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생각하기

이택근 조각展   2005_0609 ▶ 2005_0626 / 월요일 휴관

이택근_균형_스치로폼, 톱밥, 염료_가변크기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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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09_목요일_06:00pm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www.brainfactory.org

오브제를 만드는 이택근의 작업은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의 진실과 허구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의 표현방식은 주로 사물의 속성을 소재로 인공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겉모습은 같으나 특정한 속성이 생겨나거나 없어진 새로운 오브제를 만들어낸다.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주위의 흔한 사물들과 흡사하여 보이는 그의 작품을 약간의 호기심을 동반하여 감상하면 작가가 보내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사물의 본질과 시각적 진실의 허구에 대한 내면적 성찰의 흔적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관념적 이미지 뒤에 내재하고 있는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이택근_나무_종이, 염료, 먹물_21×45cm_2003

매트릭스의 회로를 떠도는 사물들, 의미들 ● 충무로 지하철 역사는 마치 천연의 동굴 안처럼 꾸며져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비정형의 암석들과 채도가 낮은 암갈색조의 표면질감이 영락없는 실제의 동굴을 닮아 있지만, 실상 이 모두는 FRP를 가공해 만든 인공의 동굴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도심의 언저리나 고속도로의 휴게소에 조성된 인공폭포 역시 이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또한 스스로가 조화(造花)에 지나지 않음을 천연덕스럽게 드러내는 조화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생화(生花)와의 구별을 어렵게 만드는 조화도 있다. 우리 모두는 이처럼 실물을 닮은, 거의 실물과 다를 바 없는, 때로는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인공물들의 풍경 속에 편입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인공동굴, 인공폭포, 인공정원, 인공자연, 인공낙원이 또 다른 하나의 현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실물과 인공물, 실재와 이미테이션, 실상과 가상이 서로 얽혀 있는 혼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택근의 작업은 이런 실재와 이미테이션이 만나는 접점에, 그 경계에 맞춰져 있다.

이택근_선인장_종이, 톱밥, 먹물, 아크릴_54×41cm 2005

이택근이 제시해 보여주는 일련의 오브제들은 설핏 보면 그저 평범한 사물들에 지나지 않는다. 통나무와 통나무 껍질, 선인장이 심어져 있는 화분, 숯 덩어리, 바위와 자잘한 자갈과 같은 자연물들, 그리고 부분적으로 깨어진 벽돌, 콘크리트 보도블록, 선반, 목재의자, 문과 같은 구조물들로서, 이는 그 자체로는 눈길을 끌만한 이렇다할 대상물이 아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평범한 사물들이 실물이 아닌, 종이죽이나 톱밥을 가공해 만든 가상의 사물들이란 것이다(작가는 종이 중에서도 특히 두루마기 휴지를 소재로서 사용하는데, 이는 휴지가 물에 잘 풀어져 그 결이 고운 결정체를 얻을 수 있고, 따라서 사물의 섬세한 질감을 재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선반, 목재의자, 문, 그리고 아직은 구상 단계에 있는 옷장과 같은 여타의 가구류를 재현한 작업에 있어서 작가는 우선 MDF(일종의 압축합판)로 실물과 똑같은 구조를 만든 다음, 그 표면에다가 종이죽이나 톱밥을 부착해 마무리하는 방법으로써 이를 가공한다. 이처럼 정교하게 재현된 사물들이 실물과 인공물, 실재와 이미테이션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차이를 의심하게 만든다. 이런 실재와 가상, 실물과 오브제간의 미묘한 경계는 이처럼 단순히 사물을 재현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일상 속에서 맞닥트릴 만한 특정의 상황에 확대 적용되고 있다. 예컨대 실재의 문과 똑같이 재현된 문이 벽에 부착되어져 있는 경우가 그렇다. 이 경우에 관람자는 거의 관성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그 문을 열어보고자 시도하게 된다. 이때 멀쩡하게 손잡이까지 달려 있는 그 문은 아예 열리지 않거나, 혹은 열려질 경우에조차 그 뒤편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어떤 공간이 아니라 막혀 있는 빈 벽일 뿐이다. 이외에도 물이 가득한 수조 위에 둥둥 떠 있는 돌덩어리, 벽에 부착된 가녀린 나무막대를 지지대 삼아 그 위에 천연스레 얹혀져 있는 역기, 그리고 가벼운 물건들과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철판구조물 등 이렇듯 상식을 벗어난 상황들을 이택근의 오브제들은 연출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오브제들은 종이죽과 톱밥을 가공해 만든 인공물들이다. 하지만 적어도 감각적으론 그 물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보이지가 않는다. 이 오브제들이 연출해낸 상황들은 실재와 가상, 중력과 무중력, 무게중심, 역학과 균형과 같은 일련의 개념들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상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는다. 실물을 빼 닮은 사물들, 원본과 똑같은 사본들이 세계에 대한 상식적인 인식을 의심하게 하고,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 더불어 작가가 일종의 이미지 전사기법 즉 프로타주 기법으로 재현해낸 나무기둥과 송판은 목재소에서의 그것과 구별되지가 않는다. 그리고 톱밥을 가공해 만든 H빔은 그 표면에 있어서만큼은 영락없이 녹 쓴 철강 빔이다. 이렇듯 적어도 감각적으로는 실물과 구별되지 않는, 그래서 오브제로 부르기조차 어려운 이 오브제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아마도 이에 대해서는 실물과 닮은꼴, 유사 오브제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편, 이 일련의 오브제들에서는 무모하리만치 치열한 수공성을 수반한 지난한 공정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작가의 아이덴티티나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무표정한 사물, 중성적인 대상이 놓여져 있을 뿐이다. 이렇듯 작가의 존재가 지워진 중성적인 오브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업은 미니멀리즘에 그 맥이 닿아 있다.

이택근_숯_종이, 먹물_가변크기, 받침대_30×30cm_2005

작가는 '시각적 사실'과 '관념적 사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이에 따른 진정한 실재에 대한 의문이 이 오브제들을 제작하게 된 동기였다고 한다. 이러한 의문 자체는 사물과 그 사물을 지시하는 의미간의 불일치와 차이에 대한 인식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택근이 제시해 보여주는 일련의 오브제들, 즉 감각적이고 표면적인 모방에 의해 실재처럼 오인되는, 질량을 상실한 유사 오브제들은 그러므로 일종의 의미에 대한 사유, 의미들의 놀이에 그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사물의 실재를 보장해줄 수 있는 진정한 의미, 궁극적인 의미, 최종적인 의미를 묻는 물음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연과 경쟁하고, 실재와 경쟁하는 실제의 닮은꼴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자기동일성의 논리, 스테레오타입의 논리, 동어반복의 논리에 대한 의심과 통한다. 실재와 의미와의 관계를 묻는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업은 조셉 코주스의 일련의 개념작업들을 상기시킨다.

이택근_역기_종이, 나무, 톱밥, 먹물_70×143cm_2005

이택근의 작업은 이처럼 하나의 사물을 지시해주는 진정한 의미, 궁극적인 의미, 최종적인 의미에 대해 의심하게 하고, 사물 자체를 지시해주는 지시대명사 바로 '그것'에 대해 회의하게 한다. 상식에서 한 발짝만 비켜서면 사물의 존재는 불현듯 낯설어지고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흩트려진다. 그것은 떠도는 언어, 부유하는 언어,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언어, 미완의 언어로 구조화돼 있다. 사물의 존재는 어떤 궁극적인 의미로만 지시되지가 않으며, 대신에 무수한 차이 나는 의미들의 다발로 지시된다. 하나의 사물은 마치 하나의 기호(記號)와도 같은 것이며, 이는 그대로 의미의 산종(散種), 파종(播種)과 통한다. 이러한 기호학의 도식 속에서 하나의 사물은, 마치 하나의 머리를 자르면 곧장 또 다른 머리가 돋아나는 수백 수천의 뱀 머리칼로 이루어진 메두사의 두상에 비유할 수 있다. 말하자면 메두사의 두상이 사물(記標) 자체라고 한다면, 무수한 뱀 머리칼은 그 사물을 지시하는 의미(記意)들의 다발인 것이다. 이로써 이택근의 실재를 닮은 일련의 오브제들은 단순한 실재의 재현, 실재의 이미테이션을 넘어선다. 하나의 사물이 이접(異接)적인 의미들의 다발로 호명되는 의미놀이에 맞닿아 있으며, 매트릭스 즉 자기폐쇄 순환회로 시스템 속에서 무한 복제되는 이종(異種)적인 개체들의 인식에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규정할 수 없는 그 오브제들은 친근하면서도 낯설다. ■ 고충환

Vol.20050617a | 이택근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