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성의 피력

최병국 수묵展   2005_0608 ▶ 2005_0614

최병국展_인사아트센터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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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08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com

시각적이고 구조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생명성(Vitality)의 피력(披瀝) ● 현대인은 자주 깊은 공허감에 직면하곤 한다. 정신분석학자 롤로 메이(Rollo May)를 따르자면, 그 공허감은 (生)과의 관계가 놀라울 정도로 빈곤해진 것에서 기인한다. 하늘과 바다와 산과 동물들에 대해 더 할 수 없이 냉랭해진 반면, 오로지 자신의 문제에만 열정적이 되도록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유명한 탄식을 빌자면, 현대인에게 "세계는 이제 매력을 상실했다." ● 하지만,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화가 최병국은 여전히 세계의 매력, 특히 유혹하는 자연에 흠뻑 빠져있다. 최병국은 바다의 움직임과 색조의 변화를 주관했던 프로테우스처럼, 그의 앞에 놓여진 자연을 초대하고 취급하고 경영하기를 즐긴다. 조개로 만든 피리로 존재의 소리를 듣게 했던 트리톤도 최병국의 참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수풀과 나무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잘 듣지 못하게 된 소리를 듣는다. 이는 능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태도에 관한 진술이다.

최병국展_인사아트센터_2005

최병국에게 자연은 '그릴만 한' 대상 이상이고, 형형색색의 보고(寶庫)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다. 자연은 존재의 뿌리를 담고있는 근간으로서, 인식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교감해야 할 상대인 것이다. 실존의 조건이자 가능성인 동시에 장애이기도 하다. 그의 관심은 이제 자연으로부터 생명의 감(感)을 회복하고, 선물처럼 그 사색을 얻는 데에 집중된다. 이같은 맥락에서 그의 작업이 최근에 보이는 선회, 즉 '자연의 시적(詩的) 재현'이랄 수 있을 것에서 자연의 보다 본질적이고 통합적인 탐구로 나아가려는 방향전환이 이해될 수 있다. ● 자연의 보다 본질적이고 통합적인 탐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 간단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는 없다. 이 운명적인 난제 앞에서 최병국은 우선 시각에만 국한되었던 인식의 부자연스러운 집중을 풀고, 보다 자유로운 방임의 도수를 높여가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 이 과정은 전적으로 자유를 확대해 나가는 과정과 일치한다. 자유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작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고, 따라서 많이 의식할수록 많이 획득할 수 있는 것, 일테면 '레이더식 인간'의 순응(obedience)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일테면, 자유는 고작 관례나 추종하는 의식부재의 상태를 통찰함으로써 더욱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대상과의 상관관계에 붙박혔던 자신의 인식을 완화하고, 스스로를 생명 자체의 속성에 보다 근접시키려는 의식 자체에 의해 이미 최병국의 세계는 보다 진전된 자유의 반영이 되는 것이다.

최병국展_인사아트센터_2005

세계의 느낌에 보다 충실하기 위해, 그리고 가슴으로부터의 인식이기 위해 중요한 것이 이 자유며, 그것은 우선 우리에게 기계론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기계론적 사고라 함은 '이미 형식화된 법칙을 따라' 원인과 결과를 일치시키려는 칩착이며, '이미 정의된 좋은 결과'에 스스로를 제한하는 사고유형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같은 기계론적 틀로는 자연과의 살아있는 정직한 대면에 몰입할 수도, 새로운 윤리적, 미적 통찰에 도달할 수도 없다. 생동하는 자연을 깊이 간직하려면, 결과는 단지 출발의 기계적인 성취여선 안 되며, 과정의 어느 곳에서든지 자유로운 터치와 농담, 묵과 종이의 다양한 정도의 상호침투가 허용되어야만 한다. 생명의 복잡성을 따라 수많은 우연들과 예측불가능했던 조건들의 개입이 고려되어야만 한다. 최병국은 자신의 세계에서 한편으론 점점 더 인위적인 조치들을 회수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이러한 임의성과 변주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규정할 수 없는 질서에서 출발해 예견될 수 없는 결과에 이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연의 충만한 느낌을 기록하는 가장 유력한 방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어진 사물과 풍경에서 시적 정취로 조정되어진 재현을 구했던 이전의 수묵과는 현저하게 다른 사유의 귀결이다. 이제 최병국의 회화는 정확히 묘사될 순 없지만 분명 존재하고 또 생동하는, 처음도 없고 끝도 없고, 명백한 이야기 구조도 없고 어떤 조형적(인위적)질서에도 구애받지 않는, 그러면서도 끝없이 움직이거나 확장되고, 가까워지거나 멀어져가는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최병국展_인사아트센터_2005

그의 붓의 놀림과 농담은 전에 없이 자유롭고 대담하다. 그렇더라도 그것들이 여전히 자연의 넘볼 수 없는 설화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들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터치들은 세상을 넘나들 듯 한껏 분방하지만, 여전히 거칠게 피어오르는 구름이나 보드라운 새의 깃털을 환기하게 하기도 한다. 때론 무겁거나 거칠고, 부드럽고 느긋하기도 한 포괄적인 먹의 확산은 예리하거나 완만한 다양한 텃치들을 아우르면서 최병국의 것들을 더욱 복잡하고 신비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최병국展_인사아트센터_2005

최병국의 세련되고 감칠맛 흐르던 소박한 풍경이 보이지 않는 것은 한 편 서운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최병국의 그간의 세계가 성취해 왔던 자연의 탁월한 시적 요약과 감칠맛 나는 묘사가 다시 보고 싶어질 것이다. 느긋하게 관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했던 그절제된 농담과 세련된 터치들의 조화가 그리울 것이다. ● 그렇더라도, 이번에는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서 훨씬 더 격하게 격동하는 자연의 보이지 않는 힘을 감지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에게 그같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꺼이 시각의 제한을 벗어나고, 구조적인 이해에 구애받지 않으며, 사물의 규칙 대신 규칙을 만드는 본연의 복잡성에 한 발씩 다가서는 최병국의 치열한 자유에 동참해 보도록 하자. 그렇게 함으로써 이전에 비해 몰라보게 꽉 차고, 풍부하고 격하며, 때론 거칠고 묵직해진, 나무나 수풀의 세련된 재현과는 다른 더 복잡한 감흥이 생성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들여다보자. 그것은 분명 생명에 관한 또 다른 인식에 가담하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 심상용

Vol.20050619b | 최병국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