 획일과 피동의 전형을 요구하며 모호한 기준으로 계몽에 주력 중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공공시설의 정수리는 분명 무엇을 강요하려는 제스쳐인데 그것은 어떤 근거로도 해석해낼 수 없는 기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상의 손가락을 보고 획일적인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것은 단지 동상의 손가락일 뿐이다. 혹 몇 천년이 지나 발굴된 비석에 '바르게 살자'라고 쓰여져 있다면 과연 후손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정기훈

정기훈_하면 된다_사진_110×150cm_2005
장선미_짓눌려진 안락함으로 살다_아크릴, 다보_20×21×29cm_2005

노골적 드러내기에 거북스러움을 고개 돌려 외면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검은 프레임 속으로 친절히 정렬된 단어들은 슬며시 권위적 무게를 드러낸다. 더 견고한 틀을 만들어 대치시켜 세운다.■ 장선미

순수 이데올로기 ● 지각하는 모든 것에 대한 혼란과 회의에서 시작되어진다. 그 근본적인 입장을 찾아보던 중 비밀리에 지켜왔던 메트릭스가 조금씩 허물어져 감을 마주한다. 그 안을 존재 시키던 순수 이데올로기 또한 미약함과 부정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울림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스스로의 순수를 죽이기에 이른다. 그렇게 죽어버려진 순수 앞에 다시 나를 세워본다. '진실로, 완전히 순수가 버려지는 것인가?' ■ 장선미

장선미_순수이데올로기_혼합재료_170×40×25cm_2005
김상균_두노인 실험_단체널 영상_00:03:15_2005

나를 강제하는 어떤 것이 나에게 주어졌다. 나를 강제하는 어떠한 힘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 즉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어떠한 상황과 내가 정해놓은 시뮬라시옹 속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들 각자의 시뮬라시옹은 소통의 기반이 된다. 그래서 대상을 시뮬레이션하는 하나의 실험을 시작한다. 대상을 변형하는 것에서 오는 다른 시각은 또 다른 모티브가 된다. 동시에 대상을 기록하는 매체인 영상은 아무런 대상에 대한 개입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페인팅은 대상을 지배하고 조작을 시작한다. 페인팅은 조작적이고 능동적 매체이며 또한 오랜 시간을 거쳐온 거대한 매체이다. 그 거대한 매체는 재현을 넘어 가상의 공간들을 아우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상과 페인팅의 사이에는 어떠한 연결고리가 생성된다. 그것은 하나의 실험이 된다. ■ 김상균

이미지를 교환한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받아들이기의 과정이 존재했는지를 관찰한다. 자신은 어떠한 변형의 형태를 상상하며 마치 이야기하듯 이미지를 제시하지만 그 결과는 당연히 각자의 것이다. 항상 진행되는 자신의 대화하기 받아들이기의 형태는 자신을 지배하는 하나의 가상의 공간이 된다. ■ 김상균

김상균_원본이미지_사진_11×14`_2005
김상균_1차변경_사진_11×14`_2005
권미애_1차변경_사진_11×14`_2005
김상균_2차변경_사진_11×14`_2005
권미애_2차변경_사진_11×14`_2005

소통이라 불리기에 가장 근접한 규칙을 통해 시작한 작업은 오히려 서로에 반 하는 작업을 하려 발버둥치지 않았는가. ■ 권미애

Vol.20050614a | 너에게 ... 미치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