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배우지 못한 단어들

고지영 회화展   2005_0615 ▶ 2005_0628

고지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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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15_수요일_05:00pm

대안공간 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21번지 Tel. 02_735_4805 www.altpool.org

작은 사물들의 영(靈) ● 1. '회화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던 때는 오히려 회화의 꽃 시절이 아니었을까. 90년대 후반 '회화의 죽음'에 대한 담론이 유행일 무렵에는 오히려 회화전이 더욱 빈번했던 듯하지만, 실제로 회화건 예술이건 완전한 종말의 시기는 죽음에 대한 '소문'마저 망각의 강으로 떠내려가 버린 이후가 아닐까 싶다. '디지털매체시대' 회화의 한 대응이 그 매체적 특수성, 이를테면 수공성/신체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냈던 것이 오히려 순진하고 일차적인 방식이었다면, 그래서 실은 회화의 위기담론 자체가 역설적으로 하나의 '효과'일 수 있었다면, 최근 젊은 작가들의 회화작업들을 보면 '회화의 위기'가 단지 매체/도구 자체의 문제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통적인 회화 도구인 붓과 물감을 만지고 있지만, 이들 작가들이 보거나 만들어내는 풍경은 전혀 다른 패러다임 속에 놓여 있다. 이를테면 도구는 옛것이나 그 시선과 몸은 이미 디지털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핸드폰에 내장되어 있는 디지털 카메라의 일상 잠식은 작가들의 보는 눈을 자연스럽게 '기계화'한다. 작가들은 붓과 물감으로 카메라의 파인더로 본 '풍경'을 재현하거나 '포토샵'으로 재편집/조작해 그리거나 흉내 낸다. 또는 웹에서 볼 수 있는 아이콘이나 문자들을 회화면으로 불러온다. 심지어는 붓질을 하다 어긋난 부분이 생기면 '일러스트'나 '포토샵'의 'Undo'나 'Layer'기능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원고지 앞에서 사유하던 문필가들이 이제는 컴퓨터 자판이 없으면 사유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불안증 내지는 불편함을 느끼듯이 디지털 환경이 이미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체계'가 된 '젊은' 화가들에게도 이 디지털적 사유와 몸의 기억이 더 이상 쉽게, 자의로 벗어 던질 수 있는 옷가지는 아니게 된 셈이다. 피부에 들러붙어 벗을 수 없는 '옷가지'를 의식하는 이 순간에도 몸은 여전히 자판과 함께 체계를 달릴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늘 '체계'보다 한발 늦은 우리의 지혜로는 미래를 돌아(hind)볼 수 없으며, 체계의 비밀을 캐려는 '이단자'들은 그 비밀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순간 이미 그 메시지의 코드에 동화되고 마는 것이다_1)김영민, 바깥은 없다: 신매체 시대의 체계론, 진보평론(The Radical Review) 18호(2003년 겨울) 때문에 디지털매체시대 회화의 가능성은 이미 벗을 수 없는 이 새로운 기계/체계의 틈새를 지시하는 정도의 역할로 그 '마지막' 역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고지영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05
고지영_캔버스에 유채_31.8×40.9cm_2005

2. 간혹, 기계복제술의 발전이 예술의 탈신비화를 가속시켜 예술을 민주화시키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참여적 거리감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고 했던 벤야민이 부활해 이 시대를 다시 산다면 예술에 대한 어떤 진단을 내리게 될지 궁금해지곤 한다. 그가 이 시대를 살고 거닐었다면, 자신이 했던 말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까. 예술에 대한 전통적 개념(창조성, 천재성, 영원한 가치와 비밀 등)이 파시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가능성에 반해 새로운 매체시대 '예술의 정치화'를 내세웠던 그가, 새로운 매체 자체가 역으로 인간의 신체와 영혼을 잠식해나가는 하나의 '큰 체계'가 되어버린, 보이지 않는 파시즘으로 진화해버린 이 시대, 예술에 대한 어떤 개념을 세울 수 있을까. ● 벤야민은 전통 예술의 본래적 사용가치는 종교의식과 상관이 있으며, 이 의식적 가치(儀式的 價値)를 기술복제시대 이후 전시가치(展示價値)가 대신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몇몇 한정된 공간에서 '일회적'으로 향유되었던 예술은 기술복제에 의해 점차 전시기회가 늘어나게 되고 종교로부터 독립해 그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벤야민의 말처럼 기술복제로 인해 이제 우리는 갖은 인쇄물과 인터넷으로 생전 한번 보기 어려운 '예술작품'들을 곧바로 내 집 안방에서 볼 수 있다. 때론 인쇄물이나 웹 사이트에서 본 색채로 그 이미지들을 기억하던 눈이 막상 작품의 원본을 확인한 후 그 차이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시뮬라크르가 원본성을 대신한다는 이야기도 이미 낡은 이야기가 되었다. 이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작품으로부터 '종교적' 아우라를 기대하는 일은 이제 불가능에 가깝다. '전시'된 것들은 물신(物神)의 아우라를 지닌다. 어떤 대상에 대한 '경건함'을 가진다는 것은 농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정녕 표면을 스쳐 지나는 시뮬라크르들 사이에서 보다 깊고 먼 것, 존재에 대한 존엄과 두려움, 숭고, 성스러움, 그 오래된 기억을 다시 떠올려 보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 불필요한 일일까. 나는 이 시대, 예술이 잃어버린, 놓아버린 '종교적' 현전의 체험을 다시 환기시키는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닌지,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고지영의 작업에서 그런 가능성의 한 갈래를 본다.

고지영_캔버스에 유채_50×65.1cm_2005
고지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7.3×40.9cm_2005

3. 엘리아데는 자연과 세계 그 자체가 이미 거대한 성현(聖顯, hierophany)이라고 보고 있으며, 근대 이후의 인간들은 바로 이 성스러움에 대한 기억, 즉 역사 이전의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성스러움, 혹은 신과의 대면(聖顯)은 하나의 사건이다. "이 신성한 것에 직면할 때 인간은 스스로 전혀 무가치함을 느끼고 자신이 하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혹은 아브라함이 하느님에게 말한 바와 같이 "먼지나 티끌"(창세기, 18:27)과 같은 몸임을 통감한다."_ 2)M.엘리아데, 이은봉 역, 성(聖)과 속(俗), 한길사, 1998, 48쪽 근대란 달리 말하자면, 탈 신성화의 역사/결과에 다름 아니다. '공포'의 대상이던 '자연'을 분류 가능한, 관찰, 해석 가능한 대상으로 삼은 인간이 무서워할 대상은 이제 생명복제까지 가능하게 한 '인(人)-신(神)' 스스로의 힘뿐이다. 그러나 일군의 예술가들은 마치 본능처럼 잃어버린 것들의 조각을 찾듯, '역사 이전'의 시절로 탯줄을 댄다. 정신과 육체가 낱낱이 분화된 세계에서 어떤 종류의 봉합, 통일성의 획득을 통해 상처-분리의 기억을 치유하려는 노력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지영 역시 자신만의 성소(聖所)를 만든다. 그의 작업실 '중심'에는 이젤이 놓여 있다. 그 주변에는 붓과 팔레트, 물감 박스들, 작업의 모티프가 되는 작은 사물들이 놓여 있다. 고지영은 이런 사물들 사이에서 여러 시간을 이젤 앞에 앉아 꼼짝 않고 작업한다. 보통 벽 쪽으로 이젤을 기대어 작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고지영은 공간의 중앙에 앉아 마치 벌이라도 서듯 작업한다. 작은 공간의 중심에 이젤을 세우는 행위도 낯선 것이긴 한데, 그 연장으로 그의 그림 대부분은 주를 이루는 모티프들이 화면의 중심에 배치되어 있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종교적 인간은 항상 '세계의 중심'에 거주처를 정하려고 노력한다. 이 중심, 성스러운 공간의 계시는 "인간에게 고정점을 부여하고, 그리하여 혼돈된 균질성 가운데서 방향성을 획득하며 '세계를 발견하고' 진정한 의미의 삶을 획득"_3)M.엘리아데, 이은봉 역, 성(聖)과 속(俗), 한길사, 1998, 57쪽 3)하게 한다. 고지영은 오래전부터 화면의 중심에 모티프를 배치해왔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종교적' 의미, 의도된 행위의 결과라고는 할 수 없으며, 일종의 무관심한 배치, 의도를 배제한 듯한 구성이기도 하고, 중심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강박의 한 예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화면 구성의 '중심성'과 함께 그리기의 대상들마저도 어떤 '장소'를 지시하는 바위 혹은 돌들이거나 집, 혹은 '위'로 쌓여가는 모호한 사물들의 집적들이다. 예로부터 바위나 돌은 그 견고함 혹은 조야함 항구성으로 인해 인간조건의 불안정함을 초월한, 영적 작용의 도구로 생각되기도 했다_4)M.엘리아데, 이은봉 역, 종교형태론, 한길사, 1996, 296쪽 혹은 이를테면 스톤헨지(Stonehenge)처럼 성현의 한 장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집 역시 '중심' 상징의 한 예이다. 또한 그는 작은 사물들을 쌓아올린다. 사물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 연필, 책, 컵, 접시, 시계 등의 일상적인 사물들이다. 이들은 의식(儀式)이라도 치르는 듯 수평 수직의 구도 속에서 조용히 '상승'한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이면 슬며시 굳었던 몸을 펴 달그락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작은 사물들의 조용한 의식. 이 작은 사물들은 조금씩 자리를 움직여 서로 조합해 새로운 구조물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그 모양들이 때론 작은 '탑'을 닮았다. '세계의 중심'에서 하늘의 입구를 향해 스스로 '사다리'를 놓는 작은 사물들의 움직임.

고지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05
고지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4×24.2cm 2005

고지영이 주로 선택하는 색채는 검정, 회색과 흰색 또는 갈색이나 누런색 등 본인의 말로는 "색채이길 포기한 색채들"이다. 무채색이나 채도가 한풀 꺾인 이 색채들을 '경계색'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색채를 관찰자와 독립된 객관적 실체로 본 뉴턴과 달리 괴테는 색채를 빛과 눈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본다. 또는 빛과 어둠, 이 대극의 조화로 본다. 색채를 객관적이거나 물리적 실체가 아닌 관계성의 효과로 본 괴테처럼, 고지영 역시 색채(곧 형태)를 시간성의 결과, 혹은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의 색채'는 그 색채 자체의 물질성과 경계의 선명함으로 나타나지 않고, 빛과 어둠 사이의 스밈, 애매함, 숨어들어가는 형태로 나타난다. 빛과 어둠의 경계, 이를테면 밤과 낮의 경계에 선 사물과 형상들이 제 빛깔을 달리해가는 것처럼, 고지영의 색채 역시 그 밝음과 어둠, 경계 사이에서 흔들린다. 붓질 역시 화면 위에서 빛-색채-어둠과 더불어 흔들린다. 또한 태양빛이 가신 어둠 속에서 달빛에 반사된 듯, 가로등이나 스탠드 불빛에 반사된 듯, 희뿌옇게 그 형태를 드러내는 사물들은 다소 창백하다. 이 창백한 사물들은 오히려 그 사물 내부에 간직하고 있던 빛(생명)을 드러낸다. 한낮의 태양빛이 가신 어둠 속에서 오롯이 빛나는 이 작은 사물들은 우리가 어떤 사물들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그로부터 기대해왔던 역할과 기능을 숨기고 낯선 '생명체'로 발광(發光)한다.

고지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00cm_2005

고지영의 작업실과 그림들은 작은 신(神)들을 위한 예배당 같다. 마치 사물에도 목숨이 있는 듯 그의 그림 속의 사물들은 생명력을 지닌다. 고지영의 손을 빌어 그려진 사물들은 오히려 그 사물들의 영(靈) 같다. 그러나 그 영은 반드시 두려움이나 공포의 대상만은 아니다. 일상적 사물 속에 깃든 영은 피로하고 측은하기도 한데, 어쩌면 그것은 작가 자신의 그림자 투영 같기도 하다. 사물 속에서 그것의 영, 신성을 드러내고 더불어 존재하는 법, 또 손으로 만져 표현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물 혹은 인간 존재의 심층/신성을 오래된 도구인 손의 주술로 불러오기는 오히려 그 자체로 하나의 '종교' 같다. ■ 박미현

Vol.20050622b | 고지영 회화展