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성 디지털 사진展   2005_0615 ▶ 2005_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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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15_수요일_05:00pm

대안공간 틈새 서울 종로구 동숭동 1-28 흥사단빌딩 4층 Tel. 02_743_5483

어감도(魚瞰圖) Fish's-eye view / 사진은 사진기가 보는 세상이다. 곤충인 잠자리가 본 세상이 사람인 내가 본 세상과 다르듯이 사진기가 기록하고 있는 이미지는 내가 원래 보는 그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사진이 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고 믿어 버리곤 한다. 그래서 "사진은 가장 기만적 예술이다." 라는 말도 있는 것 같다. 사실주의적 사진에서도 작가의 철학과 감성은 잘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사진은 찍기 직전의 느낌이 중요하다. 사진가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선택을 한다. 구도, 노출, 스피드 등등... 나중에 톤을 보정할 수는 있지만 찍는 순간에 작가의 주관은 대부분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표현주의적 사진에서는 회화와 같은 느낌이 나도록 적극적으로 이미지를 변형한다. 초점을 흐리게 하고, 붓질을 하고, 인화지를 바꾸고 작가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표현을 한다. 박제성의 최근 사진작업 "섬" 시리즈는 언뜻 일반적인 표현주의적 계열로 보인다. 하지만 이 작업 뒤에는 세상을 가장 객관적으로 포착하려고 하는 대단한 사실주의적 노력이 숨어 있다. 작가가 직접 설계하여 만든 로테이터(panoramic rotator)라는 도구를 통해 각도를 바꾸어 가며 38장의 사진으로 현장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찍어 나간다. 여기에 작가의 사전적 감성은 최소화 된다. 이러한 객관적 작업을 사후에 디지털 프로세스를 통해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불어 넣는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포토샵의 예측가능한 필터링 기법과는 확연히 다른 프로세스를 거쳤다는 것이다. 스스로 프로그램을 짠 플러그 인(plug in)을 통해서 불규칙하고 우연적인 필터링 효과를 시도한다. 작가가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이 작업은 반복된다. 보통의 사진 작업에 혼재되어 있는 주관과 객관의 영역을 의도적으로 양극단으로 분리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마침내 나왔을 때 박제성은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바라보는 주관적 세상"을 다른 사람에게 마침내 보여줄 수 있게 된것이니까.

박제성_홍도/독립문_38장의 사진 편집_110×220cm_2005
박제성_독도_38장의 사진 편집_110×220cm_2005
박제성_백도_38장의 사진 편집_110×220cm_2005
박제성_백도/독수리바위_38장의 사진 편집_110×220cm_2005
박제성_제주도/주상절리_38장의 사진 편집_110×220cm_2005

"섬" 시리즈 이외에 주목을 끄는 작업에 "유영(swimming in the sky)" 이라는 인터액티브한 영상작업이 있다. 마치 물고기와도 같이 하늘을 헤엄치는 사람이 등장한다. 홍도의 하늘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이 이미지를 보면서 박제성의 로테이터를 이용해 세상을 보는 방법은 물고기가 바라보는 세상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보는 시야는 매우 좁지만 물고기가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넓은 세상을 볼 수가 있으며 어찌보면 더 사실에 가까운 세상을 본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관점은 "가상현실"에 더 잘 나타나 있다. 관객이 투명화면을 드래그하면 영상이 움직이며 마치 어안렌즈로 보는 느낌이 난다. 바다 속 물고기가 섬에 올라와 바깥세상을 보는 것과도 같다. 누가 더 제대로 완전히 이 세상을 보는 것일까? 우리가 보는 것은 물고기가 보는 세상의 일부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은 시각적으로 열등감을 느낄만 하다. 그러나 우리가 평상시에 보는 세상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있다. 신비주의자들의 말에 의하면 영적인 각성 상태에서 우리의 비전은 파노라마 같이 펼쳐진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보이는 전면 만이 아니라 측면 심지어 뒤까지 한번에 보인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사물을 볼 때는 언어의 간섭으로 인해 아주 부분적인 것만을 주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박제성의 "가상현실"은 사실은 가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래 보아야 하는 하지만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작업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의 시각체험의 영역을 확장시켜주는 이 작업은 앞으로 더 새로운 조형어법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박제성_유영_38장의 사진 편집,상호작용 영상_50×50cm_2005
박제성_육각지대_38장의 사진 편집_50×50cm_2005

박제성의 첫 개인전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그를 옆에서 지켜 본 권여현은 바깥세상에는 관심없이 자기만의 전문 영역에 몰두하는 "오다꾸" 적인 박제성의 특성을 얘기한다. 자신만의 세계를 심화시켜 온 작가를 보면 섬에 올라 온 한 마리 물고기 같다는 그런 느낌이 난다. 앞으로 그에게 우리가 보여주는 지속적인 관심이 그를 자신만의 바다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을 것이다. 뜨거운 홍도의 여름, 독도의 선착장, 울릉도의 붉은 등대와 추산, 블랙홀 같은 백도. 바다라는 무대 위에 서 있는 이 섬들을 찾아 다니며 박제성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뜨거운 정열을 "쿨(cool)"하게 좋은 조형어법으로 승화한 이 전시회에 마음으로부터 격려를 보내고 싶다. ■ 김재준

박제성_가상현실(어감도)_38장의 사진 편집, 상호작용 영상_2005

플라톤의 명제에 의하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인간은 결여의 존재다.", "인간은 총체성을 결여하고 있다." 인간은 총체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끝임없이 노력한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이며 이러한 욕망으로 인하여 인간은 불완전하고 인간을 완전한 총체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유혹한다. 플라톤의 이러한 유혹을 제쳐두고라도, 욕망을 완전히 제거하여 총체적 인간으로 거듭난다 하여도 인간의 객관적 본 모습은 불완전하다. 인간은 그 탄생의 모습부터 신화적이고 불완전하고 몽환적이다.인간이 과거 자신의 탄생을 설명하는 것은 직관적이고 자유롭고 무질서 하다. 누구든 자신의 조상을 설명하는 것은 진리라는 무거운 짐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끝없는 욕망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섬은 나의 뿌리(조상)에 대한 직관적인 설명이다. 그곳은 어머니와 같은 곳이고 정렬적이고 역동적이다. 적어도 그곳은 욕망이라는 족쇄로 부터 해방감을 맛볼 수 있고 총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같은 조짐을 느낀다. 나는 그곳(섬)에 대해 최대한 절제된 개관적인 채집(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전면적인 모습을 담기위하여 특수한 촬영기법을 사용하였다. 그곳에 대해서 그 무엇을 설명하던간에 직관적이고 자유롭다. 나는 그곳을 통해 탄생의 의식을 설명하려한다. 그것이 섬에서 내가 찾은 조상이요 생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의 설명은 직관적이다. 나의 설명은 욕망이 제거된 객관적인 채집(촬영)과 반복적인 디지탈 프로세서를 통한 우연과 직관이 결합된 하나의 결과물이다. 이것이 나의 욕망이고 그 욕망의 덩어리에서 나는 간간히 주체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 박제성

Vol.20050615d | 박제성 디지털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