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

황상구 사진展   2005_0622 ▶ 2005_0628

황상구_개천_흑백인화_80×10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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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22_수요일_06:00pm

인사아트센터 4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 Tel. 02_736_1020

길고 지리한 여름 장마가 지나가고 난 어느 여름날 오후, 나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버스 창문으로 비치는 푸른 하늘을 따라 가던 나의 시선은 맑은 여름 하늘 빛과 점점 기울어져 가는 태양 빛에 물들고 있던 커다란 중랑천을 보게 되었다. 문뜩 어린 시절로 나의 기억은 되돌아가 여름 장마비에 부풀어 오른 개천을 따라 가던 때가 생각난다. 그 시절의 개천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황상구_개천_흑백인화_80×100cm_2004
황상구_개천_흑백인화_80×100cm_2004
황상구_개천_흑백인화_80×100cm_2004

어린시절 뛰놀던 동네에는 많은 실개천들이 흐르고 있었다. 이 작은 실개천들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었다. 개천은 아이들에게 놀이터 역활을 하였지만, 어른들에게는 쓰레기를 처분하거나 그곳의 삶과는 상관없는 버려진 공간이었다. 동네를 따라 흐르던 개천들은 생활 하수를 받아서 근근히 명목을 유지하고 있었고, 장마철이 시작되면 그 생명력이 부활하여 활기를 띄곤 했었다. 어떤 때는 그 활기를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개천을 가로 지르던 다리를 포효하면 뒤덮을 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네는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여야만 했고, 개천도 그 변화의 일부가 되었다. 살던 집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풍경들이 들어서면서 실개천들도 하나 둘 흙으로 메워지고 큰 개천들은 그 위에 커다란 시멘트 덩어리가 짓누르고 서있게 되었다. 무겁게 짓누르던 시멘트 덩어리는 결국 개천의 공간을 은폐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렇게 묻어 버렸다. ● 인간은 도시를 개발하고 한치의 여백 없이 공간 활용을 추구한다. 이러한 개발 논리에 맞춰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개천을 따라서 개천의 공간을 바라보면 개천이라는 공간의 인간의 개발 논리에 위배 되는 모순된 공간으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개천이라는 공간을 방관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결과이며 조금만 개천속으로 들어가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개천이라는 공간은 하나의 빈틈도 없이 침투된 인간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황상구_개천_흑백인화_80×100cm_2004
황상구_개천_흑백인화_80×100cm_2004

개천에는 시간의 자국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효율과 개발이 최고의 가치이던 개발독재 시기에는 비만 오면 자꾸 범람하는 개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콘크리트로 물길을 덮었다. 결국 이렇게 덮여 버린 개천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개천이라는 존재 자체에도 위협을 받아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에 내리는 빗물이 지하수와 섞이지 못하고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던 서울 곳곳의 개천들이 이미 마른 하천으로 사라져 갔다. ● 이제 개발독재로부터 벗어나 삶의 질이 중요시 되는 시간이 도래했고, 이에 따라서 개천을 바라보는 시각은 변했으며, 변화된 시각을 반영하듯이 개천에 다시 개발의 이데올르기가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덮혀 있던 개천들이 그 어두운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으며, 덮을 수 없던 커다란 개천들의 주변은 하나 같이 정비가 되어지고 있다. 돌아온 개천은 자연과 사람에게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고 역설되고 있으며, 그 효용 가치 자체가 금액으로 환산되고 있다. 결국 도심 속에 존재하는 개천은 단순한 개천 그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개천이라는 공간은 자본주의 이데올르기와 함께 공존해야만 하는 공간이 된것이다. ● 나는 '개천'이라는 사진 작업을 통하여, 현대인들이 개천이라는 공간을 자본주의 이데올르기에 맞춰서 어떻게 조직하고 구축하며 재구성하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 황상구

Vol.20050622a | 황상구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